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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Nov 14. 2019

이혼, 아이도 엄마도 시가 필요한 시간

아이들과 동시를 썼던 시시한 시간들

아이들을 키우며 우리 애가 천재가 아닐까 하는 순간이 많다. 나도 그랬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아빠가 할머니 집으로 데려갔다. 거기서 저녁을 먹이고 씻겨 나에게로 데려다주었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같이 살지 않는 것에 대한 인식은 별로 없어 보였다. 날마다 아빠와 할머니랑 저녁을 먹고 엄마와 잠을 자니까 그랬나 보다. 전남편이 "나정도 되니까 이렇게 진보적 이혼을 하는 거지." 해서 그냥 웃어줬다.


어느 날, 여섯 살 큰애가 잘 준비를 안 하고 놀길래 자자고 나무랐더니 갑자기 대성통곡을 한다. 할머니 집에서는 동생만 이뻐하는데 집에 와서 엄마마저 자기를 혼낸다고 "나는 정말 외로운 인생이야." 하며 울었다. 여섯 살 아이 입에서 외로운 인생이라 하니 웃겼다.


그리고 며칠 후, 빨래통에 옷을 좀 집어넣으라 했더니 또 통곡을 했다."할머니 집에서도 할머니는 맨날 동생한테 양보하라고 하는데 엄마마저 혼내면, 이제 나는 정말 괴로운 인생이야."


외로운 인생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괴로운 인생이란다. 나는, 이제부터 니 마음을 글로 적어서 "새로운 인생"으로 만들어 보자고 했다. 외로운 인생, 괴로운 인생을 넘어서 새로운 인생으로. 롸임도 기가 막혔다.


아직 글씨를 을 줄도 쓸 줄 도 모르는 애들이었지만 말로 내뱉는 것들이 내겐 시로 들렸다. 그냥 공중분해시키기엔 너무 아까웠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해서 내가 기록을 해 주기로 했다.


이혼하고 처음으로 구한 집, 아이들이 쪽방이라 부르던, '쪽방'에 살 때였다. 아침에 계란을 굽는데 아이가 비가 오냐고 물었다.계란 굽는 소리가 비오는 것 처럼 들렸나보다.  나는 얼른 물었다. 계란 굽는 소리가 어떻게 들렸어?

"토닥토닥 툭툭".


그렇게 만들어진 시가


계란 비


아침에 눈을 뜨니

토닥토닥 툭툭,

엄마, 비와?

아니, 계란 구워.


늦잠 자는 일요일

토닥토닥 툭툭

엄마 계란 구워?

아니, 비와.


어느 날은 작은 녀석이 몸이 좀 안 좋았나 보다. 할머니 집에서 오자마자 자기 아팠던 자랑을 한다.

"엄마, 나 할머니 집에서 목 아프고 열나고 그랬다." 감기 증세를 할머니 말투로 얘기하는데, 아주 정확했다. 적으니 그대로 시가 되었다.


감기


목이 따갑고  열나고,

사방 아프고,

막 귀찮고.


목에는 감기 밀가루가 붙어서

말이 안 나오네.


가래란 단어를 몰라서 감기 밀가루라 하는데 나는 바로 알아 들었다. 시가 별건가? 자기의 언어로 표현하되, 행을 나누고 --네.로 끝나면 시 같이 보이는 거지.


아들 녀석은 잘 때 내 가슴을 만지고 잤는데, 저녁에  샤워를 하고 나오면 나에게 말했다. "엄마 찌찌 카바 매지 마, 불편해." 지가 가슴을 만져야 하는데 엄마의 브래지어가 불편하단다. 그러면서 "찌찌 카바' 매지 마라고 짜증을 낸다. 그러던 녀석이 이제 밥벌이도 하고, 여자 친구의 '찌찌 카바'를 풀 생각을 하니 신통하다.


딸은 야무져서, 아침이면 머리를 제대로 못 묶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해 댔다. 하나로 묶어주면 중심이 돌아가거나, 양갈래로 묶어주면 양쪽이 짝짝이가 되었다. 어느 날부터 자기가 묶기 시작했다. 잔머리가 빠져나오는 게 싫어 무스를 발라서 싹 빗어 넘기는 걸 좋아했다. 머리를 묶으며 나눈 대화를 정리한 시.


무스


엄마, 옛날에 무스가 없을 때는 머리를 어떻게 묶었어?

글쎄 엄마도 모르겠네. 네가 생각해봐.

아하, 물 발랐을 거 같아.

근데 엄마, 물 바르면 금방 마를 거 같아.

그럴 수도 있겠네.

아하, 꿀 발랐을 거 같아.

근데, 꿀 바르면  벌이 날아올 거 같아.

그렇겠다. 더 생각해봐.

엄마, 참기름, 참기름.

근데 엄마, 참기름 바르면

한 참 후에 밥 비벼 먹고 싶을 거 같아.

그렇겠다.

옛날엔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기름을 발랐대.


아이들의 감정을 흘려보내기 아까워 적는 연습을 하다 보니 두 녀석 모두 글 쓰는 걸 즐긴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 쓴 페북 글은 유아인 저리 가라로 난해한 글들이었다. 허세 가득한 만연체의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맞춤법이나 주술 관계가 안 맞을까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댓글에는 '아무개 필력 보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큰애가 처음으로 한 말들을 적은 시는.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되면

화장도 하고

뾰족한 구두도 신고

정말 좋겠어요.


하지만

싫은 게 하나 있어요.


가 어른이 되면

우리 엄마가

할머니가 되잖아요.


그런 날이 금방 와버렸다. 이제 화장도 하고 구두도 신는 어른이 되었다. 엄마는 아줌마에서 할머니로 넘어가고 있다. 두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고물고물 살아있는 시들은 학교를 들어가면서 내가 적어 줄 필요가 없었다. 글씨를 쓰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어느날 부터 내가 읽던 철학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기특하긴 했지만, 내가 준 아픔이 아이를 사색하게 만드는 가 싶어 미안했다.


친척이나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가엾은 취급을 많이 당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속상해하고, 나나 전남편은 미안해했다.


큰애가 대학을 다닐때였다. 씩씩 거리며 전화가 왔다 . 연세가 있으신 교수님이  우리 아이의 가정환경을 안 이후로 측은해 한다고. 그 날은 화장실에서 마주쳤는데 딸애가 사를 했다고 한다. 그 교수님은 아이를 안스럽게 보면서  밥은 먹었냐고, 하시면서 거의 울 기세시더란다.

"엄마, 그 교수님이 한 번만 더  나를 불쌍하게 보면서 위로 하려 하면 나 그 교수님 이용 할거야."

어떻게 할거냐고 물으니,


"교수님한테 불쌍하면 돈으로 달라고 하던지 , 밥 못먹었으니 밥 사달라고 할려고."


 아이들은 상처를 받아들이고 체념도 하고 가끔은 빡치기도 하면서 잘 자라고 있었다.  고맙게도. 나도 그랬다.






아이는 단단해지고, 엄마는 담담해지고. 함께 잘 자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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