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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Feb 24. 2024

어느 이장의 이상한 루틴

그것이 알고 싶다

오늘도 여전히 사무실 뒷문으로 한 사람이 휙 들어온다. 행동은 거의 물 찬 제비처럼 한 발만 쑥 내밀어 제3세계에 있다가 현실로 갑자기 순간이동 하듯 바로옆으로  툭 튀어나온 것처럼 들어오는 것이다. 또 그 마을 이장이다. 그 뒷문 출입구는 직원들만 이용하는 곳이다. 그 이장은 단 한 번도 정문으로 들어온 적이 없다. 우연히 고개 돌려서 얼굴을 마주 보지만 서로 전혀 인사를 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인사를 하며 들어온 적도 없고 그가 먼저 인사를 한 적도 없다. 나도 먼저 한두 번 하다가 인사를 하든 개의치 않는 거 같아서 보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휙 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팀에 와서 팀원들과 노닥거리긴 하지만 단 한 번도 나에게 말을 건 적도 없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농담 따먹기를 하는데 사무실의 주인공은 그 이장이다. 그 이장이 주로 말을 거는 상대는 우리 팀에서 공공근로를 참여하고 있는 미혼의 여성이다. 오늘도 여전히 그 이장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 존경하는 00 씨, " 책상 옆에 붙어 수다를 시작한다. 그렇다고 이상한 관계는 아니고 단지 친근감을 표시하는데 어떤 부분을 존경하는지는 알 수 없다.  


처음에 그 이장을 봤을 때 가운데 머리가 거의 비었고 테두리에만 머리가 나있고 염색하지 않는 듬성듬성 흰머리에 얼굴은 오랜 농사일로 검게 그을린 얼굴이라 진짜 50대 후반 아니면 60대 초반으로 봤다. 하지만 어느 날 그가 나보다 어리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웃으며 주민등록증까지 확인해 보았지만 정말 나보다 서너 살 아래였다.


이곳에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팀 밥도 사줘서 같이 먹고 아무런 별 껄끄러운 문제도 없었다. 얼마 전에도 면장이 나에게 어느 이장이 그랬는데 내가 어떻게 오셨어요 하는 말이 기분 나쁘다고 했다는 이장이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이장이 약간 의심이 가긴 했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장들이 오면 말을 거는 것보다 그냥 눈으로 보고 가벼운 목례만 하지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어보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의심일 뿐이다.


여전히 주기적으로 나타나 볼 것도 없는데 팀원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한 십분 하다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바로 가지 않고 더 오래 머물며 공공근로에게 농담을 오래 하고 있었다. 왠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난 하던 내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올해 처음으로 갑자기 우리 팀에서 관리하는 지역봉사 단체에 회원으로 들어왔다.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일단 잘 참여만 하면 되기에 그런가 보다 했고 회의가 열리면 참석도 했었다. 갑자기 공공근로하는 여성에게 이렇게 내뱉는 것이다.


"나 그 회원에서 빼버려, 그리고 공문 오면 찢어버려"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가 하는 말을 듣자 내 화를 실실 긁어보려는 심산으로 보였다. 지금 그 말을 하는 이유는 나 들을라고 한말인가. 그 회원 하지도 않을 거면 왜 신청은 했을까. 그 말하면 내가 달려가서 왜 그러시냐고 만류를 하길 바랐나. 내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던 나는 그 말에 약이 바짝 오르기 시작했다. 감정전화를 위해 일부러 우리 팀 여직원을 불러 경로당 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내 책상 옆으로 여직원이 서서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또 그 이장이 끼어드는 것이다.

그 여직원 이름을 부르며 " 왜 집에 가려고..?" 

아니 이건 무슨 상황과 아무 관련 없는 간섭인가. 수시로 찾아와서 직원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친한 직원 이름 부르며 "누구 어디 갔어 " "누구 어디 갔어"하는 루틴이 항상 똑같다.


지금까지 그 이장이 찾아와서 시답잖은 농담을 할 때 늘 이해를 할 수 없었고 불편해서 어떤 날은 내가 오히려 나서서 이장님 호칭을 부르며 커피도 타주고 했지만 이건 그때 한번 뿐이었다. 그 이장의 눈에 들기는 영원히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겨울의 끝자락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한기가 느껴지는 오늘 정말 그 깐죽거림의 가벼움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주여 그 이장이 앞으로 찾아와서 날 의도적으로 빡빡 긁어 속 터지게 하려고 해도 그것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고 내 마음의 평정을 찾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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