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미국으로

“여보, 늦겠어요. 비행기 시간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됐나?”

“이번엔 며칠 동안 있다 오는 거예요?”

“글쎄… 테슬라하고 세부 논의를 해야 하니, 조금 걸릴 것 같아.”

“중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미국으로 가래요?”

“바쁜 게 좋은 거지.”


영실은 아침을 서둘러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서 잠시 전화를 걸었다.

“대영이 형, 지금 출발하려고요. 인도 쪽 협상은 잘 됐어요? 아, 다행이네요. 이번에 미국 가면 옥비 만나서 얘기해 볼게요. 테슬라에 우리 배터리 넣고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문제요. 그게 되면 미국 시장에서도 훨씬 경쟁력 있을 거예요. 네, 그럼 다녀와서 연락드릴게요. 형도 건강하시고요.”


전화를 끊은 뒤, 영실은 탑승구 너머로 비행기를 바라봤다. 그 순간, 오랜 세월이 한 줄기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비행기가 구름 위를 오르자, 영실은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하얀 구름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고, 그 틈마다 젊은 시절의 기억이 흘러나왔다.


1993년.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대운동장을 가득 메운 구호와 함성. 대영과 함께 뛰던 시위 현장, 삼국지를 읽으며 이론 세미나를 주도하던 정태 형의 진지한 눈빛. 그리고 짝사랑하던 옥비. 그녀가 다른 남자들과 웃고 있을 때,

멀찍이서 바라만 보던 그날의 자신. 그 쓰린 청춘의 감정이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있었다.


그의 기억은 이어졌다.
정규가 사발식에 실패하자, 대신 사발식을 두 번이나 했던 일. 같은 대학을 지원했던 현준이와 합격 소식을 확인하고 기쁨에 겨워 캔맥주를 나눠 마시며 두 시간이나 걸어서 집까지 돌아가던 그날의 바람. 그 모든 장면들이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한 장면, 한 장면 되살아났다.


2023년.
입학 30주년 문자를 받고, 다시 만나게 된 동기들. 타바와 함께 달렸던 자전거길, 여행 소모임의 웃음, 가평 MT의 별빛 아래서 다시 만난 옥비의 얼굴. 그 모든 시간이 이어져 지금의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리라.


영실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결국 이렇게 되려고 그랬던 거구나…
나의 소중한 인생이여, 나의 소중한 벗이여, 그리고 내 청춘을 품어준 나의 대학이여.’

창밖으로 부서지는 햇살이 그의 마음속에도 조용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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