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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 이팝나무꽃 활짝!

우리 주변 과학이야기

by 전영식

5월은 카네이션과 장미의 계절인데, 길에 나오면 세상이 온통 흰색꽃이다. 벚꽃은 봄이 오는 것을 알리고 홀연히 사라졌는데, 저 꽃은 무엇인가? 어르신들께 여쭤봐도 잘 모르신다. 갑자기 나타난 그 꽃나무는 이팝나무다. 궁금해진 김에 이팝나무에 대해 알아보자.


물푸레나무과인 이팝나무는 입하(夏) 즈음에 핀다고 하여 그리 불렸다고도 하고, 그 모양이 흰쌀밥(이밥) 퍼놓은 것 닮았다고 해서 또 그리 불렀다는 설도 있다.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하얀 꽃나무로 우리나라 및 동아시아에 자생한다. 중국과 일본엔 변변찮고 유독 우리나라에 많다. 자연스럽게 꽃(밥)이 많이 피면 풍년이, 그렇지 않으면 가뭄이 든다고 생각되는데, 그래서 예부터 신목으로 여겼다고 한다. 물푸레나무는 물을 좋아하니 물이 많으면 풍년이 된다는 말이고, 따라서 동어반복이다. 이팝나무 꽃의 꽃말은 영화 제목 같은 '영원한 사랑'이란다.


이팝나무 꽃, 위키미디어: Tanaka Juuyoh


이팝나무는 약 20일 동안 잎이 안 보일 정도로 나무 전체에 꽃이 피었다가, 가을이면 콩모양의 검은빛이 도는 타원형 열매가 겨울까지 달려있다. 요즘은 은행나무는 한물가고 이를 대체하는 수종으로 공원이나 가로수로 흔히 볼 수 있다. 꽃나무치곤 키가 큰 편이라 다 자라면 높이가 20m에 달한다.


이팝나무 열매, Aichi Prefecture, Japan, 위키미디어: Alpsdake


식물학적인 내용


속명 키오나나투스(Chionanathus)는 눈(雪)이라는 뜻의 키온(chion)과 꽃이라는 뜻의 안토스(antos)를 합친 말인데, 하얀 꽃이 마치 흰 눈과 같다는데서 유래된 것이다. 보는 눈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꽃은 5~6월에 흰색으로 원뿔모양의 취산 꽃차례(Inflorescence)로 달린다(아래 설명). 암꽃과 수꽃이 각각 다른 그루에 달려 있는 이가화, 즉 자웅이주(雌雄異株)로 새 가지의 끝부분에 달린다. 꽃받침은 4개로 갈라지며 가느다란 국수 같은 꽃은 4개이다. 수꽃은 2개의 수술만 있고 암꽃은 2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다. 열매는 타원형으로 9~10월에 검게 익는다. 새는 안 먹는다고 한다.


이팝나무 ⓒ 전영식


공해와 병충해에 강하여 가로수로도 심고, 정원이나 학교에도 식재된다. 어느 정도 큰 이후에는 내한성도 강하여 한반도 중부 지방에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하지만 천연기념물 분포에도 나타나듯, 물기 많은 물푸레나무라서 인지라 원래는 동해(凍害)에 취약하여 남부지방에만 노거수 천연기념물이 남아 있다.


서울시 가로수 개체수 추이


서울시에 따르면 2023년 현재 가로수 수종별로는 은행나무가 월등히 많다. 거의 1/3이 은행나무다. 그 뒤로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느티나무, 왕벚나무가 10% 이상을 차지하고 바로 다음인 5위로 이팝나무가 9%를 차지했다. 이팝나무가 통계에 따로 잡히기 시작한 것은 2006년인데 2,932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꾸준히 증가하여, 2023년 현재는 거의 10배 증가한 25,613주가 있다.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



서울시 관계자는 “경쟁자로 볼 수 있는 벚나무류는 꽃은 예쁘지만 병충해에 약하고, 꽃잎이 너무 많이 떨어져 관리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라고 은행나우에 디스를 하는데 “이에 따라 요즘에는 식재가 주춤한 감이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2004년 11만 7000그루였던 은행나무는 2023년 말 10만 2000그루로 1만 5000그루가 줄었다.

하지만 서울의 경우 2004년까지 거리에 단 한그루도 없었던(기타로 분류되던) 이팝나무가 2023년에는 2만 5000여 그루로 급증했다. 이래서 갑자기 이팝나무가 눈에 많이 보이는 것이다.


