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 도서관을 짓다

by 키다리 아빠

우리들의 삶에서 환경(Environment)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대서양 연안에 접해 있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중심도시 '빌바오'에는 이 도시를 일약 세계적인 도시로 부각시킨 '구겐하임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빌바오는 1980년대 이전까지 철강과 선박 제조로 유명한 도시였는데요. 이후 경기침체로 실업이 급증하여 80년대 말에는 빌바오 시민의 1/4이 실직상태에 빠질 정도로 경제상황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었고, 여기에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와 범죄가 빈발하며 도시는 점차 침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바스크 지방정부는 빌바오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궁리 끝에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본관 측에 건축부지와 건축비를 모두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하여 미술관 유치에 성공하였습니다. 먹고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 미술관을 짓겠다는 생각에 시민 95%가 반대했지만 시민들에게 새로운 비전 제시와 설득 끝에 7년 만인 1997년 1억 달러에 달하는 미술관을 완성하였습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스페인 빌바오 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외관은 비행기 외장재로 사용하는 티타늄 조각 수만 개를 이어 붙여서 은빛 물고기의 비늘 모양을 하고 있는데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은은한 빛을 내뿜어 시각적 환상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이 건물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은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는 티타늄의 금속패널들이 마치 꽃잎처럼 마음대로 이리구불 저리 구불 하늘을 향해 춤추는 듯 하나의 꽃봉오리처럼 보여서 ‘메탈 플라워(Metal Flowers)’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물의 완성으로 개관 첫 해부터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빌바오를 찾는 쾌거를 이루었고, 이 건물로 인해 자신을 얻은 빌바오시는 도심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양한 공공 건축물 및 거리 디자인에 더욱 힘을 쏟고 있으며, 현재는 미술관 주위에 대형 호텔, 공연장, 컨벤션 센터 등이 들어서면서 국제적 문화단지로 탈바꿈하고 있고 이로 인해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이 빌바오를 찾는 국제적인 도시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고 합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스페인 빌바오 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세계의 문화 예술인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으며, 미술관이라는 문화공간 하나가 낳은 기적은 마침내 한 도시의 랜드마크 건축물이 그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나 현상을 일컫는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는 용어를 낳게 하였습니다.


한편 요즘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도시환경 설계를 통한 선진국형 범죄예방 기법의 하나인 '셉티드'(CPTED :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 Design)가 있는데요. 이는 아파트ㆍ학교ㆍ공원 등 도시생활공간의 설계 단계부터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안전시설 및 수단을 적용하여 도시계획 및 건축설계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셉티드'는 현대 사회에서 날로 증가하고 있는 각종 범죄에 대해 우리 삶의 공간을 어떤 형태로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범죄예방 효과의 편차가 커진다는 것을 수많은 사례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 셉티드의 예를 들면 어둡고 인적이 드문 골목에 CCTV와 가로등을 설치하는 것, 지하주차장의 여성 전용 주차공간을 건물 출입문에 가깝게 배치하는 것,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 밖의 가스배관을 사람이 오를 수 없게 미끄러운 재질로 만들거나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 특수 형광물질로 도색하는 것, 엘리베이터 내부를 볼 수 있도록 투명 유리로 설치하는 것, 밝은 계통의 색깔로 건물벽이나 거리를 색칠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셉티드 사례


이렇듯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셉티드뿐만 아니라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나 우리나라에서 속칭 SKY를 가기 위해 좋은 학군을 찾아 가려는 부모들의 교육열이 보여주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들의 삶에서 환경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동시에 환경을 극복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 이 둘은 따로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한 몸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시대 교도소의 '환경'(Environment)은 어떠할까요?

