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급식에서 빠질 수 없는 메뉴 1등은 '카레라이스'입니다. 학교급식에서도, 구내식당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 짜장밥, 볶음밥이 등장합니다. 대체로 수요일에 말이죠.
21살에 어린이집 원장이 되었습니다.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조리사를 겸했었죠. 매일 밥, 국, 반찬 세 가지와 두 번의 간식을 만들었어요. 조리사 없이 8년 간의 조리 경험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은 아주 잘 만듭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식단은 자극적이지 않은 저염식으로 기름기 없는 담백한 음식이 많죠. 아이들 반찬을 잘 만든다고 요리 솜씨가 좋은 것은 아니에요. 주부 경력과 조리사 경력을 더하면 30년 가까이 주방과 함께 보냈지만 그럴싸한 요리는 못하거든요. 제가 도전하고픈 요리는, 아귀찜, 코다리찜, 해물탕 같이 진짜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에요. 아쉽게도 어른 손님 방문이 거의 없고, 가족들도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만들 일이 거의 없답니다.
오늘 함께 만들고픈 메뉴는 "기름기 없이 담백한 닭가슴살 야채 카레"입니다. 처음 야채를 볶을 때 프라이팬을 달구는 정도의 기름만 사용하고 이후에는 물을 추가하며 물로 볶아줄 거예요. 카레가루에도 기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채소를 익히기 위해 꼭 기름을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카레는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메뉴입니다. 그런데 앵글이와 동글이가 좋아하지 않아서 잘 만들지 않아요. 제가 잘 만드는 음식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메뉴도 카레인데 아이들이 잘 먹지 않으니 안 만들게 됩니다. 남편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주부들이 잘 안 만들게 돼요. 오늘은 아이들도 홀딱 반하도록 야채를 듬뿍 넣고, 자극적이지 않은 순한 맛 카레를 만들어 볼게요.
오늘따라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에 힘이 쭉~ 빠져있습니다. 경기가 회복세에 있긴 하지만 예년 같지 않고, 주가의 등락도 널을 뛰니 남편의 흥을 돋울 일이 별로 없는 요즘입니다. 기운이 쑥 빠진 남편을 위해 좋아하는 음식으로 달래줘야겠어요.
제가 좋아하지 않는 채소는 '당근'이에요. 당근은 김밥에 넣은 것만 즐겨먹어요. 익은 당근 특유의 향과 맛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당근은 몸에 좋으니 챙겨 먹으면 좋겠지만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먹는 것은 마음 건강에 좋지 않으니 김밥을 먹을 때 듬뿍 넣어 먹는 것으로 정했어요. 제 맘대로요. 제가 즐기지 않아서인지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아요. 은근 편식쟁이 엄마를 둔 덕분에 편식을 해도 야단을 맞지 않는 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카레에는 제가 좋아하는 감자를 잔뜩 넣고, 제가 좋아하는 애호박과 양파를 많이 넣어서 만들 거예요.
카레에 넣을 고기류는 집집마다 달라요. 소고기, 돼지고기를 넣기도 하고, 햄을 넣어주기도 하죠. 저는 담백한 음식을 좋아해서 닭가슴살을 넣어줄 거예요. 지난번 라면만 끓일 수 있다면 '보글보글 닭볶음탕' 생각나시나요? 1kg 닭 두 마리를 손질할 때 가슴살만 따로 떼어 두었어요. 닭볶음탕이나 닭백숙에 넣은 닭가슴살의 퍽퍽한 맛을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음식을 할 때 가슴살을 떼어내어 밀폐용기에 보관해 두었다가 카레나 짜장, 볶음밥을 만들 때 사용합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부위를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그럼 함께 맛있는 카레를 만들어볼까요?
20분이면 OK! "담백한 닭가슴살 야채 카레"
◉ 재료 : 닭가슴살, 끓는 물 + 소주 + 월계수 잎(소독과 잡내 잡기용이에요.)
감자, 양파, 애호박, 카레가루, 동전 육수 2~3알
① 끓는 물에 소주와 월계수 잎을 넣어주세요. 그리고 손질된 닭가슴살을 넣어 잠깐 데쳐준 후 흐르는 물에 씻어 부유물을 걷어냅니다.
