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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아는 맛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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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Sep 14. 2021

동서싸움에 새댁등 터진다, 제사탕국

이름없는 사람들의 의미없는 감정소모

밝혀두지만 내겐 동서가 없다. 남편은 무녀독남 외아들이다. 지금부터 등장할 동서지간은 나의 시어머니와 그 형님을 가리킨다. 시어머니의 형님을 '시큰어머니'라 불러야 할지, '큰시어머니'라 불러야 할지 고민이 된다. 시큰어머니라고 하면 어딘가 아픈 느낌이고, 큰시어머니라고 하면 시아버지에게 부인이 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아무래도 큰어머니라고 칭하는 게 무난할 것 같다.


큰어머니는 시가의 최고 권력자로서 모든 사안에 있어 최종결정권을 틀어쥐고 있는 핵심인사다. 그것은 '큰'며느리라는 그녀의 위치와, 맏이로서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관장해온 그녀의 공로과, 두루두루 위아랫사람을 잘 챙기고 품이 넓은 그녀의 성정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아랫동서인 시어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평소엔 입의 혀처럼 싹싹하게 굴다가도 일이 돌아가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형님, 일은 되게 해야지요."라는 말로 은근하게 큰어머니를 움직이는 숨은 실세.

 

집안의 모든 행사와 인사를 꿰고 있는 큰며느리와, 엉덩이가 가볍고 손이 빠른 작은며느리는 그야말로 환상의 콤비였다.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지난 30년간 장씨네 대소사는 그만큼이나 번듯하지는 못했으리라. 고생으로 맺어진 결속은 친동기간의 그것보다 끈끈했다.


30년 우애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시어머니가 "종교적 이유로 더이상 제사상을 차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다. 사실 그 전에도 시어머니는 제사준비와 뒷정리를 함께할 뿐, 제사에 뜻을 보탠 적이 없었다. 하나뿐인 그녀의 외아들 또한 엄마의 신념을 따라 제삿상에 절을 올리지 않았다. 장손이 아니었기 망정이지 집안이 발칵 뒤집힐 일이었다. 지엄하신 집안 어른들의 못마땅한 눈초리와 연거푸 쏟아지는 헛기침에도 꿋꿋하던 시어머니는 마침내 그 아들이 서른이 되던 해, 제사에 일절 동참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믿고 의지했던 동서에게 큰어머니가 느꼈을 배신감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제사만 제외하면 모든 대소사에서 이전보다 더 부지런히 팔을 걷어붙이는 동서에게 차마 마구 퍼부을 수 없었던 큰어머니는 제사 때만 다가오면 속앓이를 했다. 3년간 총성 없는 전쟁이 이어지던 가운데 방아쇠를 당긴 건 물론 큰어머니였다.


"와서 밥만 먹고 갈거면 앞으로 오지 마라! 힘만 더 든다!"

제사 뒷마무리를 도우러 왔다가 신발을 벗기도 전에 된소리를 들은 시어머니는 그날부로 다시는 제삿날 큰집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삿날을 제외하고는 변함없이 왕래하며 시장도 함께, 맛집도 함께, 여행도 함께 다니는 큰어머니와 시어머니의 갈등은 1년에 두 번, '제삿날'에만 겨우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해져 갔다.


그즈음 내가 새사람으로 들어와 시어머니의 며느리가 되면서, 이 풀리지 않는 '제사분쟁'의 한가운데에 놓이고 만 것이다. 집안의 모든 어른들이 나에게 어떤 행동과 역할을 촉구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모른 척 했다. 때로는 멍청이로 남는 것이 많은 고난을 비껴가게 해준다는 것을 나는 이때 깨달았다.




어느 해 추석엔 벌초를 함께 갔으면 좋겠다는 시어른들의 바람대로 평생 가볼 일 없었던 경상도의 야산을 찾았다.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지체해 점심시간이 되었고, 요깃거리를 공수하러 시어머니와 큰어머니, 멍청이까지 세 여자가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갔다.


한 줄에 천 원짜리 김밥을 파는 24시간 김밥집에 들어간 시어머니와 큰어머니는 죽이 척척 맞았다.

"어른들이 있으니까네 국물도 넉넉히 싸주소." 시어머니가 하면,

"김치 그까꼬 안 된다. 큰 통으로 다섯 통은 줘야지." 큰어머니가 했다.

올라오는 짜증을 꾹꾹 누르며 이만원 어치의 김밥을 말던 사장님이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보소, 김밥 한 줄에 천원입니다! 김치에 국물에 다 챙겨주면 뭐가 남는다고요!"


사장님의 기세에 잠시 잠잠해졌던 두 어머니들은 이번엔 사장님의 김밥 싸는 기술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와 진짜 잘 싼데이. 어예 저래 빨리 싸노." 