우리나라 국력의 눈부신 성장과 함께 우리 교정시설 환경도 그에 걸맞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21C 첨단산업을 선도하는 나라답게 교정시설에도 전자제어시스템의 적극적 활용과 수용관리와 교육교화에도 수용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많은 시설개선과 다양한 교화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숫제 말로 경악할 만한 짓을 한 범죄인들에게 그야말로 하루하루 고통의 나날을 보내도록 해주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이렇게 까지 인권보장을 해주어도 되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사실 이런 의문이 당연하고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도소 환경의 수준이 이미 인권의 첨단을 지향하고 있는 마당에 인권의 하향을 주장하는 이러한 생각은 점차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그 외형만 놓고 보자면 수용자에 대한 낮은 인권 처우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높은 수준의 인권 지향이 문제 되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면 의문이 듭니다. 이러한 인권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정작 왜 재범률은 줄어들지 않는지, 왜 범죄는 날로 흉악해지며 빈발하고 있는지 일 겁니다. 우리 교도소가 외형만 커지고 향상된 것만 아니라 수용자 교정교화를 위한 분야별 전문 심리치료, 상담 및 인성교육 등 각종 심성순화 프로그램이 사회 각계각층과 협업하여 여전히 가동되고 있는데도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는 것은 무엇이 문제여서 일까요? 그렇다고 이렇게 해도 안되고 저렇게 해도 안되니(Nothing Works) 다시 비참한 과거의 감옥 수준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저변을 따라가다 보면 어렴풋이 잘 보이지 않던 근본적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시골길을 차를 타고 가다가 멀리 보이는 신축한 교정시설을 외부에서 보노라면 산뜻한 무슨 연구소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 도심에 법원 검찰청 등이 함께한 법조타운에 들어선 빌딩형 교정시설을 보면 예전에 느꼈던 혐오시설로 인식하는 위화감은 말끔히 사라지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교정시설 안으로 가까이 들어와 그 현장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교정시설의 운용 방식이 여전히 근대 교도소의 기본적인 틀(frame)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읍교도소 전경(전북 정읍시 소재)


서울동부구치소 전경(서울시 송파구 문정동 소재)




흔히 그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그 사람의 평소 생각과 행동을 보라는 말처럼 지금 우리 교정시설의 현주소를 알려면 실제 그 안에서 생활하는 수용자가 그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수용자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요? 대략적으로 2019년 우리 교도소의 수용자들은 매일 다음과 같은 일과시간표대로 움직이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 기상. 06:30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곧 각 거실별로 나란히 정좌하여 기상 인원점검을 실시한다.
2. 아침식사. 07:00
3. 일과시작. 08:00 작업하는 수용자는 정해진 각 작업장으로 이동하며 복장 및 소지품 검사를 받는다. 작업장에 도착하여 인원점검을 실시한 후 작업을 시작한다.
4. 오전 작업. 08:40 ~ 11: 30
5. 점심식사 및 휴식. 11:30 ~ 12:30
6. 오후 작업. 12:30 ~ 16:00
7. 일과종료. 16:50 작업종료 후 인원점검을 실시한다. 복장 및 소지품 검사를 받는다. 각 거실로 돌아오면 다시 거실별로 나란히 정좌하여 인원점검을 실시한다.
8. 저녁식사. 17:40
9. 휴식. 각 거실별로 TV시청, 편지쓰기, 독서 등 개인시간을 갖는다.
10. 취침. 21:00
11. 평일. 접견, 운동을 실시한다. 종교집회 등 각종 교화행사 실시와 교육 해당자에 대해 정신질환자 심리치료, 알코올, 마약, 성폭력 등 각종 교육대상자에 대해 교육을 실시한다.
12. 토요일, 일요일 및 법정 공휴일. 휴무로서 작업을 실시하지 않고 각 거실별로 휴식을 취한다. 단, 토요일은 접견과 운동을 실시한다.
13. 모든 수용자는 매 순간 매분 매초 교도관의 시선 내 또는 실력 지배권 내에서 사라지면 안 되는 엄격한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다음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에 존재했던 1838년 프랑스 '파리 소년감화원 규칙'의 일부입니다.

