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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 Aug 21. 2019

떠나가야할 때

아테네를 떠나며

떠나가야할 때

 가는 날이 다가오니 모든 것이 다 아쉽다. 사실 크리스마스 즈음, 그러니까 이탈리아 여행, 메테오라 등 연속된 일정으로 지쳐있을 때 한국이 정말 그리웠다. 여행이라는게, 떠나있는다는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일정보다 더 빨리 가는 비행기편이 싸게 나온 건 없나 스카이스캐너로 찾아보기도 여러번이었다. 그런데 막상 지나고보니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갔다. 한국으로 떠날 때가 되니 모든 것이 아쉬웠다. 더 많이 보고 즐겨볼걸. 이제는 익숙해져 감흥 없던 아테네의 거리 하나하나도 다시 낯설게 느껴졌다.

 떠나기 며칠 전, 안나가 일한다는 카페에 방문했다. 안나는 능숙하게 카푸치노를 만들어줬다. 안나가 일하는 카페는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손님이 많이 없어 고민이라고 한다. 트립어드바이저나 구글맵을 이용해보는건 어떻냐고 얘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곧 한국으로 떠날 것이라 얘기했다. 안나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안아준다. 나도 안나를 안아주었다. 한국에서든, 그리스에서든 어디에서든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념품 쇼핑과 근사한 저녁식사

 떠나기 하루인가 이틀 전 다 같이 플라카지구에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선물을 사러 갔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선물을 준비하는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뭘 살까 고민하다가 그리스 전통과자, 해면과 올리브 핸드크림을 샀다. 물론 나를 위한 선물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는 쇼핑도 일이라 느껴질만큼 점심도 못먹고 정말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렇게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집에 와서 정리까지 하고나니 쓰러질 것만 같다. 하지만 언니가 저녁을 사준다고 해 언니를 따라 늦은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다. 와인과 함께 조개 에피타이저, 소고기 스테이크, 연어 스테이크, 거기에 디저트를 먹었다.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다. 거기에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곁들였다. 사실 나는 언니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거의 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막내동생과 달리 언니는 나이 차이가 2살밖에 안나 부딪히는 일도 많았고, 그런 만큼 싸움도 잦았다. 거의 1년 가까이를 서로 말을 안하고 지낸적도 있다. 하지만 언니가 살고 있는 그리스에 무작정 떠나오면서, 조금 더 언니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멀리 타지에서 혼자 사는 언니가 걱정되기도 하고, 아무리 언니 집이지만 신세지는 것이 미안해 1달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해주려고 노력했다. 집안일이며 음식이며 말이다. 아침을 제대로 챙겨먹지도 못하고 다니는 것 같아 졸린 눈을 비비며 직접 밥을 차려주곤 했다. 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그리스에 있는 동안 언니는 늘 많은 신경을 써줬다. 항상 다투기만 하던 사이었는데, 이렇게 서로 도우려 한 것도 매우 오랜만이었다. 의지할 곳 없는 타지, 낯선 곳에서 서로 더 의지하게 되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 해도 언니와의 관계는 분명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중 하나였다.


짐을 싸기, 정리하기

 가지고 간 것 중 언니에게 필요한 것은 최대한 주고 한국으로 오는 짐을 싸는데도, 짐을 싸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대체 뭐가 이렇게 많은걸까. 정리하고 또 정리하며, 옷가지와 기념품과 선물들을 알뜰 살뜰히 담았다. 짐을 싸며 좋은 기억들과 감정들은 최대한 함께 담아가고, 앞으로 다가오는 현실적인 걱정이나 불안함은 조금 두고 가려고 노력했다.

 한 달 조금 넘는 일탈이 끝났다. 새로운 것을 눈에 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스까지 와서 방콕을 하며 그냥 시간을 흘려 보내보기도 했다.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너무나 당연히도 크게 변한 건 없을 것이다. 나는 가서 다시 취업 준비를 할 것이고, 눈앞에 주어진 것들을 하나하나 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소중한 경험을 했고, 평소와는 다른 세상을 보며 시야를 넓혔다. 달리기만 해야한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이번 여행은 여유를 줬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분명 무언가는 변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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