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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Feb 11. 2020

남녀 상열 지사에 있는 사이클

내가 했던 바느질 공방 손님들은 전체적으로 연세가 있는 편이었다. 한복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공방이었으니 약간 어르신 취향이었다. 지방 소 도시였기에 젊은 사람이 적기도 했고 노령 인구가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연세가 있는 고객들이 비교적 고가인 천연염색 옷들을 맞춰 입곤 했다.


그분도 내 공방에 가끔 들러서 옷을 주문하던 고객 중 한 분이셨다. 연세는 70대 초반이었고 사별 후 아들과 같이 사신다고 했다. 아들 내외는 포도 농사를 크게 지어, 농번기에는 아들 가족을 위해 밥을 하느라 힘들다고 했다. 그 할머니 고객은 긴 머리를 틀어 올려 큐빅이 박힌 큰 집게 삔으로 고정을 시키는 헤어스타일을 유지했다. 뽀글뽀글한 할머니 파마머리를 하지 않고 긴 머리를 유지하는 것만 봐도 여념 집 할머니는 아니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아들부부 도와주시는 할머니 치고는 시내 외출도 잦았다. 자주 내 공방에 들러 포도나 야채를 주셨다. 장 본걸 들고 오셔서 한 숨을 돌리며 차를 한 잔 마시고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 할머니 고객의 연애사를 듣게 되었다.


그 할머니는 시내에 사는 80대 '오라버니'를 '친구'로 만난다고 했다. 시내 장을 보러 나와서 그 오라버니 집에 들러 요리를 해 준다고 했다. 할머니가 반찬 몇 가지를 해서 같이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며 놀다가 집으로 가서 자식들 밥을 또 한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께나 들러던 할머니가 가게 문을 열자마자 긴 머리가 술술 빠져나온, 흥분된 모습으로 오셨다.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었는데, 대파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참, 남녀상열지사는 10대나 80대나 똑같다는 걸 깨닫게 했다.


할머니가 그 날 아침 장을 보러 시내를 나온다고 '오라버니'에게 전화를 하셨단다. 그 할아버지는 병원 볼일이 있고, 시청 어디에도 들러야 하고 하면서 바쁘다고 하시더란다. 그때 이미 감이 오셨단다.  할머니는 그런가 보다 하고, 대충 장을 봐서 할아버지 집에 연락 없이 들러보려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집으로 가던 길에, 봤네 봤어. 도로 건너편에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향하는 걸. 그리고 그 자전거 뒤에는 한 여인이 웃으며 다소곳이 걸어가고 있는 걸 딱 봐 버렸네. 할머니의 대처는 과연 사랑과 전쟁급이었다. 바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전화를 받는 모습을 길 건너에서 보았고, 어디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린다고 하더란다.


순간 앞이 안 보게 빡 돌은 할머니는, 그 큰 도로 6차선을 전화기를 든 채 무단 횡단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현장을 덮친 것이다. 당황을 한 할아버지는 할 말을 잃었고, 뒤에 오던 '미스터리' 여인은 바로 줄행랑을 쳐 버렸단다. 할머니는 손에 들고 있던 대파 한 단으로 할아버지 어깨와 등짝을 후 드려 팼다는 것이다.   "여기가 병원이야? 어디 말 좀 해봐. 내가 아침에 전화했을 때부터 이상하다 했어." 하면서.


큐빅 집게 핀이 흘러내리고 대파 잎이 길바닥에 떨어지도록 할아버지를 패고 나니 길 옆에 자기를 구경하는 사람이 보이더란다. 그제남사스러워 내 공방으로 달려오셨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가슴을 벌렁이고 손을 떨며 차를 마시는 할머니가 너무 우습고 귀여웠다. 본인이야 세상 심각하고 분노하며 배신감에 몸을 떨고 있었지만, 70대 할머니와 80대 할아버지의 연애사에 낀 another woman까지, 나는 사실 공감을 해 주며 위로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 웃겨서 위로의 말이 나오질 않았다.


할머니를 최선을 다해 달래어 보내고 생각을 해 봤다. 첫째는 연애의 힘에 대해서였다. 할머니는 이미 대가족을 먹이는 밥 노동을 하는 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에게 밥을 해 주는 에너지는, 연애의 힘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남자를 공략하려면 먼저 그 남자의 위장을 공격하라 했다. 그 말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실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베푸는 사랑이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 놀라웠다. 밥을 해 주고 돈을 받는 순간 할머니는 도우미가 된다. 하지만 즐겁게 하면 사랑이 된다. 할아버지 입장에서야 공짜 도우미 쯤으로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주는 기쁨을 누리는 할머니 만큼 연애의 에너지를 얻지는 못 했을 것이다.삶의 에너지는 쓰면 쓸 수록 나오는 것이고, 자원개발을 하듯이 발굴 해 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할머니가 속 없는 바보 같아도 승자로 보였다.


연애에는 생활 밀착형 재미가 있다. 같이 장을 보고 밥을 먹고, TV를 보며 시시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다. 세제 하나를 두고도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고, 합의하에 하나를 결정하는 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재미를 입히는 일이다. 그런 재미를 할머니는 누리고 싶었을 게다. 할머니의 상처받은 심정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고, 삶의 재미 '감수성'을 놓치지 않고 사는 할머니가 대단해 보였다.


또 하나는 연애의 유통기한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유통기한은 오기 마련이다. 상처가 없이 자연스럽게 끝내는 방법을 없을까? 연애가 수명을 다하고 자연사를 할 시점이 오면 둘 다 때가 왔다는 걸 느낀다. 그래도 쓸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함께 했던 공감각들이 추억으로 빛이 바랠테니 말이다. 그럴진데, 하물며상처로 정을 떼 준다는 건, 어차피 빛 바랠 시간에 김치국물 자국을 남기는 일이다.


이러나 저러나 연애의 상처는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상처의 형태나 깊이는 각양 각색이지만 그 양식은 나이에 상관없이 비슷한 것 같다. 그렇다고 연애를 두려워하진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의 에너지가 사람의 초능력을 불러오기도 하니 말이다. 연애의 힘으로 안하던 운동을 할 힘도 얻는다. 내 잡일을 빨리 처리하여 함께 할 시간을 확보하기도 한다. 전에 보이지 않던 달이나 꽃이 보이기도 한다. 행복 감수성이 한 껏 예민해 지는 것이다.


연애가 끝이나면 죽을 것 같이 낙심을 하지만, 그 시간은 다시 나를 돌보는 시간으로 삼으면 된다. 사람이 그렇게 약에 취한 상태로 오래 살 수가 없다. 그건 내 몸에 무리가 오는 상태이다. 설레는 맘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미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도 없이 편하게 냄비째로 라면을 먹는 즐거움도 있다.


연애가 끝난 후의 외로움을 편안함으로 각색하여 누리면 된다. 그 시간에 멘탈 건강을 위해 양질의 문화행동을 하는 것이다. 연애를 하느라 소홀했던 주변을 살피는 시간으로 삼는 것도 좋다. 그러다 보면 새 살이 돋아 새로운 사람을 들일 공간이 생길 것이다.


나의 70대 할머니 손님은 한 참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몇 달 후 다시 생기를 찾은 모습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나타나셨다. 할머니는 바람을 피운 '오라버니'를 용서하고 다시 만나기로 하셨단다. 자기가 거두어 주면 할아버지 피부가 윤기가 나더란다. 할머니의 큐빅 집게 삔은 커다란 리본 삔으로 바뀌어 있었다. 할아버지의 며느리가 선물로 주셨다고 했다.


let's have a cud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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