제17조. 재소자의 일과는 겨울에는 오전 6시, 여름에는 오전 5시에 시작된다.
노동시간은 계절에 관계없이 하루 9시간으로 한다. 하루 중 2시간은 교육에 충당한다.
노동과 일과는 겨울에는 오후 9시, 여름에는 오후 8시에 끝내도록 한다.
제18조. 기상. 첫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재소자는 조용히 기상하여 옷을 입고 간수는 독방의 문을 연다.
두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재소자는 침상에서 내려와 침구를 정돈한다.
세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아침기도를 하는 성당에 가도록 정렬한다. 각 신호는 5분 간격으로 한다.
제19조. 아침기도는 감화원 소속신부가 주재하고, 기도 후에 도덕이나 종교에 관한 독송을 한다. 이 일은 30분 이내에 마치도록 한다.
제20조. 노동. 여름에는 5시 45분, 겨울에는 6시 45분에 재소자는 마당으로 나와 손과 얼굴을 씻고 제1회의 빵을 배급받는다. 뒤이어 즉시 작업장별로 정렬하여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여름에는 6시, 겨울에는 7시에 시작해야 한다.
제21조. 식사. 10시에 재소자는 노동을 중단하고 마당에서 손을 씻고 반별로 정렬하여 식당으로 간다. 점심식사 후 10시 40분까지를 휴식시간으로 한다.
제22조. 학습. 10시 40분에 북소리가 울리면 정렬하여 반별로 교실로 들어간다. 읽기, 쓰기, 그림 그리기, 계산하기의 순서대로 한다.
제23조. 12시 40분에 재소자는 반별로 교실에서 나와 마당에서 휴식을 취한다. 12시 55분에 북소리가 울리면 작업장별로 다시 정렬한다.
제24조. 1시에 재소자는 작업장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노동은 4시까지 계속한다.
제25조. 4시에 작업장을 나와 안마당으로 가서, 손을 씻고 식당에 가기 위해 반별로 정렬한다.
제26조. 저녁식사 및 휴식시간은 5시까지로 하고, 재소자는 다시 작업장에 들어가야 한다.
제27조. 여름에는 7시, 겨울에는 8시에 작업을 종료하고, 작업장에서 하루의 마지막 빵을 배급받는다. 교훈적인 뜻이나 감화적인 내용을 담은 15분간의 독송을 재소자 1인 혹은 감시자 1인이 하고, 이어서 저녁기도에 들어간다.
제28조. 여름에는 7시 반, 겨울에는 8시 반에 재소자는 마당에서 손을 씻고 복장 검사를 받은 뒤 독방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첫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옷을 벗고,
두 번째 북소리가 울릴 때 침상에 들어가야 한다. 각 방의 문을 잠근 후 간수들은 질서와 침묵을 확인하기 위해 복도를 순회한다.”
<1838년 파리 소년감화원 규칙 중 일부>


이 둘을 비교해보면 200여 년 가까이 되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서로 많이 닮아 있습니다. 현대 속에 근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미셸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엄격한 감시와 시간의 통제가 신체적 행동의 통제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정신의 통제를 향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 감옥 중앙에 감시탑이 있어 최소비용 대비 최대의 감시 효과를 낳는 파놉티콘(Panopticon, 원형감옥) 감옥을 제안한 것이 생전에는 설계도에 그치고 실행이 되지는 않았지만 미셸 푸코가 파놉티콘 감옥이 신체의 감시를 통한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을 넘어 자기 검열을 통한 정신의 통제라는 생체권력(Biopower)으로 까지 이어진다고 비판한 것처럼 현대에 들어와서도 형태만 달리 했을 뿐 여전히 각종 CCTV, 빅데이터가 파놉티콘 감시탑이나 빅 부라더(Big Brother)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감옥의 틀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상태로 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현실론은 존재의 의의가 있습니다. 날마다 이건 아닌데 라고 자책하면서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우리 의식은 지쳐만 갑니다. 정말 새로운 생각은 없을까요? 교도관의, 우리들의 의식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파놉티콘의 감시탑을 해체할 새로운 생각은 정말 없는 것일까요?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의 파놉티콘(panopticon, 원형감옥) 설계도(1791년)
파놉티콘 형태의 감옥(쿠바)




교도소 안으로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를 들어오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렇다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들이자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도서관을 교도소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파놉티콘 감옥의 중앙 감시탑 자리에 도서관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루 24시간을 감시당하는 사람에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자유의 소중함을 스스로 깨닫도록. 궁극적으로 새롭게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 장소로 자리매김하도록. 감시와 통제에 의한 타율적 교정교화에서 기도와 명상에 의한 자율적 교정교화로 거듭나도록. 온전한 한 인간으로 우뚝 서서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도록. 우리 미래 교정행정의 상징적 의미로 교도소 중앙에 도서관을 세우는 것입니다.


