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 속 우리는 하나였기에 분리라는 망각은 이루 말할 수 없는생존을 위협하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혼자가 되는 것은 이 세상에선 아주 몸서리치게 무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 외로움에 저항하며 가장 견디기 어려워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온전한 행복을 느꼈지만 이조차도혼자라는 불안의 불씨는 꺼뜨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들과 함께 있든 없든 우리는 늘 외로웠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나를 채워주는 무엇인가가 없기에 외롭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꾸만 외부에서 외로움을 달래 수 있는 것을 찾아다녔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지 알지 못했기에. 그래서 더욱이 세상에서 올바른 혼자 있는 법을 몰랐고
혼자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버거운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깊은 골짜기에서 지독한 고독이 내 영혼을 삼키는 것 같은 그러한 공허함이었다.
공허함은 외로움의 그림자이고, 외로움은 공허함의 발자취이다.
이 느낌은 영혼의 부재를 의미한다.
내 안의 영혼을 알아보지 못하고 영혼과의 차단으로 살아감에 느끼는 것이다.
|삶이 공허한 이유는 '나'가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당신이 무엇이라생각하는 가.
생명체로 태어난 육체를 나로 알고 단정 지으며 정해진 한계의 틀 안에서 살고 있지는 아니한가.
진짜 나를 알지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하고, 진짜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도 몰라 환상의 물질들만이 진짜라 여기며 오직 외부세계만을 바라보고 매달리고 의지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그대는 영혼불멸의 존재이다.
지구라는 환상 속 세계에서 몸을 빌려 인간계를 체험하고 있는 영혼불멸의 존재말이다.
허나 그대는 이를 망각하고 몸만이 자신이라 믿으며 혼자 세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로 근본적인 상태를 알지 못했고 오해로 일어난 왜곡된 감정인외로움을 느꼈으며 이로 살아감에 공허함이 일어난 것이다.
외로움은 영혼의 부재를 말하며, 그로 공허함은 나로 살아가지 못함을 말해준다.
외로움은 내 안에 진짜 나와의 연결이 끊어짐에 생겨난 이상감정이다.
내 안에 있어야 할 참나의 부재로 무엇을 해도 나로 경험하지 않으니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다. 참나로 살아가지 못함에 무엇을 얻은 들 헛되지아니할까. 이는 우리가 혼자 걸어가야 하는 세상(영혼과 함께 가는 세상)을 홀로(참나로) 가지 못함에 영혼의 길을 이탈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혼자라는 망상에서 온 그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다른 뭔가에 매달리거나 집중해야 했다. 사람에 집착하거나 부와 성공에 매달리거나 온라인 세상에 빠지거나 술, 도박 등의 맹랑한 쾌락을 주는 물질들로 잠시나마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했다. 이러한 것들로 공허함을 채울 수 있을 거라 기대도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들 밖에 있는 것들로는 내 안을 채울 순 없으니. 모래성 같은 쾌락에 기대어 외로움의 바람을 막으려 했지만 그 무너짐은 공허함만을 더욱 부풀렸고 가짜 안정감의 거짓된 위안 또한 결국 더 큰 외로움의 무덤을 팠다. 진정한 충족은 세상 밖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삶의 공허함, 즉 자신을 잃은 외로움, 이 외로움은 평생을 인간기준의 정의에 맞춰 열심히 살아도 채울 수 없는 것이다. 그곳엔 '나'가 없기 때문이다. 나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채워지지 않는 쓸쓸한 이 느낌. 가슴이 허해서 자꾸만 외부에서 뭔가를 끌어와 집어넣은 들 환상의 그것은 빠르게 사라져 안개처럼 흩어진다. 그러므로 공허함은 밖이 아닌 내 안, 오직 나만이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나의 외로움을 안아 보내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내가 분리된 존재가 아닌 전체의 하나의 일부로서
물질 몸너머 영원한 에너지로 살아감에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이해함에 그 공허함은 사라질 것이다.
나의 영혼과의 깊은 합일을 이루며 참된 자아로 살아갈 때
내 안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풍요로움으로 가득 찰 것이다.
|나로 깨어날 때 충만한 삶을 살아가리
삶이 공허하다면 그것은 나의 삶에 '있는 그대로의 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
도대체 무엇이 나의 삶을 차치하고 있는 것인가.
영적으로 깨어나기 전 보통 우리들은 몸이 나라고 생각하며 분리되었다는 생각에 진정한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한 에너지들을 자신이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즉 진정한 나, 내가 아닌 두려움에서 자라난 새로운 인격체들이 자신들이 나라며 말하는 거짓된 꾸밈에 지배당해 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우리는 늘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이란 감정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외면하거나 숨겨버린다. 이는 그 두려움이 싫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을 인정함으로써 더 큰 무서운 감정이 나를 먹어버릴 것 같아 두렵기 때문이다. 그로 이렇게 억눌린 감정들은 뒤섞이고 파생되어 거짓된 인격체를 만들어 나로 위장한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모든 감정들과 무심코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내가 하는 것이라 착각하며 인간사회의 기준에 맞춰야 했던 나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을 가질 수 없었다. 나 자신을 높은 잣대로 평가하며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옥죄이며 자신의 자유를 앗아가는 잔인한 관리자가 되어있었다. 자신이라 여긴 생각의 조류에 무심코 몸을 맡기어 자신이라 여긴 감정의 파도에 휩쓸렸다.
감정의 파도는 무한하고 또 무한하다. 그 증폭감과 위대함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다. 그러하여 사랑이라는 감정은 우리를 하늘 높이 자유롭게 날게 하지만 그 반대의 두려움이 일으킨 증폭은 나를 지워내고 숨조차 내쉴 수 없는 어둠으로 장악해 버린다.
그러니 이젠 깨어나야 한다.
나의 육체, 감정, 생각은 모두 독립된 에너지의 흐름일 뿐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단지 연속적인 삶을 관찰하는 관찰자일 뿐이다.
내 안에 잠든 영혼을 깨워라
고요해져라 그리고
조용히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그 속에서만 진정한 연결을 찾을 수 있으니 그렇게 영혼과의 대화를 시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