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 학생회장 대영은 버스에 올라타며 영실에게 물었다.
“영실아, 화염병이랑 쇠파이프 다 챙겼지?”
“네, 동기들이랑 다 옮겼어요.”
버스 안은 이미 긴장된 공기로 가득했다. 연희동 진격 투쟁에 나서는 학생들로 꽉 찬 버스 뒤편엔 화염병이 든 상자가 켜켜이 쌓여 있었고, 쇠파이프는 신문지에 감싸져 좌석 밑으로 숨겨져 있었다.
잠시 후, 대영이 버스 맨 앞에서 일어섰다. 손에는 구겨진 확성기, 눈빛은 결연했다.
“동지들, 잠시 후면 연희동에 도착합니다! 광주 학살의 주범 전두환과 노태우는 아직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습니다. 비자금으로 호위호식하는 저들을 우리가 끌어내야 합니다! 오늘이 고연전이라지만, 우리는 경기를 보러 가는 게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체포 결사대입니다. 시민들이 시위할 때, 우리가 앞에서 길을 열어줄 겁니다. 우리가 무너지면 아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버스 안에 웅성거리던 목소리들이 점점 잠잠해졌다. 학생들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결의가 뒤섞였다.
영실은 마른침을 삼켰다. 손에 쥔 화염병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버스는 연희동 입구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화염병 특유의 휘발유 냄새가 퍼졌다.
“자, 1학년은 화염병조다. 앞줄에 서서 던지고, 던지면 바로 빠져라! 2학년은 쇠파이프조로 뒤를 지켜라.
너희가 사수대다. 절대 물러서지 마라!”
대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학생들은 떨리는 손으로 병을 들고, 입구 쪽으로 한 줄씩 나섰다.
“자, 출발한다!”
버스 문이 닫히자마자 학생들은 도로를 향해 뛰었다. 그들의 앞에는 방패를 든 전경들, 그 뒤엔 곤봉을 든 백골단이 있었다. 지랄탄차의 총구가 번쩍였다.
‘덜컥, 덜컥—’
심장이 뛴다. 영실은 맨 앞줄에 섰다.
왼손엔 화염병, 오른손엔 라이터.
확성기에서 경찰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불법 시위대는 즉시 해산하라. 저항할 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구호를 외쳤다.
“전두환을 구속하라!”
“노태우를 처단하라!”
함성은 순식간에 도로를 메웠다.
“화염병조, 불 붙여!”
대영의 목소리가 울렸다. 영실은 손이 떨렸지만 라이터를 켰다. 순간, 휘발유 냄새와 불꽃이 번쩍였다. 손끝이 뜨거웠다. 불붙은 병을 던지는 순간—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하늘로 튀어올랐다.
“영실아, 던졌으면 뒤로 빠져!”
영실은 뒤로 물러서려다, 도로의 돌부리에 걸려 그대로 넘어졌다. 손에서 화염병 파편이 굴러 떨어졌다. 무릎에서 피가 났다. 뒤에서 백골단이 달려왔다.
헬멧 밑으로 번들거리는 곤봉, 그 끝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팔을 낚아챘다.
“영실아, 이쪽이야!”
대영이었다.
그는 영실의 어깨를 부축하고 함께 골목 안쪽으로 뛰었다. 뒤에서는 쇠파이프와 방패가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타닥! 탁! 탁!”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최루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참을 달린 후, 영실은 헐떡이며 멈춰 섰다.
“형… 괜찮아요.”
“괜찮니? 하지만 이번엔 네가 잡히면 안 된다. 이제 본대 쪽으로 가. 나는 다시 앞에 가서 막을게.”
대영은 잠시 숨을 고르고, 시위대 앞으로 뛰어나갔다. 영실은 숨을 몰아쉬며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 순간 영실은 깨달았다.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 이상할 만큼의 평온이 찾아오고 있었다.
모든 소음이 멀어지고, 마치 세상이 정지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