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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기 Jun 03. 2024

포기를 잊어버렸다.

 처음 이 페이지 글의 제목은 ‘운동을 잘하면 뭐든 잘한다.’였다.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연습을 해야 하고, 건강관리도 잘해야 하니까 그럼 자연스럽게 뭐든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썼던 문장이다.

 제목을 바꾸게 된 이유, ‘잘’이라는 의미가 누군가에게는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기 때문. 나 역시 운동을 오래 했으니까 운동신경이 좋다거나, ‘잘하지 않나?’라는 거만함이 있었지만 늘 새로운 종목에 도전할 때마다 느끼는 건 ‘나는 운동신경이 없다.’였다.


그런데도 운동을 했다. 다음달이면 올해 가을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석하기위해 준비를 할 생각이다.

이처럼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포기를 잊어버리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3학년, 처음 수영을 배울 때였다. 마침 집 근처에 시립 수영장이 있었다. ‘살면서 수영은 할 줄 알 아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기초반에 들어가 매일 아침 등교하기 전 수업을 받았다. 남들은 몇 주, 몇 달이면 모든 수영법을 익힌다는데, 나는 한 달이 다 되어서야 물에 떴다. 그것도 수영장의 키판 (본격적으로 수영을 배우기 전 물에서 발차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 스티로폼 재질의 넓은 모양의 판)을 두 손에 꼭 쥔 채. 겁이 많았던 이유였다.


발차기 몇 번에 한참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수영 선생님께서는 ‘너도 할 수 있어!’ 자신감을 불어넣었지만, 고개만 숙였다 하면 코로, 귀로, 들어오는 물이 무서워 캑캑거리기 일쑤였다.

몸에서 힘을 빼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게 쉬웠으면 나는 수영 영재, 아니 누군가 꿈을 묻는다면 당당히 말했을 테다. ‘국가 대표 수영선수’라고.


같은 반 친구 몇 명도 같이 수업에 참여했다. 다들 나보다 잘했다. 물이 무섭지 않으냐는 질문에 재미있다는 대답뿐이었다. 물 밖에서라면 모를까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가장 겁쟁이였다.

나중 돼서는 무릎 높이의 유아용 풀장에서 연습했다. 수업이 끝나면 혼자 키 판을 들고 가 5분이고 10분이고 물에 떠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고작 50센티 내외의 깊이였다. 만약 키 판을 놓치더라도 손으로 땅을 짚으면 고개가 밖으로 나올 수 있기에 나름 고안해 낸 방법이었다.

맥주병이었던 내가 발차기를 하면서 고개를 물속에 넣을 수 있게 됐다. 어느새 몸은 5m, 10m를 향해 가고 있었고 오랜 시간이 흘러 25m를 쉬지 않고 갈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 다시 수영을 시작한 건 스물 중반 때였다. 직장 동료들과 한여름 계곡에 놀러 갈 때도, 수영장이 있는 멋진 펜션에 갔을 때도 나는 늘 물 밖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물에 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는데 나만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한 번은 여름철에 지인 몇몇과 강원도 춘천에 놀러 갔다가 물 위에서 모터보트가 끌어주는 물놀이 기구를 타는데 순간 손에서 잡고 있었던 줄을 놓쳤다. 다행히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 물에 또 있을 수 있었지만, 발이 닿지 않는 강 한가운데에 혼자 있으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체 모를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기지는 않을까,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건 아닐까 등등. 사실 보트와 나의 거리는 2~3m도 안 되었는데…….;


창피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물에서 잘 노는지 신기했다. 악이 받쳤는지, 이제야 겁이라는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했는지 수영을 제대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집에 돌아와 바로 수영장을 검색해서는 새벽반 수영강습을 신청해 버렸다. 수강료까지 입금했으니 이제는 무를 수도 없었다.     


“회원님, 키도 크시고 팔도 기셔서 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 제가 사실은 맥주병이거든요. 어렸을 때도 키 판 없이 수영을 해 본 기억이 없어서요.”

“시간이 지나서 또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다른 운동도 많이 해 보셨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출발하세요. 출발!.”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여섯 시.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물속에 있어서인지 이미 몸은 활력이 넘쳤다. 남은 건 키 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기만 하면 된다. 중간에 고개를 물속에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하고 방향이 틀어지지 않게 주의만 하면 본격적으로 수영을 하기 전 기초 단계를 끝마칠 수 있다.


허리도 아프고 발차기를 쉬지 않고 하면서 고개를 움직여야 하니 숨이 찼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뒤이어 출발한 뒷사람들이 계속해서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 힘들어도 계속 참고 나아가야 했다.

 두 달 동안 수영장 물을 먹어가며 발차기와 팔 젖기를 배웠다. 그 뒤로 자유형을 배웠고 평형도 배웠다. 배영은 중급반, 접영은 고급반 수업에 참석해야 배울 수 있다는 말에 중급반으로 옮겼다. 맥주병이었던 내가 이제는 자세가 한참 부족하기는 해도 어엿한 중급반 레인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수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했다.