"얼마나 싸면 저렇게 되노. 억수로 빠르네."

세상에 이다지도 순수하게 자기중심적인 할매들을 보았나. 남의 마음에 불을 질러놓고 자기네들만 꽃밭에 앉아 희희낙락이다. 멍청이조차 민망해서 몸둘 바를 모르는 상황에서 오직 두 사람만 맑고 밝았다.


서로가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환장의 콤비, 두 사람의 쿵짝이 엇박을 내는 유일한 날이 바로 1년에 두 번 돌아오는 '제삿날'이다.




매해 명절, 시가에는 전운이 감돈다. 명절 아침이면 시아버지는 제사상에 올릴 수육을 싸들고 일찌감치 큰집으로 향하고, 나와 남편은 제사가 끝나갈 때쯤 시가를 나서 큰집에 간다. 밥은 고사하고, 큰집 음식이라면 과일 한 쪽 입에 넣지 않으면서도,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겠다며 기어이 큰집을 찾는 남편의 뜻을 존중해 이제는 군말없이 따라 나선다. 사실 큰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조금 고시랑거리기는 한다.


골목까지 마중나온 탕국 냄새에 큰집이 가까웠음을 실감한다. 차 안에서야 고시랑거렸든 어쨌든 큰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만면 가득 웃음을 장착하고 목소리를 세 톤 높인다.

"큰어머니, 저희 왔어요~~~"

"아이고 질부야 왔나. 와 엄마(시어머니)는 안 왔노. 엄마도 같이 오지."

이제 제삿날에 다시 볼 수 없는 얼굴이라는 걸 알면서도 매년 큰어머니는 시어머니에 대한 서운함과 질책을 내게 쏟아낸다. 달리 대답할 말이 없는 나는 더 만면을 찡그려 붙이며 부자연스럽게 활짝 웃을 수밖에.


잠깐만 앉아있어도 금세 점심 때가 된다. 밥은 집에 가서 먹겠다며 일어서는 남편을 큰어머니가 기어이 붙들어 앉힌다.

"완아, 니 안 고프다고 그카믄 되나. 아아랑 어마이는 배고프다. 질부야, 요 와 앉아라."

눈치껏 얼른 탕국에 밥을 말아 아이도 떠 먹이고 나도 먹는다. 밥은 밥인데 눈칫밥이다.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후닥닥 먹어치우고 설거지거리가 쌓여있는 싱크대로 향한다.


"형님, 제가 여태 도와드릴 생각도 못하고 애만 붙들고 있었네요."

"아니야 동서. 애가 어린데 당연하지. 동서는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된다."

우직한 큰어머니를 닮아 웅숭깊은 나의 시사촌 형님(큰집 며느리)이 말리고 나서면 뒤에서 큰어머니도 말을 얹는다.

"질부야, 안 해도 된다. 질부가 서서 그케싸면 내가마 미안시럽다."

고무장갑 한 켤레를 놓고 세 여자가 옥신각신하는 가운데로 큰어머니의 아들, 이 집의 장손, 시사촌 아주버님의 한마디가 툭 떨어진다.

"작은집 며느리한테만 미안하고 자기 며느리한테는 안 미안하나?"

"재야, 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데."


싸해진 분위기를 틈타 고무장갑을 사수한 작은집 며느리가 설거지를 시작한다. 설거지는 힘들지 않다. 힘든 건, 설거지통에 그릇을 넣어주며 연신 미안해하는 시사촌 형님을 안심시키는 일이다.

"동서, 요까지만 하고 쉬어라. 힘들다."

"아니에요, 형님. 내내 서 계셨던 형님이 힘들죠."


큰집 며느리와 작은집 며느리는 서로 이름도 모른다. 마치 원래부터 형님이고 동서였던 것처럼, 누구도 이름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집에선 이름도 없는 사람들, 이 집 제사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끼리 서운해하고, 미안해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는 일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뜨끈한 탕국 한 그릇의 대가가 너무 크다. 


탕국만 보면 '나와 상관없는 제삿상'을 둘러싼 산 사람들의 온갖 감정이 일시에 떠올라 나까지 복잡한 심정이 된다. 그래도 탕국은 맛있다. 진하게 우러난 육수에 무의 달큰함과 고기의 구수함이 더해지면, 밥을 말지 않고는 못 배긴다. 불편해서 안 먹기엔 너무 맛있는 탕국. 그래도 이 불합리한 불편함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면, 탕국 정도는 평생 안 먹고 살아 보겠다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나마나 한 다짐을 했더랬다.



+

벌써 2년 넘게 큰집에 가지 않았다.

제사 또한 잠정중단되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게 코로나 때문이다.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다더니,

올해 추석도 개똥 덕을 볼 모양이다.



표지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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