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입원

by 랑랑

병원에서의 하루는 10년 같은데 일상의 하루는 어쩜 그리도 쏜살같은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지 않은데 날짜는 저 혼자 준비를 끝내놓고는 훌쩍 다가왔다. 난생처음 항암약을 맞으러 가는 길엔 눈이 왔다. 그러고 보니 요 근래 '난생처음' 겪는 일들의 연속이다. 난생처음 대학병원, 난생처음 수술, 난생처음 시술, 난생처음 항암. 겪지 않아도 되고 겪지 말아야 할 것들만 '난생처음' 몰아치듯 겪고 있다. 나중엔 얼마나 좋은 일들만 가득하려고 이러는 걸까. 기대가 되지 않는 기대의 말을 읊조려 보았다.


엄마는 병원 로비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보호자로 같이 있어주겠다고 했지만 싫다고 했다. 일단 혼자 해보고 힘들면 얘기할 테니 그때 도와달라고 했다. 두 달간 나의 병치레 뒷바라지를 하느라 엄마는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삼시세끼 매번 새 밥을 지어 먹이고 조금이라도 무거운 건 함부로 들지 못하게 하고 온전히 나에게만 매달렸다. 항암치료를 핑계 삼아 더 이상 엄마의 일상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나 또한 엄마에게서 벗어나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가끔 소리도 지르고 싶고 엉엉 울고도 싶었고 대차게 신경질도 내보고 싶었지만 엄마와 가족들 눈치 보느라 꾹 억눌러왔던 감정들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난리를 칠 생각은 아니었지만 혼자 가만히 멍을 때리거나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꽤나 해소가 되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동으로 올라왔다.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것처럼 기뻐하며 병원을 나선 지 2주 만이다. 앞으로는 계속 병원을 집 드나들듯 하는 이런 생활의 반복이겠지. 다시 받은 환자복의 사이즈를 한 치수 작은 것으로 다시 부탁한 게 실없이 기뻤다. 입원 첫날부터 분주했다. 오후 2시 반쯤 입원을 하고 나서 바로 금식 시작이었다. 오후 4시 주사를 연결하고 채혈검사를 했다. 그리고 저녁 7시 또 한 번의 CT 촬영, 검사 후에는 바로 난소보호주사인 루프린을 접종했다. 항암제가 워낙 독하기 때문에 치료를 하게 되면 난소의 기능이 떨어져 폐경이나 불임까지 될 수 있기 때문에 치료가 끝날 때까지는 정기적인 루프린 접종으로 난소를 잠재워야 한단다. 그날을 기점으로 2022년 생리도 끝이 났다. 인체의 신비.




다음 날 아침부터 교수님의 회진이 있었다. 오늘 오후부터 항암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입원하고 며칠 뒤에 시작될 줄 알았는데 당장 오늘부터라 하니 손에 땀이 싸하게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제 밤새 항암제와 부작용에 대해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다. 여러 가지 부작용이 많았지만 대부분 울렁거림과 구토로 식사를 잘하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할 땐 쇄골 쪽에 항암제를 투여하는 기구인 '케모포트'를 삽입하는 시술을 해야 되는데 나에게는 시술 계획이 없었다. 교수님 회진 때 여쭤보니 "아가씨 쇄골에 상처 남는 게 좀 그렇잖아요."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입원 생활을 하면서 인류애를 폭싹 상실한 의사와 간호사들 정말 많이 만났는데 우리 교수님은(어느 순간 '우리' 교수님 됨) 나조차도 생각지 않는 내 미래를 위해 난자 보관도 권유해 주시고 쇄골 흉터를 걱정해서 케모포트 시술도 보류했다. 나보다 더 나를 생각해 주는 담당 교수님의 마음이 참 감동으로 다가왔다. 일단은 어제 CT검사 전에 잡아 놓은 주삿바늘을 통해 항암제를 투여할 예정이다.


항암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속이 울렁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지막 식사인 것처럼 점심밥도 싹싹 비우고 카페에서 생과일주스도 사 먹었다. 부작용으로 힘들어지기 전에 꾸역꾸역 많이 먹어 놓을 생각이었다. 점심을 먹자마자 또 하나의 검사가 잡혔다. 심장 초음파 검사. 도대체 약이 얼마나 독하기에 심장 초음파 검사까지 하는 걸까. 초음파 검사라 쉬울 줄 알았는데 담당 의사가 초음파 기계를 배와 명치 깊숙이 뚫을 기세로 꾹꾹 눌러가며 보는 바람에 아주 힘겨운 30분을 보내야 했다. 점심으로 먹은 제육덮밥과 컵누들이 그대로 게워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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