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옥비의 전화

축구 경기가 끝나고, 영실은 딸들을 집에 바래다준 뒤 고대 근처 뒤풀이 장소로 향했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영실아~ 나 옥비야. 영실이 맞지?”

자신감 넘치는, 그때 그대로의 옥비 목소리였다.

“옥비야? 한국에 왔어?”

“응. 고연전도 보고, 회사 일 때문에 잠깐 들어왔어.”

“근데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그거야, 동기 몇 명한테 물어보면 금방이지. 혹시 지금 어디야?”

“고대로 가는 중이야. 오늘 뒤풀이 있거든.”

“좋아. 그럼 고대 근처 커피숍에서 보자.”

영실은 잠시 멈칫했다.

'뒤풀이보다 더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

“옥비야, 무슨 급한 일 있어?”

“급한 건 아니고, 그냥 네 얼굴도 보고 물어볼 게 있어서. 혹시 나 만나는 게 불편하진 않지?”

“그럴 리가. 오히려 반갑지.”

카페에 들어서자, 옥비는 여전히 단정한 옷차림과 또렷한 눈빛으로 그를 맞았다.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당당했다.

“영실아, 나 테슬라에서 일하잖아. 지금까지는 중국 배터리를 써왔는데, 미국 정부가 요즘 중국산 부품을 규제하잖아. 그래서 한국 배터리를 새로 찾고 있어.”

“그렇구나… 난 회사 일만 하느라 그런 건 잘 몰랐네.”

“이번에 한국 배터리 회사 몇 군데를 접촉하는데, 대부분은 이미 경쟁사와 계약이 돼 있어서 쉽지가 않아. 그런데 ‘태영’이라는 회사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어. 혹시 들어봤어?”

“태영? 처음 듣는데.”

“이 회사가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야. 액체형보다 훨씬 안전하고, 주행거리도 늘어나지. 테슬라에서 독점 계약을 추진하고 있어서 이번에 내가 직접 경영진을 만나기로 했어.”

“그래? 그럼 대단한 회사네. 근데 내가 그런 분야를 잘 몰라서 미안하다.”

“아냐. 다만 들으니까 이 회사 임원들이 고대 출신이라서 혹시 네가 아는 사람일까 해서 물어봤어.”

“고대 출신?”

“응. 회장이 김정태, 사장이 김대영, 그리고 내가 내일 만나기로 한 부사장이… 이승길.”

영실의 손에 들린 커피잔이 살짝 떨렸다. 뜨거운 커피가 손등에 닿았지만,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뭐… 뭐라고 했어?”

“태영 부사장이 이승길이라니까?”

영실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멀게만 느껴지던 과거의 이름들이 하나씩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정태. 대영. 승길. 햇빛촌, 역과, 연희동 시위,

그 뜨거운 1993년의 시간들이 커피잔의 흔들림 속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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