교도소에 도서관을 짓는다니 다소 황당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교정시설에도 이미 도서관이 존재합니다. 단지 과단위(사회복귀과) 일개 부서 안에 규모가 턱없이 작고 수용자가 직접 가서 도서를 열람할 수 없으며 도서 목록을 보고 신청할 수 있는 도서관이 있기는 합니다. 전문적인 사서도 없는 데다 장서 규모나 종류가 빈약하고 외부 기증 또한 저조하며 무엇보다 수용자의 접근을 못하게 하는 폐쇄공간이라는 점에서 유명무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도서관이 없어도 수용자들은 선정적 내용 등 일부 제한되는 도서를 제외하고는 자비를 들여 책을 사서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자비로 구매하는 책의 종류를 들여다보면 대개가 무협지, 잡지, 삼류소설류가 태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나긴 징역살이 시간은 안 가고 시간 때우기용으로 책을 보는 것이죠. 수용자 중에도 깨인 사람들은 좋은 책을 빌려도 사서도 보지만 정작 독서 치료가 필요한 대부분의 수용자들은 책에 접근하기가 수월하지 않고 더군다나 양서(良書)를 직접 사서 본다는 것은 그들의 기대치를 너무 높게 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게다가 각자 거실에서 독서를 하기에는 과밀수용에 TV 시청, 잡담 등으로 집중도 안되고 이로 인한 상호 간에 트러블이 자주 발생하며 이는 교정시설마다 턱없이 부족한 혼자 생활하는 독거실을 원하는 수용자가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도 수용자들이 정해진 시간에 직접 찾아가서 조용히 앉아 좋은 책을 볼 수 있는 규모 있는 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막상 도서관을 건립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문제 되는 것이 적지 않게 들어가는 예산일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과도기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교도소나 대규모 수용자들이 모여 종교집회, 초청 강연, 영화 상영 등 각종 교화행사를 하는 대강당이 하나씩은 다 갖추고 있습니다. 대강당은 정면에 무대가 있고 객석은 나무 장의자로 길게 놓여있습니다. 이곳을 도서관 겸용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장의자 사이에 이동식 접이식 책상을 설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강당 둘레 벽에는 빙둘러 서가를 설치하여 책을 보관하고 입구에는 도서관 사서가 위치합니다. 향후 도서관 사서도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만큼 교도관이 겸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사서를 채용해야 할 것입니다.


하루 중 오전, 오후로 나누어 수용자는 갑갑한 수용 거실에서 넓은 도서관으로 나와 책을 읽습니다. 각자의 개인 책도 도서관 서가에 두고 서로 돌려 읽을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 좋은 책을 기증을 많이 받도록 장기적인 차원에서 교도소 도서관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도 필요합니다. 휴일에는 도서관에서 국내외 저명한 인문학 강사를 유튜브로 초빙하여 무대 스크린을 통하여 상영합니다. 그밖에도 다양한 콘텐츠가 있는 도서관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도서관이 수용자들의 복합 문화공간이 되는 셈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수용자들에게 좋은 책들이 많이 들어와서 읽혀지는 것입니다. 도서관의 모든 것은 인간성 회복과 삶의 고양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기존의 시설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나중에 신축 교정시설에는 아예 대강당 2층은 도서관으로 설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파놉티콘 형태의 도서관
파놉티콘 형태의 도서관




구조(structure)를 바꾸는 것입니다. 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생각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존재하는 것들을 새롭게 배열하는 들뢰즈의 아장스망(Agencement, 배치, 배열)처럼 말입니다. 수용자들이 매일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 처음에는 부작용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처음부터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일단 먼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도서관을 이용하다 보면 사회성이 함양될 것입니다. 수용동이나 작업장을 담당하는 담당 교도관도 수용자와 함께 도서관에 와서 독서에 집중하는 수용자를 보면 자연히 업무부담도 줄어들 것입니다. 혹여 발생 가능한 문제행동은 항상 교도관이 배치되어 있고 밖에 도서관에도 있는 CCTV가 작동하니 안심해도 좋을 것입니다. 환경이 없다면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중에 교도소 도서관은 그 시작에 불과할 것입니다.


범죄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수용자에게 도서관에서 책을 읽게 하다니 어이 상실일수 있습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 교도소에 지금은 형식적이지만 도서관은 존재하고, 책을 사서 보는 것도 법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미 우리 교정행정은 도서관 건립보다 더 앞서는 수용자 인권을 위한 수많은 환경개선과 교정교화 프로그램 운영하고 있고 그 향상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범률은 감소하지 않고 출소 후 사회복귀가 잘 안 되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외형적, 물리적 개선이 전부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내면의 변화 유도가 절실한 시점에 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작정 감정적인 반대가 아니라 교도소 도서관을 얼마나 잘 창의적으로 운영해야 할 것인지 냉철한 합리적 사고가 필요할 때입니다. 증오는 판단을 흐리게 할 뿐입니다.


교도소 도서관은 우리 교정시설의 상징(symbol)이며 중심(center)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중심이 되느냐의 문제는 기존의 구조와 인식의 혁신을 위한 총화(總和)이며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수용자를 중심인 열린 교도소 도서관으로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마음의 치유 공간인 도서관에서 다시 태어나 교도소를 다시 찾아오는 곳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영원히 떠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역(逆) 빌바오 효과(Contra-Bilbao Effect)'일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근대 교도소와 이별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당신의 사진이 좋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If your pictures aren't good enough, you're not close enough. )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 전설적인 종군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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