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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 Jun 13. 2021

기억이 났어 #003

그 라면 그릇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이 그릇을 찾아헤맨 사연부터 공개한다.



https://brunch.co.kr/@rainyhojin/110


오래 찾아 헤맸다. 카레, 김치찌개, 계란찜, 라면, 볶음밥도, 온통 그 그릇이었어서다. 그 그릇은 어린시절의 나다. 나는 그 그릇에 음식 먹는 것을 공주대접 받는것 처럼 귀하게 여겼다. 쓰고보니 짠하네.


 95%는 아빠다. 내 얼굴에서 키를 늘리고, 머리를 더 짧게 치고, 주름살을 몇 개 그려 넣으면 아빠가 된다. 우리우스가 처음 친정에 인사를 갔을 때, 결혼식날 우리 가족을 처음 본 교감선생님까지. 누구라도 우리아빠를 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신부측 아버지인지 따로 설명 안해도 됐을듯.


(삽교천 택시의 미스터리 편에도 관련 기록이 있음)

https://brunch.co.kr/@rainyhojin/172


생김새뿐이랴. 옷을 벗어 놓은 곳에 두는, 정리 및 패션감각부터, 어제는 괜찮았다가 오늘은 싫은 것이 많은 마음, 신 과일이라곤 쳐다보지도 않는 식성과 적당한 역마살로 인해 운전대를 1일 1회 이상 잡아야 하는 운명의 데스티니까지.


 5%를 구성하는 엄마는 어떤가. 빼어난 미모. 둘만 같이 다니면 우리 엄마인지 잘 몰랐다. 엄마가 우리 큰딸이라고 하면 어머~ 아빠닮았네..라는 에피소드가 가장 흔했다는 것 정도로..눈물을 닦겠다. 엄마는 정리를 잘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여 비싼 옷이 비싸 보이는 마법을 부린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살았고, 60년생 큰며느리다운 고생을 하며 살았다. 특히 내 바로 아래 동생이 정리 유전자를 많이 가져갔다.


이토록 엄마의 지분이 적건만, 오랜 물건을 가차 없이 처분하는 것만은 닮았다. 스무 살 시작한 원룸살이로, 책과 기록물을 제외하고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았다. 거기에 미적 감각을 잘 모르는 나에게 '그릇'이라는 것이 새로 입주하거나 오래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서른 여덟 현재, 생존한 그릇이라곤 엄마가 스무 살 때 챙겨준 분홍 코렐과 남편이 자취할 때 쓰던 파란 꽃 코렐뿐이다. 2021년 1월 음식물처리기를 구입하고 사은품으로 받은 한샘 도자기 4인 식기가 새로 주방에 입주했다. 당근으로 처분하지 못해서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미역국을 좋아하는 것 정도만이 전부 일정도로 성향과 생김새가 다른 특이한 모녀관계. 적당히 쿨했다. 엄마도 나를 터치하지 않았고 나는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다거나 하는 이벤트로 내 존재감을 했다. 결혼식 전날에도 그렇다. 울 친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와야 한다며 친정식구 오붓이 호캉스 하잔 제안도 쿨하게 거절한 엄마다. 그래서 결혼식 전날, 남편이 쓰던 방에서 나와 남편과 시동생님과 셋이 잤다는 레전설이 남아있다.


마와의 시간이 적었다. 철들고 더더욱. 글쓰기를 좋아해서 책을 쓰잔 모녀의 꿈도 이뤄지지 못했다. 엄마의 글 한편 발굴 못한 것이 한으로 남은 게 그 이유다. 그 와중에 찾은 라면 그릇은 참으로 생뚱맞다. 내 글을 기억하고 있던 셋째가 할머니 댁에 갔다 그릇을 발견한 거다. 엄마의 첫 기일날 그릇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 안 깨지게 조심조심 집으로 가져왔다. 없는 엄마와의 교집합. 그 분실물을 오랜 후에야 다시 찾았다.


오늘 점심, 그 그릇을 또미에게 대령했다. 멸치육수 찐하게 낸 잔치국수를 말아서. (참고로 우리우스의 전용 국수 그릇은 내가 스무 살 때, 엄마와 점포정리를 하는 곳에 가서 삼천 원 주고 사 왔던 한국도자기임) 또미는 와하하 국수다 하고 맛있게 먹고 나서는 "엄마. 너무 많으면 내가 배가 아플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었다. 나는 말했다.


살살 넣어. 깨져.


Fin.



오후 두시 기온이 섭씨 삼십이 도 였는데 또미는 국수를 다 소화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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