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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피파 Jul 27. 2016

오늘 수필 #9_영원치 못한 존재

짧지만 진한 그들의 발자국

그 누가 말했다.

인생은 짧은 여행이라고.

여기 그 짧은 여행의 절반도

아니 그 절반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발자국을 남기고 떠나는 존재들이 있다.


아직 한창 현재 진행형인 내 삶.

그중 잠 머물러간 존재가 남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난 2남 1녀 중 늦둥이 막내다.

"와~ 늦둥이에 막내면 사랑 많이 받으며 컸겠네."

이런 나를 소개할 때면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말이다.

이제와 뒤를 돌아보면 마냥 틀린 말도 아니었겠지만

그만큼 성숙치 못한 질투와 시기심도 있었다.  


나보다는 여섯 살이 많은 누나와 네 살 많은 형.

삼 형제 중 서로 간 겨우 두 살 터울인 누나와 형은

유난히 더 가까워 보이고 코드도 손발도 척척 맞아 보였다.

둘만 알고 나만 모르는 것이 있을 땐,

괜스레 느껴지는 소외감에 외롭기도 했다.

종종 둘만 한 방 안에 모여 같이 수다라도 떨 때면,

난 호기심천국 모드가 발동해 귀를 쫑긋 기울였다.


그 무엇이든 나보다 더 잘하고 더 많이 알았던 누나와 형.

학교숙제든 집안일이든 항상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나.

부족하기만 했던 어린 나는 복에 겨운 소리로 투덜댔다.

'나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 나한테도 동생이 생긴다면,

누나와 형이 나에게 해준 것처럼 나도 충분히 잘해줄 수 있는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받기만 해왔던 내게, 처음으로 무언가 주고 싶은 존재가 필요했던 게.

 

Photo by 퍼피파


'오예에~ 드디어 나에게도 동생이 생겼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벅차올라

넘치는 기쁨을 영문모를 감탄사 하나로 압축해버렸다.


생후 6개월이 갓 지나 우리 가족의 품으로 들어온 요크셔 애기.

이름은 미니.

내 동생이자 우리 가족이니까 성까지 붙인다면 '김미니'다.

그 누구나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가 생기면

별칭을 붙여 불러주곤 한다.

손발이 오글거려 차마 못 내뱉던 유치한 단어들도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는 가능하듯,

내가 손수 미니에게 붙인 별칭은 '내 동생'이다.

그래, 넌 하나뿐인 내 동생.

(누나는 미니를 딸처럼 키웠다고 한다)



3이라는 숫자에 미니를 더하니 짝수가 되고

내 마음속 자리 잡았던 외로움을 저 멀리 쫓아냈다.

시간이 지나며 몸집이 커져가는 미니처럼

미니를 향한 내 사랑도 함께 성장했다.


그러고 보니 깨달아간다.

이 영원치 못한 약한 존재는

받은 만큼 돌려주고 있었다는 것.


내 하나뿐인 동생처럼 애틋하게 정을 쏟고 사랑을 주니

어두웠던 내 시기와 외로움에 그만큼 빛을 비추고 있었다.


이따금씩 우리 집 현관문이 유독 크고 무거워 보일 때가 있다.

콩나물처럼 쑥쑥 올라가는 학원 같은 반 아이들 시험 점수와는 달리

제자리걸음인 내 성적표를 들고 풀 죽은 채 들어가야 할 때

마치 가스불 미처 못 끄고 집을 뛰쳐나온 찝찝함처럼

친한 친구와 다투고 사과 한마디 없이 화해도 못한 체 문을 열 때에도

동생은 미리부터 마중 나와 항상 힘차게 나를 반겨줬다.


“다녀왔습니다. 나 왔어.”

라고 힘주어 겨우 외치기도 전,

살랑살랑 대는 꼬리와 조그마한 몸통에서 울리는 멍멍 소리.

무슨 경사라도 난 듯 반겨대는 작은 몸짓에

마음의 상처들은 눈 녹듯 사라진다.


학교시험, 학원숙제, 친구와의 갈등 등

내가 당장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해주지는 못해도

다치고 지친 마음의 상처에는 알게 모르게 힘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난 힘주어 말했다.

"미니야 고마워 ^^"


Photo by 퍼피파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을 할 때,

어떠한 것들을 사랑할까?

어떠한 것들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눌까?


장난감처럼 영원한 생명을 가진 물건들?

혹은 비록 영원하지는 못하지만

언어적, 비언어적 소통을 통해 서로 교감하는 존재들?


후자다.

어찌 보면 영원하지 못하기에 아름답고

영원하지 못하기에 더더욱 절실하다.

영원치 못할 거란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특별하고 소중해지기 마련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날들처럼 말이다.


떠났다.

5년이란 시간을 함께해온 내 동생 미니는

다시는 깨지 않을 깊은 잠에 들어버렸다.

내 마음속엔 천둥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내리는데

동생은 더 이상 불러도 답이 없을 만큼 곤히 잠들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내 동생이 추억으로 자리 잡은 날,

목이 쉬도록 소리치고 울고 또 울어버렸다.

그래 봤자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해소되지 않을 감정이었다.


대체 불가한 것의 상실은

가슴이 미어질 만큼의 슬픔을 건네 온다.

진정 진심을 나누었던 가족, 연인, 친구.

잃고 싶지 않은 대체 불가한 존재는

나를 약하게 동시에 또 강하게 만든다.

지키고 싶은 소중한 존재들은

농도 짙은 슬픔도 일깨워주지만

타인을 이해하게 되는 공감능력도 준다.

물론, 제정신을 차린 이후의 이야기일 테지만 말이다.


Photo by 퍼피파

 

하나뿐인 내 동생이 있어 행복했다.

우리가 흔히들 바라는 행복.

이 행복이란 놈은 야속하게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고통과 인내가 뒤따르며 두려움도 함께 수반한다.

힘들게 뒷바라지하며 키웠던 자식들이

기댈 수 있을 만큼 대견할 때.

보고 싶었던 가족들이 다시 볼 수 있는

그 제자리에 있을 때.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 겨우 꺼내었던 고백에

마음을 알아준 그녀.

영원치 못한 존재들과 추억들 위로 쌓이는 순간순간의 행복들.

미니와 얽힌 추억의 책장들,

잠시 꺼내어 보았다 다시 정성스레 덮어본다.


같이 있던 시간 동안 이 존재가 남겼던 것.

슬픔보다 행복이 훨씬 컸기 때문이었을까.

애도의 기간을 거치고 나니

파도처럼 밀려왔던 슬픔은 잔잔해졌고

이제는 사진을 봐도 눈물보단 미소가 지어진다.

정말 열심히 사랑한 만큼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또 그만큼의 성장통을 겪은 마음이었다.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

짧은 여행 중인 우리들에게

잠시간 짙은 농도의 발자국을 새기며 말하고자 했던 것들이

이러한 것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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