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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는 다시 울 수 있었고

매미가 울어줄 테니, 나는 울지 않고 글이나 더 써보기로 했다.

by 변민욱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을까.

이른 아침이었다. 여느 날과 같이 씻기 위해 화장실 문을 열었다. 지겹도록 편안한 풍경. 그런데 무언가 다르다. 세면대 안에 매미 한 마리가 있다. 요즘 같은 때 깜짝 놀랄만한 게 남아있다는 것도 놀랄만한 일이다. 하지만 매미가 어떻게 저기 있을까. 밤새 방충망이 닫혀 있었는데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왔을까. 어쩌자고.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왔을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은 여태까지 내가 옮겨다닌 집들 가운데 가장 좁은 공간이다. 벽이 얇아 옆방과는 방음이 잘 되지 않았다. 천장도 벽을 닮아 여름날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내 내리쬔다. 밤이 되면 별 대신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을까. 무언가를 태우면 빈 공간이 남는다. 하루하루 내가 점점 비어 가는 느낌이었다. 여행이나 책으로도 해갈되지 않는. 글을 써도 오히려 더 나를 옥죄어오는. 더위보다 느껴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더 이부자리를 태웠다.


그래도 특별할 건 없는 아침이었다.

매미가 날아오르지 않도록 조심히 씻고 집을 나섰다. 서울에 올라온 뒤부터는 상대방에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질문은 함부로 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매미에게 어떻게 들어왔는지 묻지 않는다. 왜 들어왔는지도 묻지 않는다.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불가피한 이유나 호기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랬으리라고. 아니면 그렇게 했어야만 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다면 만들어내기라도 해야 했다. 가끔 부모님이 올라오신다고 해도 한사코 마다했고 고향에도 잘 내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지켜보는 누군가가 없었기에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않은 척, 버텨온 것일지도 모르므로. 그렇게 언제곤 떠날 수 있는 곳에만 사는 습관이 생겼다.


"삼 년, 아니 오 년 어쩌면 십삼 년"

늘 방학식 때마다 매미에 대한 일화를 말씀하시곤 했던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그 기간 동안 땅 속에서 매미가 될 날만을 기다리며 버텨오다가 저렇게 날아오르는 거야"

어린 날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이렇게 삼 년, 오 년, 십삼 년을 버티면 매가 될 수 있다고. 아이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기도를 했다. 키와 희망이 함께 자랐지만 아이가 사는 세상이 자라진 않았다. 세상은 오히려 등이 굽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차츰 아이는 신을 믿지 않게 되었고 거짓말이 늘어갔다.


집에 돌아오니 매미가 뒤집힌 채로 아등바등 거리고 있었다.

견딜 수 없었다. 엎드려 자는 습관이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저렇게 꿈을 꾸었을 것이다. 매미가 뒤집힌 채로 남아있는 눈빛을 보냈다. "나를 연민하지 마."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몰랐으리라. 방충망 사이로 흘러 들어와 세면대 위에 홀로. 거울을 바라보고. "이게 바로 나구나······." 깨닫게 되고. 유충이었던 시절을 떠올리고. 새들을 피해 한밤 중에 허물을 벗던 자신을 떠올리고······.


세상 그 누구보다 자신의 눈을 바라보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들어지는 때가 있다. 그 순간 흘려온 땀들이 조롱을 해오며 제 주인을 시험한다. 매미는 거울을 등지고 벽을 향해 날아서 부딪히고 떨어지면서 다시 거울을 보았을 것이다. 뒤집어지기도 하면서 내가 나갔다 돌아올 동안 수도 없이······. 그러다 매미는 제풀에 지쳐서 쓰러지고.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다······.' 이번엔 좀 다르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의식이 점점 흐려지면서 시간이 점점 더디게 흐르고. 그렇게 더디게 흐르는 시간 동안 과거가 이리저리 흩날리고. 칠흑같은 땅속에서 유충이었을 때를 떠올리고, 처음 날았던 순간을 떠올리다 문득 추억할 게 너무 없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고. 그 순간 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나는 더 이상 매미를 바라보지 못하고 시작노트에서 종이를 한 장 찢어왔다.

뒤집혀 있는 매미 뒤로 종이를 천천히 밀어 넣었는데 점점 움직임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내 눈엔 미세한 움직임이었던 그것이 매미에게는 마지막 단말마를 대신한 발악이자 발작이었겠지.

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창 밖으로 던졌다.

둔탁한 소리가 나면 죽은 거겠지.


가벼워져라

살아가라

사라져라


시간이 멈춘 듯한 배경을 뒤로하고 매미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날아올랐다. 그래도 뒤라도 한 번 돌아볼 줄 알았어서 서운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네게 보낼 마지막 편지를 내게 보내자 생각했다.


그래도 넌 이곳에 왔다가 떠난다

어떤 것도 거둬들이지 못하고 떠난다

차라리 뒤돌아 보지 말고 가라

세상에 또 날아오지 마라



한낮의 내리쬐는 햇빛을 잊은 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다. 무더웠지만 간간히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창 밖을 보니 달빛이 이파리 한 올 한 올 곱게 물들이고 있었다. 비록 가을은 올해에도 올 테지만 개의치 않는 듯 바람에 몸을 맡기며 달빛고 함께 일렁이고 있었다.






'시작노트' 매거진에서 이전 편들을 볼 수 있습니다.

3. 번지점프: https://brunch.co.kr/@qusalsdnr123/78

2. 땀의 연가: https://brunch.co.kr/@qusalsdnr123/76

1. 땀이 흐른다:https://brunch.co.kr/@qusalsdnr12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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