1961~1962
어린이 미인대회에 순미를 출전시킨 게 아버지 뜻이었을까? 놀랍기만 하다. 어떻게 봐도 박색에 가까운데.
당시 아이들 천연두 예방접종 우두를 보통 어깨 가까운 위쪽 팔뚝에 했는데, 아버지는 내가 커서 민소매옷을 입을 걸 대비해서 오른 허벅지에 맞게 했다 한다. 나는 자라면서 어깨와 팔이 매끈한 데 자부심을 가졌다.
61년 여름 동중사택이 나자 아버지와 새엄마와 길언 그리고 이모는 동중사택에 들어가고 할머니와 철언오빠, 영언오빠, 나는 계림동 셋방에 살았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에 두 오빠가 마주 보고 밥을 먹다가 싸우기 시작했고, 상위에 김치보시기가 엎어졌다. 이후 두 오빠는 영언오빠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6년간 서로 말을 안 했다. 이것도 부모의 이혼 후유증이었을까. 철언오빠는 화가 난 표정.
이충언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입학, 1962.3.10.
이영언 광주서중학교 입학, 1962.3.5.
이 무렵 나는 첫 성경험을 했다. 여러 채 사택에 사는 대여섯 살 계집아이들이 어느 집 방에 모였을 때다.
이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뱀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