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리엔트 항암
상견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이어졌다. 물론 처음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양가 아버님들의 술잔이 여러 번 부딪히며 금세 말랑말랑해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껏 힘을 준채 고상한 척 말을 아끼고 있는 여동생의 모습이 웃겼다.
“동생이 언니보다 먼저 가서 서운해서 어떡해?”
동생 시어머니의 기습 질문에 예상 답변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가 그냥 웃고는 회 한점을 씹었다. 마주 앉은 신랑 형님의 난감한 눈빛이 대답을 대신 해주었다. '그래도 동생이라도 가는 게 어디예요.'
상견례가 마무리되고 모처럼 곱게 단장한 우리 가족은 셀카를 여러 장 남겼다. 한껏 꾸미니 꽤나 멀끔한 우리 가족이다. 365일을 코 밑에 콧물을 접착제 삼아 흙을 야무지게 묻히고 다녔던 내 동생이 언제 커서 결혼을 한단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사진 속의 우리 가족은 예쁘고 멋지게 빛났다. 나만 없으면 완벽하게 평범하고도 행복한 가정이다.
큰 가족 행사를 하나 무사히 넘기고 예정된 PET-CT검사 날짜가 다가왔다. 가족에게는 소화기내과 외래를 간다며 대충 둘러대고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 상황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폐에 있는 것이 악성 종양인지만 보려 했던 검사였는데 뜬금없이 소장 부분에 또 병변이 발생하였다. 소장의 일부분이라 보였던 사진이 PET검사 결과 빨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가족들께는 말씀드렸나요?"
"아니요."
"이제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왜요?"
“항암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아, 네...”
폐에 이어 소장까지 전이가 의심되는 검사 결과가 이어짐에 따라 예정되었던 수술은 계획은 항암 치료로 변경이 되었다. 내 몸엔 암이 얼마나 퍼져 있는 걸까. 맨 처음 항암 계획이 세워졌을 때도 교수님 앞에서는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는데 눈물이 곧바로 쏟아질 것 같아서 천장을 한 번 바라보고 침을 크게 삼켰다. 교수님은 두 가지의 치료 방법을 알려주었다. 작년처럼 링거로 맞는 항암제와 다른 하나는 먹는 항암제.
"교수님, 제 동생이 연말에 결혼을 하거든요. 머리 빠지는 항암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머리 안 빠지는 약 있습니다."
먹는 약은 링거로 맞는 항암약이랑 효과는 비슷하지만 머리는 빠지지 않는다고 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하지만 이건 피부와 머리가 하얘지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느 항암약처럼 오심, 두통, 무기력 등이 있을 수 있다는 부작용 설명을 들었지만 잘 들어오진 않았다.
"무엇보다 자몽은 드시지 마세요. “
모든 건 속전속결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손에는 항암약 처방전이 들려 있었다. 이렇게나 바로 항암이 시작되다니.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었다. 가족들에게 알려야 할 순간이 왔다. '원외 약국'이라고 크게 쓰인 처방전을 들고 홀린 듯이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병원과 가까운 역 주변에는 약국이 즐비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약국에 들어갔다.
> 첫번째 약국
"이거는 지금 약국에 없어요."
약사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처방전을 자세히 살펴 읽다가 다시 내 쪽으로 밀었다.
> 두 번째 약국
"이거는 지금 없고 주문해야 되는데 해드릴까요?"
"아니요."
손에서 배어 나온 땀으로 한 귀퉁이가 눅눅해진 처방전을 펄럭이며 약을 구하러 다니다 다시 눈과 코가 시큰해졌다. 서러웠다. 한 번에 구해지지도 않는 항암약을 찾으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내 모습에 기가 찼다. 세 번째 약국에서는 약을 구할 수 있었다. 약사는 '보트리엔트'라고 적힌 작은 약상자 두 개를 내밀며 "매일 아침 식사 전에 두 알씩 드세요."라고 말했다. 까만 비닐봉지에 항암약을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식사 후 엄마의 설거지가 끝나자마자 방에서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나왔다.
"나 엄마 아빠한테 할 얘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