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멈추게 하는
탐스럽고 말랑한 복숭아를 사 왔다
엄마는 또 장바구니 정리도 하기 전에
복숭아 한 입을 베어 먹겠지
곧 연락이 온다
야야 복숭아가 쿨이다!
나는 숨도 안 쉬고 대답한다
쿨 아니고 꿀
비 오는데 장 보러 간다고 나섰다
또 엄마에게 연락이 온다
궂이 비 오는데.. 마 내일 가그라
나는 칼같이 대답한다
궂이 아니고 굳이
우유가 싼 노브랜드
나간 김에 노브레인에서
우유 좀 사온나
네 라는 대답 대신
노브레인 아니고 노브랜드
내가 대답만 하면
점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춘다
그러다 그 점들이 사라진다
엄마는 뒷말을 포기한다
딸의 칼 같은 지적질에 말문이 막힌다
겁쟁이 딸은
이 신묘한 기술을
엄마에게만 써먹는다
엄마에게 밖에 못써먹는다
엄마와 저의 일상 이야기입니다. 연세 많으시니 카톡에 글을 남길 때 오타가 많을 수 있지요. 딸이 사 온 탐스러운 복숭아 한 입 드시고 고맙다고 말씀하고 싶으셨던 엄마. 그런데 저는 오타를 찾아 지적을 하니 엄마는 고맙다고 쓰려다 뒷 말을 못 쓰십니다.
살다 보면 누군가의 입을 막고 싶을 때 있잖아요. 이런 신묘한 기술을 정작 써먹어야 할 곳엔 못써먹고 어디 감히 엄마한테 써먹고 있을까요.
한심한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