초급반 때에는 몰랐는데 중급반으로 바꾸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중급반이 사용하는 레인은 수면으로부터 바닥까지의 깊이가 조금 더 깊다는 것. 강사님께서는 중간에 멈춰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다. 일부 강습생 중에서는 25m 레인을 쉬지 않고 몇 번씩이나 왕복하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신기했다. 걷기나 달리기는 저렇게 오래 해봤어도 물속에서 한 번도 쉬지 않고 온몸을 움직인다는 게 나로서는 경이로워 보일 수밖에.  


 수영을 마치고 물에서 나와 다 같이 모여 수고 많았다는 인사를 나눴다. 옷을 갈아입으러 나가려는데 처음부터 같은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동료가 나를 불러 세웠다. 얼마 전에 얘기한 거 생각해 봤냐고 했다.

여름철 해수욕장의 안전요원 봉사활동이 있는데 해 보겠냐는 거였다.      


“어? 그거 수영 잘해야 하는 거 아냐?”

“에이 수영은 자유형만 할 줄 알면 되지. 그리고 안전요원의 선발되기만 하면 수상 인명구조 자격증 연수도 무료로 받을 수 있다던데?”

“수영장에서 하는 것도 좋지만 실력을 쌓는 데에는 그것도 좋지 않을까?”

“오 그럼 신청해 보자.”


그렇게 나의 안전요원과 수상 인명구조 자격 취득 도전이 시작됐다. 물을 무서워하던 내가, 고개조차 들지 못하던 내가 ‘인명구조’ 자격을 도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지금까지의 맥주병이었던 나는 조금씩 잊히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 안전요원에 선발됐다. 바로 돌아오는 주말 안내된 장소로 모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자, 이번에 새로 온 사람들은 인사 한 번씩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봉사활동도 하고 수영도 배워보고 싶어 참여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잠시 뒤 대표 격으로 보이는 팀장이 이번 과정에 관해 설명했다. 총 수영장 사용료는 개인이 내야 하고 나머지는 별도의 수업료가 없다는 것과 교육과정은 매 주말 토요일, 일요일 이틀, 한 달 동안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진행된다고 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거의 200시간이었다.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예상은 했다. 더군다나 구조하는 자격증이니만큼 우선 내 몸이 그만큼 버틸 수 있어야 했다.


 2주 차가 되었을 때였다. 평일 새벽, 주말에도 종일 수영장에서 살다 보니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중간에 낙오하는 사람도 한 명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를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이 수업에 참여하던 사람이 중간에 안 한다고 하니 나 또한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몸 상태까지 좋지 않으니 나 역시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점심시간, 건물 밖으로 나와 가만히 생각해 봤다. ‘지금 이걸 내가 왜 하는 거지?’


 마음이 흔들렸다.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관점을 바꿔보기로 했다. 하거나 하지 않거나가 아니라 내 태도의 문제였다. 인제 와서 그만둔다는 건 포기를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가 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나’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배운다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그럴 일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미래의 내 가족 중 한 명이 위험에 빠진다면?. 그땐 지금을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실제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물에 빠져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다. 집 근처 계곡으로 반 친구들끼리만 놀러 갔다가 변을 당한 건데, 평소 운동신경이 좋아 어떤 운동도 잘할 거라고 생각했었던 친구였다. 하지만 하필 수영을 배우지 않았었고, 당시 같이 있던 친구들 역시 무언가를 던져주거나 남을 구할 수 있을 만한 실력은 안 되었기에 멀리서 지켜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고 했다.

당시엔 충격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점심시간 같이 축구를 했는데 그 자리에 하얀 국화꽃이 놓여 있으니.


봉사라고 생각했다. 실제 나는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자격을 갖추는 과정을 준비하는 중이지 않는가.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생각했다. 관점을 바꾸고 다시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다.

 팔을 크게 휘둘러 물을 갈랐다. 두 발을 교차로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타이밍을 잘 맞추어 고개를 물 밖에서 꺼내 호흡을 들이마시고 물속에서 숨을 내뱉었다. 수많은 작은 거품들이 내 몸을 감싸고 지나갔다.      


“여러분 많이 힘들죠?. 그래도 연습하시면 분명히 더 좋아집니다.”

어느 날 강사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어렵게만 생각하던 팔과 발동작이 자꾸 반복하니 얼추 자기 순서를 찾아갔다. 많은 반복 끝에 못 하는 것도 포기만 하지 않으면 ‘잘’ 할 수 있음을 배워갔다. 어려운 일을 도전하고 성공하는 만족감에서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또 어떤 일을 하기 전 나를 통해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노하우도 쌓였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니 태도가 변했다. 태도가 변하니 삶이 성장했다. 포기를 잊었다. 뭐든 시작하면 끝을 본다. 운동이든 일이든, 글쓰기든.

 이 한 편의 글이 도전하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끈기로 다가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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