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동역.
지하철 문이 열리자 영실은 시계를 확인했다.
‘이런, 늦었네.’
그는 가방을 들고 대성집으로 달려갔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식당 문을 여니, 이미 선배들이 와 있었다. 정태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야, 영실아! 이제 오냐?”
헐떡이며 들어온 영실은 숨을 고르며 인사했다.
“형들, 반가워요. 다들 일찍 오셨네요.”
정태가 여유롭게 웃었다.
“우린 임원이잖아. 퇴근을 누가 눈치 보냐? 이런 날은 일찍 와야지.”
대영이 잔을 들며 말했다.
“영실아, 난 아직도 너에게 많이 미안해.”
“왜요 형?”
“1학년 때 나 때문에 유치장에 들어가고, 휴학하고, 제적까지 당했잖아.”
영실은 씩 웃었다.
“이제 다 옛날 얘기죠. 재입학해서 졸업까지 했으니 됐죠 뭐.”
“그래도 난 그게 늘 마음에 걸렸어.”
승길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메뉴판을 들었다.
“야, 영실아. 너 여기 해장국만 먹어봤지?”
“그쵸. 대학 때 이후로는 처음 와요.”
“오늘은 제대로 먹여줄게.”
그는 아주머니를 불러 모둠 수육, 육회, 해장국을 시켰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이 테이블 위에 올랐다. 고기 냄새와 된장국 향이 뒤섞여, 마치 젊은 날의 시간들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형, 수육 진짜 부드럽네요. 육회는 양념이 예술이에요.”
“많이 먹어. 영실아, 내년부터는 지방 계열사로 간다며?”
“네. 뭐, 대기업도 사정이 어렵죠.”
그때 대영이 진지하게 물었다.
“영실아, 나랑 같이 일해볼래?”
“예? 무슨 일이요? 전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다 살아서…”
정태가 잔을 들어 올리며 끼어들었다.
“대기업 일, 재미있냐?”
“재미라기보단… 그냥 하는 거죠. 공무원처럼요.”
대영이 말했다.
“지금 난 중국 쪽 맡고 있는데, 인도 쪽에도 공장을 세우려 해. 함께할 사람이 필요해. 영실이 넌 믿을 수 있잖아.”
승길이 맞장구쳤다.
“맞아. 우리랑 일하자. 월급은 정태 형이 많이 줄 거야, 그치 형?”
정태가 웃으며 술을 따랐다.
“야, 영실아. 나 예전에 대성집에서 뭐라 그랬는지 기억나? 취업 못 하면 내가 사업해서 먹여 살리겠다고 했지.”
“기억나죠. 형답게 허풍 섞인 약속이었어요.”
“그럼 그 약속, 이제 지킬 때가 됐다. 같이 가자.”
정태의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30년의 세월이 식탁 위의 김처럼 피어올랐다. 서로의 얼굴에는 세월의 주름이 있지만, 눈빛만큼은 예전 그대로였다. 영실은 잔을 들며 말했다.
“형들, 그럼 이번엔 제가 먼저 따를게요.”
셋의 잔이 부딪혔다. 청량한 소리가 오래된 대성집의 벽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