② 겉은 데쳐졌지만 속은 말캉말캉 신선한 닭가슴살을 큼직하게 썰어주세요.
③ 손질된 감자, 양파, 애호박을 깍둑썰기로 큼직하게 썰어주세요.
(잘게 썰면 익는 동안 야채가 녹아드니 조금 크게 썰어주세요.)
④ 달궈진 프라이팬에 약간의 식용유를 넣은 후 양파를 듬뿍 넣어 볶아주세요. 양파 볶기는 오늘 만들 카레에서 제일 중요한 과정이에요. 익히는 정도가 아니라 갈색 빛깔이 날 때까지 정성껏 볶아주세요.
(양파는 익으면서 단맛과 감칠맛이 납니다. 양파가 캐러멜 화가 될 때까지 볶아주면 카레의 풍미가 더해지고 깊은 맛이 나요.)
⑤ 잘 볶아진 양파 위에 닭가슴살을 넣고 볶아주세요. 볶다가 수분이 부족하면 식용유를 넣는 것이 아니라 물을 두 큰 술 정도씩 추가하며 볶아주세요.
(닭가슴살은 쇠고기나 돼지고기보다 빨리 익고, 조금 덜 익어도 잡내가 나지 않아서 빠르게 조리할 수 있어요.)
⑥ 양파와 닭가슴살이 익으면 그 위에 감자를 넣어주세요. 그리고, 야채가 자작하게 잠길만큼 물을 채워줍니다. (당근을 좋아하시면 당근, 고구마, 단호박 등을 추가하셔도 좋습니다.)
(이때, 감자는 볶지 않아도 괜찮아요. 대체로 모든 채소가 익을 때까지 볶느라 기름을 많이 사용하시는데, 야채는 숨만 죽어도 먹을 수 있고, 물을 부어 채수에 맛을 내면 볶아서 만든 것보다 담백한 맛이 난답니다. 카레나 짜장을 만드실 때 양파와 고기만 익히시고, 야채는 그냥 넣어 물과 함께 익혀주세요.)
⑦ 이때, 감칠맛을 더해주기 위해 동전 육수 두 알을 넣어주었어요. 뚜껑을 덮고 감자를 익혀주세요.
(중불에서 5분 정도 익히면 감자가 90% 정도 익는 답니다.)
⑧ 감자가 거의 익을 때쯤 호박을 넣어주세요. (햄, 콘 옥수수 등을 함께 넣으셔도 좋아요.)
(뚜껑을 닫고 2~3분 정도만 더 익혀주세요.)
⑨ 카레가루를 넣어주세요. 그리고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실리콘 주걱이나 나무주걱으로 저어줍니다.
(요즘 시판용 카레가루는 물에 풀지 않고 그대로 넣어도 뭉치지 않아요. 고형식 카레, 액상형 카레도 상관없어요. 한 번에 다 넣지 마시고, 조금씩 추가하며 간을 봐주세요. 우리 가족 입맛에 맞는 정도면 OK!)
⑩ 맛있는 카레가 완성되었어요.
(남편은 좋아하는 계란국과 함께, 앵글이와 동글이는 카레밥만~)
"담백한 닭가슴살 야채 카레"를 만드는데 20분 정도 걸렸어요. 닭가슴살만 익히면 채소가 익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아서 짧은 시간 맛있는 식사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맛은? 카레를 좋아하지 않는 앵글이와 동글이도 엄지 척! 올려주었어요.
집집마다 카레를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죠. 카레 가루의 종류도 다양하고, 넣는 재료도 다양한데 맛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카레 가루가 80%는 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만든 카레가 다른 집과 조금 다른 점은 기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거예요. 소고기나 돼지고기로 맛을 낼 때도 처음 양파를 볶을 때만 기름을 두르고 이후에는 물로 볶아서 만들어요. 야채에서 나오는 채수가 맛을 더해주어 상상한 것 이상의 맛을 내어줍니다. 아무리 좋은 기름을 사용해도 우리 몸의 혈관은 기름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오늘은 기름 없이 채수로 카레를 만들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