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대성집

영실의 첫 대학 축제, 마지막 날.

애기능의 모든 동아리와 학과 주점들이 문을 닫고, 통합 뒤풀이가 열렸다. 잔디밭 곳곳에는 노래와 웃음이 섞여 흘렀고, 플라스틱 컵이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서 부딪혔다. 영실은 선배들과 술을 돌리며 이 주점, 저 주점을 오갔다. 역과 선배 승길과 마주앉은 자리에서 영실이 물었다.

“형, 근데 정태 형이 안 보여요?”

“정태 형? 며칠째 안 나와. 집에 좀 간다더라.”

“매일 보던 형이 안 보이니까 괜히 허전하네요.”

그때 학생회장 대영이 나타나 영실을 불렀다.

“야, 영실아! 거기 있었구나. 승길이도 있네. 너희 둘 다 이리 와. 오늘 공대 학생회에서 크게 한턱 쏜다.”

“한턱이요?”

“응, 주점 수익 남은 거로 맥주 10짝, 소주 10짝 시켰어. 오늘은 다 같이 뿌시자!”

“한 짝이 몇 병이죠?”

“스무 병. 맥주 200, 소주 200. 계산은 나중에 하자.”

대영의 호탕한 목소리에 잔디밭이 웃음으로 들썩였다. 셋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가, 어느새 별빛 아래 잔디 위에서 잠이 들었다. 뜨거운 햇살에 눈을 뜬 영실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응? 잔디밭이네…’

비둘기 몇 마리가 남은 안주를 쪼고 있었고, 여기저기 학생들이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옆에서 코를 골던 승길과 대영을 흔들었다.

“형들, 일어나요. 아침이에요.”

승길이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어휴, 머리 아프다.”

대영은 주위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자, 다들 정신 차려! 빈병부터 모으자. 영실이랑 승길이는 빈병 팔아서 해장국 값 벌어와라.”

“빈병이요?”

“그래, 슈퍼에서 받아줘. 한 병에 몇십 원씩.”

영실과 승길은 반쯤 취한 몸으로 잔디밭을 돌며 병을 주웠다.
맥주병, 소주병, 캔맥주까지. 두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슈퍼에 가니, 의외로 꽤 큰돈이 됐다.

“형, 생각보다 많이 모였어요.”

“좋아, 그럼 해장국 먹으러 가자.”

그때 깔끔한 셔츠 차림의 정태가 나타났다.

“너희들 어디 가냐?”

“해장국 먹으러요. 형도 같이 갈래요?”

정태가 피식 웃었다.
“그래, 같이 가자. 이번엔 내가 살게.”

“형이요?”

영실과 승길은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따라와라. 대영이 너도 와. 학생회장 하느라 고생했잖아.”

교문을 나서 한참을 걸었다. 좁은 골목 끝, 붉은 벽돌집 옆에 오래된 간판이 보였다.

‘대성집.’

정태가 익숙하게 문을 열었다. 안에는 스테인리스 식탁과 시큼한 곰탕 냄새가 퍼져 있었다.

“형, 여기 비싸 보여요.”

“괜찮아. 오늘은 형이 쏜다.”

승길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얼마 만에 집에 들어간 거예요?”

“글쎄, 한 석 달 됐나.”

“부모님이 걱정 안 하세요?”

“걱정은 하시지. 근데 이제는 뭐, 나도 애 아니잖냐. 아버지가 공부 다시 하라시더라.”

대영이 조심스레 물었다.
“형, 구속 경력 있으면 취업 어렵지 않아요?”

정태는 피식 웃으며 소주잔을 비웠다.

“그럼 사업하면 되지. 내가 길 닦아놓을 테니까, 너희 나중에 먹고살기 힘들면 나한테 와라. 일자리 정도는 만들어줄게.”

그 말에 영실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허세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믿음이 갔다. 정태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잠시 후, 해장국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붉은 고추기름이 고소한 냄새를 풍겼다. 영실이 한 숟갈 뜨며 감탄했다.

“형, 이거 진짜 맛있어요. 내장도 없고 소고기 천지예요.”

정태가 미소 지었다.

“그게 다 한우야. 영실아, 나중에 네가 선배 되면 후배들 데리고 와서 사줘라. 이게 고대의 정(情)이야.”


그날 대성집에서 먹은 해장국의 맛과 정태의 말 한마디는 영실의 마음 한구석에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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