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나종호 Oct 25. 2021

F20와 조현병에 대한 낙인

엘린 삭스(Elyn Saks) 교수 이야기

엘린 삭스(Elyn Sachs)라는 남가주 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로스쿨 석좌교수이자 심리학과/정신과 교수의 테드 강연은 지금까지 유튜브에서 약 백만 번가량 조회가 되었다 (링크). 강연 제목은 ‘정신병에 대한 이야기(A tale of mental illlness)’이다.

엘린 삭스 교수가 강연하는 모습 (출처: TED)

저명한 교수들의 정신 질병에 대한 강연은 워낙 흔하기 때문에 특별할 것이 없다. 이 동영상이 유독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았던 것은, 그녀가 스스로 만성의 중증 조현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엘린 삭스 교수는 약간은 정돈되지 않은 듯한 머리스타일, 조금 굳은 얼굴의 표정으로 본인이 예일대 로스쿨에 다닐 당시부터 조현병 진단을 받고, 병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대중과 나눈다. 그녀는 세 번에 걸쳐 정신과 입원 병동에 수백일 넘게 장기 입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수차례 격리 및 강박(restraint)되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의 의무기록에 그녀의 예후가 '어두움(grave)'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아무도 그녀가 지금 해내고 있는 일들을 사회에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들의 비관적인 예측과는 달리, 그녀는 명문대 로스쿨의 석좌교수가 되었다. 물론 그녀의 성공 뒤에는, 든든한 가족, 타고난 명석한 두뇌, 그리고 꾸준한 약물 치료와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정신분석 치료를 받을 정도의 경제적 뒷받침이 있었다 (아마 이 정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미국 내에서도 상위 0.01퍼센트에 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랑하는 남편과 여러 친구들을 만났고, 누가 봐도 부러워할만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최근에 <F20>라는 조현병을 소재로 한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고 반가움과 우려를 동시에 느꼈다. F20이란 국제 질병 분류 기준(ICD,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에서 조현병의 질병 코드명을 의미한다. 미국에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감독의 인터뷰를 봤을 때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사라지길 바란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기사로 접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조현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낙인을 조금은 희석시킬 수 있는 작품이 나올 거라 기대했다.

<F20>은 조현병을 겪는 서울대생 아들을 둔 엄마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스릴러 영화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한 후에 접한 기사들은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영화는 늘 엄마의 자랑이었던 아들이 조현병 진단을 받은 후로, 이를 숨기려는 엄마의 심리, 그리고 그녀의 비밀을 아는 또 다른 조현병을 가진 아이의 어머니가 나타남으로써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내용을 다룬 스릴러 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비판하는 기사를 접하기도 했다.


나는 영화를 보지 못했고, 영화의 기본적인 플롯, 그리고 영화를 본 후 영화에 대한 분석 기사들을 본 것이 전부이다. 따라서 내가 이 영화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신과 의사로서 이것 하나만은 꼭 말하고 싶다. 전문가이든 비전문가이든, 우리가 사회의 약자들, 편견의 당사자들에 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거나 글을 쓸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가 범람하는 인터넷 시대일수록, 말의 무서움에 대해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말, 행동, 작품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돌이 당사자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디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우리의 옛말을 절실히 새겨주시길 부탁드린다.

가령, 인터넷이나 책에서 종종 ‘모든 정신과 환자들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을 자주 본다. 맥락상 정신과 환자들을 위하는 선한 취지에서 하는 문장이기에,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얼핏 보면 정신과 환자들을 위하는 말인 것 같은 이 문장은, '(대다수의 정신과 환자들은 위험하지만)'이라는 말을 앞에 생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믿기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면 된다. 미국에서 한 정치인이 '모든 아시아인 (혹은 한국인, 흑인, 히스패닉, 다른 소수 인종)들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는 말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아시아인으로서, 그 말에 고마움을 느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치인은 아마 엄청난 비난 여론에 시달릴 것이고, 사퇴해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모든 정신과 환자들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대부분의 정신과 환자들은 폭력적이지 않다'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실제로  메시지 -- most people with mental illness are not violent-- 미국 정신의학 학회/심리학 학회 등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다) (1). 중증 정신 질병을 가진 사람들은 정신 질병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 비해 오히려 범죄의 피해자가  가능성이 11  높다는 유명한 연구 결과가 있다 (2).

<F20>의 상영 중단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

다시 엘린 삭스 교수의 강연으로 돌아와서, 강연의 말미에 그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제작자들, 그리고 언론인들에게 부탁을 한다. 영화를 비롯한 예술 작품들에 지속적으로 중증 정신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다루어 달라고. 그리고, 그저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낄 수 있게, 깊이 있게 다루어달라고 말이다. 그들이 단순히 진단명이 아니라, 정신 질병을 가지지 않은 사람과 다름없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 달라고 한다.


저는 우리가 함께 나누지 않는 정신 질병보다는, 우리가 함께 나누는 인간으로서의 본질(humanity)이 더 중요하다고 믿어요.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조현병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과 다름없어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처럼요. '일하고 사랑하는 것(to work and to love)', 그뿐이에요.

참고문헌:

(1) DeAngelis T. (2021). Mental illness and violence: Debunking myths, addressing realities. Accessed Oct 24, 2021. https://www.apa.org/monitor/2021/04/ce-mental-illness

(2) Teplin, L. A., McClelland, G. M., Abram, K. M., & Weiner, D. A. (2005). Crime victimization in adults with severe mental illness: comparison with the National Crime Victimization Survey.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62(8), 911–921.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죽고 싶었을 때, 내 아버지가 해준 말 한마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