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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녀가 되어 환란도 많다지만

야반 도주한 집주인, 눈물겨운 전세 보증금 반환 간증

by 다녕

아이들이 쪽방이라 부르는 방으로 이사를 했다. 전남편이 내 퇴근 시간에 맞춰 할머니 집에서 애들에게 저녁을 먹이고 나에게로 데려다주었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를 매일 보는 시스템이니 별 충격은 없어 보였다.


어느 날 퇴근을 하니 동네 사람들이 마당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집주인이 어젯밤에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 집은 2층 주택으로, 2층엔 주인 가족 4명이 살았다. 1층엔 두 가정이 있었는데, 옆집엔 신혼부부가 있었다. 각자 대문이 따로 있어 얼굴 볼 일도 없었기에 서로의 사정은 잘 몰랐다. 주인집 아저씨가 스포츠 용품 매장을 몇개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랬던 주인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며칠 후 법원에서 전세 보증금 우선 변제권이 있으니 신청을 하라는 안내문이 왔다. 서민 보호 정책으로, 전세 보증금을 못 받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세입자에게 우선 지급을 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100%는 아니고 70~80%는 경매 낙찰금에서 보장을 해 주는 제도이다.


나머지 20~30%는 받을 길이 없었다. 집주인은 도의적인 책임은 있으나 법적인 책임을 안 지려고 부도처리를 한 것이었다. 집 담보로 진 채무 외에 다른 빚도 있어서 야반도주를 했다고 동네 사람들이 알려 주었다.


책을 아무리 뒤지고 인터넷을 뒤져도 경매로 넘어 간 집의 전세 보증금을 완전히 돌려받을 방법은 없었다.


일단 나는 전세금을 떼인다는게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동네 사람들이 와서 떠들며 나를 보는 시선도 힘들었다. '이제 어쩌냐? 이혼해서 애들과 사는 모습이 측은 했는데, 더 가엾게 되었구나'하는 그 동네 아줌마의 말이 더 모욕적이었다.


경매를 받아 새로운 주인이 왔고, 집수리를 해서 전세비를 올려 받을 계획이라고 했다. 나는 이사를 갈 준비를 또 해야 했다. 전세보증금 중 법원에서 보장해 주는 돈 외에 못 받는 금액이 2천 만 원이었다. 그 돈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200만 원도 큰데 2000만 원이라 생각하니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날 지경이었다.


우선 이사를 최대한 미루고 야반도주 한 집주인의 우편물을 모두 챙겼다. 카드 명세서나 전화요금 명세서를 기다렸다. 결국, 울산에 있는 스포츠 의류 매장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 집주인이 매장을 몇 개 가지고 있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중 하나 남은 게 울산 매장이었고 그곳으로 가서 사는 듯했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전화를 했다. 주인아줌마가 전화를 받았고 엄청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 번호는 매장 번호였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과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가게에 딸린 방에서 산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정도면 첫 전화의 소득으로 많은 정보를 얻은 것이다.


전화번호를 옆집 다른 세입자에게도 알려 주었다. 옆집은 나보다 더 큰 돈을 떼이게 생긴 상황이었다. 그 아저씨는 두 번 전화를 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고 한다. 돈은 이미 내 손을 떠났고 줄 사람의 양심에 호소해서 받아야 한다면 작전을 달리해야 했다. 옆집 아저씨처럼 전화로 싸우고 그쪽에서 내 전화를 안 받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내 전화를 피하지 않도록 최대한 상냥하게 전화를 했다. 오히려 내가 그 가족을 위로했다. 부유하게 살다가 단칸방으로 이사를 간 주인아주머니를 진심으로 다독거렸다. 주인아주머니는 자기의 신세한탄을 나에게 했다. 나는 다 받아 주었다. 월 초에 한번 안부전화를 했다. 그리고 월 말이 다가오면 한 번 더 전화를 했다. 어린이집 원비를 내야 하니 10만 원이라도 좋다. 형편 되는 대로 입금해 달라고 했다.


주인아저씨가 전화를 받기도 하고 아주머니가 받기도 했는데, 아주머니는 짜증을 많이 냈다. 아저씨는 늘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최대한 갚겠다고 했다. 그렇게 10만 원, 20만 원을 입금 해 주었다. 입금을 받으면 바로 고맙다고 전화를 드렸다. 어느 달은 아주머니가 친정에서 빌렸다며 100만 원을 입금한 적도 있었다. 나는 큰 시혜라도 받은 양 감사를 표시했고 아주머니는 더 이상은 못 해 준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렇게 한 달에 두세 번 통화를 했다. 통화를 할 때마다 나는 그 가족에게 축복의 말을 해 주었다.

"사장님, 항상 사업이 잘 되길 바래요. 정직하신 분인 것 같으니 분명히 잘 되실 거예요. 늘 감사하고 있어요." 이런 말들을 듬뿍듬뿍 쏟아 주었다. 진심이었다.


그러길 2년. 2천 만 원을 다 받았다. 할렐루야.


마지막 남은 20만 원을 부치면서 나도 울고 그 아저씨도 울었다. 전화통을 붙잡고.


집주인 아저씨가 나를 보고 그랬다.

"아주머니, 내가 053 경북 지역 번호만 보면 가슴이 쿵 해서 아무도 안 받았는데 아주머니 전화만 받았습니다. 참 대단하고 어지간하십니다. 내가 아주머니 돈을 다 갚아서 얼마나 홀가분한지 몰라요." 맘껏 감사를 표했고 서로에게 덕담도 해 주었다.


그 아저씨도 참 괜찮은 사람이지만 나는 내가 너무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2년 동안 화 한번 내지 않고 오로지 햇볕 정책으로 전세 보증금을 다 받은 것이다. 돈 2천 만 원도 컸지만 더 기뻤던 것은 내 방법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였다. 사람의 진심이 통한다는 믿음을 얻었고, 내가 살아갈 방법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나는 무럭무럭 잘 성장하고 있었다. 각종 파도를 헤치며.




많은 걱정 크리에이터들에게... 걱정 마, 다 잘 될 테니.


https://brunch.co.kr/@red7h2k/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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