여전히 은행나무가 서울 가로수 1위지만 순식간에 5위에 올라선 이팝나무의 증가속도로 볼 때, 언젠가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가로수를 평정할 날도 올지 모른다. 물론 우리가 싫증을 부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참고로 전국 이팝나무 가로수는 2020년 기준으로 65만 5천 그루이다.



이팝나무의 인기 비결


전문가들은 이팝나무꽃이 “수술이 화관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꽃가루를 밖으로 날리기 힘든 구조라 꽃가루에 예민한 이들도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라고 말한다. 경주는 벚꽃으로도 유명하지만 5월에는 이팝나무꽃이 구시가지에 가득하다. 김해는 시목을 아예 이팝나무로 바꿨다. 서울 동작구는 이팝나무 꽃이 필 때 숭실대 입구에서 구청장이 나와 행사를 한다. 전주 팔복동, 대전 유성, 청주 무심천, 밀양 위양지에서도 축제가 열린다.


성장 느려서 민원의 소지가 적고, 잎사귀 면적이 적어서 간판 가릴 염려도 없다. 또 떨어질 낙엽 많지 않아 시청이나 구청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 병해충 거의 없는 완벽에 가까운 행정수라는 평이다. 물론 단일 수종이 가로수를 많이 차지했을 때 병충해가 돌면 대책이 없는데, 그건 아직 시기상조인 듯하다.


이팝나무 ⓒ 전영식

노거수 현황


우리나라에서는 단일 나무로 7개, 군락으로 1개소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전부 광양, 순천, 양산, 김해 그리고 고창과 진안에 있다. 남부지방이다. 이는 소나무(35), 은행나무(25), 느티나무(18), 향나무(11) 다음으로 건수가 많은 수종이다.


천곡리이팝나무.jpg.small.jpg 김해 천곡리 이팝나무, 천연기념물, 출처: 김해시청

이팝나무는 동아시아인 한국과 중국, 일본에만 분포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희귀종으로 꼽힐 정도로 귀한 나무다. 한국은 인공번식에 성공해 가로수로 심을 정도로 흔해졌지만, 일본과 중국 가면 아직 보기 힘들다. K-Flower인가 보다. 그런 까닭에 동아시아 3국은 다른 나무들에 비해 나이가 젊은 2~300년 된 노거수(老巨樹)나 군락지까지 천연기념물 등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외반출 승인대상 생물자원으로 지정해서 관리한다.


이팝나무 꽃, 위키미디어: Tanaka Juuyoh
이팝나무의 수피, ⓒ 전영식


양성화그루


이팝나무는 특이하게도 수술만 있는 ‘수꽃 그루’와 암술·수술이 모두 있는 ‘양성화 그루’가 따로 있는 ‘수꽃-양성화 딴그루’이다. 홍석표 명예교수 등 경희대 생물학과 생물계통연구실 연구진이 2016년 8월 학술지 <플로라(Flora)>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이런 ‘수꽃-양성화 딴그루(androdioecy)'는 전체 꽃식물 가운데 0.005%로 극소수 존재한다. 수꽃 그루는 열매는 맺지 않고 꽃가루 기증자(폴렌도 너) 역할만 하는 독특한 성별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많은 연구자가 수꽃-양성화 딴그루는 암꽃-수꽃 딴그루로 가는 중간단계라고 해석한다.


수꽃나무와 양성화나무의 차이는 겉으로도 드러나는데, 수꽃나무보다는 양성화나무가 더 많은 꽃을 피운다. 즉, 관상용으로는 열매가 맺히는 양성화나무가 꽃도 풍성해서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이중휴면성


이팝나무는 종자의 이중 휴면성으로 인해 씨앗 번식이 어렵고, 다량 생산이 힘들다는 특징이 있다. 자연 번식이 원활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이팝나무 씨앗은 껍질이 단단하고, 내부의 배가 발아에 적합하지 않아 휴면이 길게 유지된다. 이 두 가지 요인이 이중 휴면성으로 불린다. 이중 휴면을 깨기 위해 씨앗을 노천(땅)에 묻어 2년 정도 겨울을 보내게 한다. 이팝나무 씨앗을 심어 키우는 실생은 10~12년 정도가 지나야 개화하며 성장이 느리기 때문에 번식이 어렵다. 이러한 이팝나무의 특성 때문에 이팝나무를 번식시키거나 대량 생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씨앗의 껍질이 약해지고 내부의 배가 발아에 필요한 조건에 맞춰지도록 한다. 노천 매장 후 발아력이 높아진 씨앗을 가을 또는 봄에 파종한다.


