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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Nov 15. 2019

전남편을 마트에서 마주칠지 몰라

항상 상큼하고 화사하게

현남편과 재혼을 할 때 물었다. 내가 왜 좋으냐고. 현남편은 나를 독립적이고 웃겨서 좋다고 했다. 현남편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나는 계속 소처럼 일하여 독립적이고, 겁나 웃겨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땐 저딴 말을 칭찬이라고 하나 싶었다..


늘 하는 얘기지만 나를 키운 8할은 전남편. 내가 독립적이고 웃긴 것도 다 전남편 덕분이다.


이혼을 하고 이사를 한 후, 어느 정도 생활에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보험회사로 부터 연락이 왔다. 내 보험 납입금이 몇 달 연체가 되어 효력을 상실 했다는 것이다. 생각을 해 보니 전남편 통장에서 자동 이체를 했던 보험들이 안 빠져 나갔던 것이다. 보험회사에 연락을 해서 언제부터 이체가 되지 않았는 지를 확인했다.


전남편은 내가 이혼 소송을 제출한 즉시 보험 이체를 모두 막았다. 그러면서 온 가족을 동원해 매달리고, 친정으로 가서 내 부모님께 애원을 했던 것이다. 돈을 끊은 것도 미웠지만, 그 상황에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서 보험금 자동이체 막을 생각을 했다는 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주 정을 떼 주는 구나 싶었다. 집안 어른들까지 동원해서 나를 주저 앉히려 했을 때, 마음이 약해져 다시 들어가 살기로 했으면 어쩔 뻔 했나, 아찔했다.  나는 정신이 버쩍 들었고, 기를 쓰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다.


내가 내 입으로 전남편 흉, 이혼 얘기, 새남편 자랑, 재혼 얘기를 하면, 듣는 사람이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이혼한 게 상처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이혼하고 재혼 한 걸 내 뒤에서 얘기하는 게 싫어서이다. 내가 나를 측은히 보는 건 견딜만 하지만, 남이 나를 가엾이 여기는 건 못 견디겠어서 내가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이다.

내 나름의 쎈 척이다. 그런데 '척'을 오래하다 보면 진짜가 되기도 한다.


내가 쎄지는 시작은 운전을 배우면서 였다. 출근하기 전, 아이들을 어린이 집 차에 태워 보내고 운전 학원을 갔다. 어느 날은, 아들이 엄마가 운전하는 모습을 너무 보고 싶다며 운전 학원에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어린이 집에 전화를 해서 어린이집 등원차를 안 탄다고 연락을 줬다. 그리고 여섯 살 아들과 운전 학원으로 갔다. 


아들은 사무실 창 너머로 엄마를 보면서 신나하고, 엄지척도 해 줬다. 운전 수업이 끝 날 무렵, 운전 강사에게 같이 아이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 주자고 했다. 운전학원 노란 차에 아이를 태우고 강사를 옆에 앉히고 어린이 집으로 운전을 했다. 난생 처음 학원 밖으로 운전을 한 것이다.


운전 학원 노란 차가 어린이 집 현관 앞으로 오니, 선생님이 놀라서 나왔다. 내가 아들을 내려 주며 선생님께 인사를 하니, "아무개 어머니, 최고. 운전 학원 차로 등원 시키는 어머니는 최초입니다." 하며 양손으로 최고라고 하셨다. 


운전은 내가 핸들을 잡는다는 것이고, 갈 길을 내가 정한다는 것이다. 내 삶에도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까지 뻗쳤다. 자주적 삶은 운전 처럼 위험도 따르지만 재미도 있는 일이다. 나의 간은 무럭 무럭 커지고 있었다.


전남편이 아이들을 잘 돌봐 주었지만 나와 마주 칠 일은 없었다. 필요한 건 전화로 얘기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을 할머니 집에 내려 주고 나오는 길에, 신호를 받으려고 멈췄다. 옆 차선에서 빵빵거려서 보니 전남편이었다. 굳이 아는 척을 하는지, 어색하게 웃어주고 지나 오면서 아차 싶었다. 세차좀 할 걸, 머리는 왜이리 푸석해? 얼굴에 뭐 좀 바를 걸.


 그 때 결심한 것. 항상 밝고 상큼하게. 전남편을 어디에서 마주칠지 몰라.


사람의 얼굴은 자루 같아서 마음에 뭘 담고 있는지 얼굴로 금방 보인다. 쌀자루 인지 콩자루인지 금방 알듯이. 내 얼굴이 우울하면 얼른 내 마음을 고치려고 애를 썼다.


바느질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게  팔자가 좋아서가 아니라,안 좋은 내 팔자를 바꿔 보려고 하는 몸부림이다. 전에는 마음이 안정되어야 바느질이 손에 잡혔다. 이제는 내 마음이 산란 할 때 미싱을 밟으며 꼬물 꼬물 손으로 만들다 보면 마음에 평온이 온다. 알록 달록 화사한 꽃을 그릴 때는 내 입꼬리도 꽃 처럼 올라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나를 기분좋게 만들 장치가 내겐 많다. 혼자 산 세월이 길다보니 허벅지에 바늘을 찌르는 대신 온갖 잡기를 키운 것이다. 그렇게 우울한 나를 치어 업 시키며 '척'을 하다 진짜가 된 것 같다.


이렇게 전남편은 나를 독립적이고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나를 키운 8할은 전남편이라고 영광을 돌릴 수 밖에.




꽃은 옆의 꽃과 경쟁하지 않고,  누가 봐주지 않아도 혼자 예쁘게 피어난다. 나도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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