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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Dec 30. 2019

신년 운수 보실 분 오세요.

잘하면 잘되고 더 잘하면 더 잘되고

내가 재혼하기 전에 했던 바느질 공방 옆에는 민들레라는 옷가게가 있었다. 민들레 언니는 가게 문을 열어놓고 다른 가게로 마실을 자주 나갔다. 얘기를 해 보면 생긴 건 화려하고 강한 느낌인데 성격은 순해 빠져서 남한테 싫은 말은 조금도 못 하는 사람이었다.


가게를 열어 놓고 놀러를 나가니 장사가 안되고, 장사가 안 되니 마실 나들이는 더 잦아지고 길어졌다. 나는 그 언니가,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성향이 보여서 타로를 해 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언니가 나에게 말했다. "자기야, 나 타로 공부하러 다녔어. 자기는 공짜로 봐줄 테니 놀러 와."


그리고는 가게 인테리어를 바꾸기 시작했다. 구슬로 된 커튼을 달고 벨벳이 깔린 책상을 놓고 반짝이 등 까지 달아 놓으니 제법 그럴듯한 타로 집 분위기가 났다.


옆집 민들레 옷 가게가 민들레 타로 집이 되었고, 손님들도 제법 드나들었다. 그래도 그 언니의 마실 나들이 버릇은 여전해서 가게 문을 늦게서 열고, 열어 놓고도 마실 나들이를 나가기 일쑤였다.


민들레 타로 집 소문을 듣고 온 손님들이 왔다가 문이 닫혀 있으니 내 공방으로 들어와 내가 점쟁이인 줄 아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아니면 가게 문은 열 있는데, 사람이 없으니 전화를 해놓고 기다리면서 내 공방에서 차를 마시기도 했다. 그런데 그 손님들이 하나같이 놀란 건 민들레 언니보다 내가 더 점쟁이 같아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한복이나 천연 염색을 한, 한복 비슷한 옷을 입고 있으니, 천상 점쟁이 자태였다. 한복을 좋아했으나 20대 때는 유관순 열사 같아서 못 입었고, 30대 때는 무수리 같아서 못 입었고, 40대가 되니 그제야 편안하게 어울렸다. 하지만 문제점이 40이 넘으니 무속인 삘이 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입고 있었으니 나를 점쟁이로  착각을 했다.



옆집에 온 타로 손님들이, 내 공방에서  민들레 언니를 기다리며 얘기하는 걸 듣다가 우스운 걸 발견했다. 본인이 점을 보는 게 아니라 친구가 뭐 물어볼 게 있다고 한다.  본인은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점은 안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얘기를 술술 다 털어놓는다. 시집살이 길게 한 이야기, 남편이 젊을 때 속 썩인 이야기 등등을 미싱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는 나에게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자기의 얘기를 공감하며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분들의 고민을 들어 보면 딱히 문제랄 것도 없고, 문제라 해도 대안도 없는 것이었다. 아들의 취업운이나 딸의 결혼 같은 문제를 점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아무리 비주얼이 무속인이어도 내가 하는 상식적인 말은 공신력이 없고, 몇 달 배운 타로로 간판을 건 옆집 언니의 말은 돈을 내고 듣는다는 게 재미있었다.


사람의 일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번 돈 보다 쓰는 게 많으면 돈을 못 모으고 덜 써야 돈이 모인다. 먹은 것보다 더 움직여야 살이 빠지는 단순한 이치와 같다. 잘하면 잘되고 안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열심히 해도 잘 안 되는 건 내 영역이 아니다.


내가 계획해도 엉뚱하게 풀어지기도 하고, 엉뚱한 선택으로 예상치 못한 고생을 하다가 오히려 더 잘 풀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가 있고 설렘을 준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오늘 뭘 먹고, 뭘 샀고, 뭘 읽었는지를 분석해 보면 내 가까운 미래는 예측 가능하다. 내가 뭘 고민하고 뭘 선택했는지를 보면 내년을 알 수가 있다. 백날 고민해도 고민에 대해 할 게 없으면 조용히 기다리며 시간을 벌면 된다.


별일을 꿈꾸기도 하고, 별일이 없음에 감사할 수도 있다. 별일을 도모하기도 하고, 별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것도 모험이고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다. 내가, 옷가게 민들레 언니를 타로 마스터로 만든 통찰력으로 예언을 해 보겠다.


뭔가 다른 삶을 바란다면  뭔가 다른 짓을 해 봐야 한다. 하던 대로 하면 살던 대로 사는 것이다.



겨울의 끝에는 봄이 있다는 걸 굳이 점쟁이 한테 돈을 내고 들을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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