종자는 10월경에 채취하며, 마찰법-침수법-노천매장법 순서 방법으로 한다. 종자의 종피에 상처를 주기 위해 모래와 종자를 1:3 비율로 담아 섞어 절구에 넣어 찧은 후 맑은 물에 2일간 침적하고 방충망 용기에 담아 지하 40-50㎝깊이에 노천매장하는 방법이다.


수종 개량


이팝나무는 종자가 두 번의 휴면기를 거쳐야 발아하는 이중휴면성을 가지고 있어 종자 생산 및 발아율이 낮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천 매장 후 파종, 온도 조절, 생장 조절제 사용 등 다양한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이팝나무는 또한 초기 생육이 둔해서 어린 묘목이 잘 자라지 않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수종 개량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이팝나무는 수관이 넓어 도시 가로수로 적합하지만, 특정 환경에서는 생장 속도가 느린 경우도 있다. 따라서 수관의 모양과 생장 속도를 향상하는 수종 개량도 필요하다. 이팝나무는 병충해에 강하고, 염분에도 어느 정도 저항성을 가지고 있어 도시 환경에서 활착률이 좋다. 하지만, 특정 환경에서는 병충해 발생 가능성이 높아 수종 개량을 통해 내병성 및 내충성을 향상하는 것도 필요하다.



취산꽃차례


꽃차례(화서花序, Inflorescence)는 꽃이 피는 순서와 방향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꽃은 식물에게 가장 중요한 번식 수단이기 때문에 각 식물이 꽃의 수와 피는 순서에 전략적인 선택을 한다. 꽃차례는 크게 유한꽃차례와 무한꽃차례로 나누는데, 유한 꽃차례는 꽃대 끝에서 먼저피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피우는 것(아래 사진의 원번호가 순서이다)이고 공간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한 꽃차례라고 한다. 무한 꽃차례는 반대이다. 꽃차례는 식물의 동정 및 계통의 유연관계를 파악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640px-Hegi_cymes.png 취산 꽃차례의 여러 종류, Hegi, G.: Illustrierte Flora von Mittel-Europa, 위키미디어: Public domain


이팝나무 꽃차례는 취산꽃차례(聚散꽃次例, cyme)인데, 위에서 아래쪽으로 꽃이 피는 유한꽃차례의 일종이다. 꽃차례의 끝에 달린 꽃 밑에서 다른 한 쌍씩의 꽃자루가 나와 각각 그 끝에 꽃이 한 송이씩 달리는 것이 계속 반복되는 꽃차례를 말한다. 취산꽃차례가 여러 개로 나뉘어 피는 겹취산꽃차례가 있다. 취산꽃차례의 꽃은 미나리아재비, 수국, 자양화, 작살나무, 백당나무, 부처꽃, 범부채, 물양지꽃, 좀작살나무, 돌단풍 등이 있다.


이팝나무 꽃, 위키미디어: Alpsdake


이팝나무의 미래


요즘 이팝나무가 이렇게 각광을 받는 이유는 여러 원인이 있다. 우리가 못살고 꾸미는데 신경을 못쓰던 시절에는 빨리 크는 나무가 우선이었다. 그래서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 은행나무를 심었다. 좀 살만해진 후에는 꽃을 보려고 벚꽃나무를 많이 심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플라타너스는 열매에서 털이 날려 알레르기를 유발한다고 하고 은행열매는 냄새가 심했다. 벚꽃은 꽃잎 치우기도 힘들고 버찌가 도로를 지저분하게 했다.


토착 식물 중의 하나인 이팝나무는 이래저래 양식이 힘든 수종이었다. 하지만 종자가 개량이 되고 양식 방법이 개발되면서 차츰 인기를 끌었다. 벚꽃이 진 뒤에 하얀 꽃이 무진장으로 피니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기후온난화로 중부지방까지 생육 조건이 맞아져서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이다.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은 어릴 때에 보기 어려웠던 이팝나무가 생소할 수밖에 없다.


이팝나무의 꽃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한다. 이뻐서 좋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기후 온난화가 이렇게 눈에 띄게 나타나는 게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분명 내년에는 이팝나무꽃이 여기저기서 더 많이 피워질 것이다. 이렇게 세상은 변하고 있다.


참고문헌


1. 나무위키, 위키 백과

2.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

3. Jun-Ho Song, Min-Kyeong Oak, Suk-Pyo Hong, Morphological traits in an androdioecious species, Chionanthus retusus (Oleaceae), Flora, Volume 223, 2016, Pages 129-137, ISSN 0367-2530,

https://doi.org/10.1016/j.flora.2016.05.009.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https://brunch.co.kr/@8133d3a5098c4e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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