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다는 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흘러간다는 것

by 백현진

온통 풍경이 푸르러지고 볕이 따가운 5월,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었다가 그만 할 일을 모두 제쳐둔 채 운동화를 신고 뛰어나갈 정도로 좋아한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지만 맨다리에 닿는 바람은 아직 서늘한 채다. 초록으로 가득한 거리를 걸을 때면 언제나 쇼코를 떠올린다. 온통 풍경이 푸르러지는 5월을 싫어하는 쇼코, 아이스크림을 팩째로 들고 먹으며 걷다가 손이 시려지면 무츠키에게 -나눠주는 거야-건네는 쇼코. 오렌지를 자르면 손거스러미에 묻어나고 그걸 핥으면 씁쓸한 맛이 난다.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구절, 오렌지를 자를 때마다 떠올린다. 쓸모없는 책을 쓸데없이 너무 많이 읽어 조금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내내 생각해 왔었는데, 생각해 보면 책과 음악과 영화에 얼마나 잦은 구조를 받았는가. 친구가 없던 내게는 책과 영화 속의 이상한, 망가진, 삐뚤어진,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인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친구였고 추억이었다. 흥행하지 못한, 낮은 평가를 받은, 외면당한 작품이라도 단 한 구절 단 한 장면으로 누군가를 구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로 어쩌면 이쪽에서 필사적으로 붙잡을 단 하나의 단어라도 끈질기게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장미가 피었네, 맥도날드에 앉아 찬 커피를 마시며 곧 커피머신이 배송된다는 메시지를 확인하며 그런 일들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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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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