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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May 14. 2020

아빠의 외도를 겪은 아이들이 본 <부부의 세계>

불륜 드라마가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만 딱 추려 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다.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고 아내와 아들은 떠난 남편과 아빠를 그리워한다. 아빠는 젊은 여자와 가정을 이루고 두고 온 아들을 데려오고 싶어 한다. 거기서 일어나는 새엄마와의 갈등… 수 없이 봐 온 이야기여서 어지간히 세지 않고는 제작을 시작하기도 전에 엎어질 기획안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커뮤니티가 뜨거워지는 걸 보면 잘 만들어진 드라마인 것 같다. 뻔한 얘기라는 것은 그만큼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는 뜻이다.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임에도 식상하지 않게 공감을 준다면 사람들은 열광한다. 흔해빠진 라면이나 떡볶이로도 소문난 맛집이 되기도 한다. 거기에는 분명히 다른 집은 모르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부부의 세계>에는 많은 화제의 요소를 가졌지만 핵심은 뻔한 중에 살짝 깊고 섬세한 감정의 묘사일 것이다.  


지난번 <부부의 세계> 리뷰를 쓸 때는 전체적인 내 느낌을 썼다. 작가조차도 사랑에 대해선 조롱하는 시선으로 그린듯했다. 사람들 간에 얽힌 질투와 허영심을 더 세심하게 표현했다. 분노와 허탈함에 술 없이는 잠도 못 자는 지선우의 감정에 몰입이 되었다. 더 눈여겨본 것은 사춘기 아들 ‘준영’이의 감정선이었다. 그 얘기를 쓰고 싶었지만 글이 길어질 것 같아 멈췄다. 드라마가 마무리로 가면서 딸이 준영이 얘기를 꺼냈다.


지선우의 아들에 대한 집착에서 예전의 엄마 냄새가 솔솔 나더란다. 자기의 중딩 시절이 떠오르면서 준영이의 숨 막히는 심정이 느껴졌다고 딸이 말했다. 준영이의 곧 터질 것 같은 불안한 행동들은 우리 아이들에게서 모두 봤던 터라 애처로웠다. 딸도 준영이가 안쓰러워 울었다고 한다. 내심 지선우의 아들에 대한 ‘집착’이란 단어가 거슬렸다. 세상에 어떤 엄마가 그 정도의 ‘집착’을 안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는데 아들까지 데려가는 것을 봐줄 엄마는 없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일 크고, 내 인생의 한 부분을 뜯어가는 배신감, 유책 배우자보다는 내가 더 잘 키울 수 있다는 마음, 아들을 새엄마에게 보낼 수 없다는 의지 등등 모든 감정이  지선우의 마음에 뒤섞여 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집착’이라 퉁 치기에는 설명이 불충분하고 상당히 억울하다. 아들을 전남편의 새 가정으로 보내고 죽고 싶은 지선우의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했더니, 딸은 불쌍한 준영이 생각은 안 하느냐고 했다.  이 대목에서, ‘집착’하는 이혼녀 엄마를 위한 변명을 좀 해야겠다 싶었다.  


내가 이혼을 할 때 나는 경제력이 없었다. 아이들을 내가 키우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경제력에 밀려 언제든지 아이들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경제력을 키우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했으니 늘 밤늦게까지 일을 했다. 아이들끼리 집에 둔다거나 외가에 맡기면 심술을 부려 데려가 버리기도 했다. 아이들은 엄마한테 있으면 아빠가 보고 싶고, 아빠한테 있으면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상황을 겪었다. 특히나 힘들고 불안한 것은 아빠와 있으면서 엄마가 보고 싶은 티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들은 아빠와 살고 딸은 나와 살면서 주말이면 언제나 누가 어느 쪽으로 갈지 싸움이 있었다. 서로 주말을 함께 보내려 분쟁이 있었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 눈치를 봐야 했다.


딸아이가 사춘기 때 한창 교복을 줄여 입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라면 중2 딸이 화장을 할 때 너그럽게 봐주기 힘들다. 아이가 엄마한테 혼나고 아빠한테 전화를 하면 전남편은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자기한테 오라고 설득을 했다. 휴대폰을 사준다는 둥, 머리에 염색을 하게 해 준다며 아이를 꼬셨다. 강제로 아이를 잡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고 마음만 먹으면 아빠에게로 갈 수 있다는 불안은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다고 아이가 원하는 걸 다 하게 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학원엔 가방만 두고 놀러 나가고 성적은 바닥을 쳤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어울리는 친구들은 누가 봐도 날라리 티를 물씬 풍겼다. 나는 일을 줄이고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 집으로 태워놓아야 했다. 그때 쫄인 내 마음은 이혼 못지않게 힘들었다. 딸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지나친 간섭이 숨 막혔다고 한다. 내가 이혼했다는 열등감에 자기를 더 구속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아빠에게 가도 엄마에게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 짜증스러웠다는 것이다.


아들도 학교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웠고 학폭에 가담해서 전남편이 담임 선생님께 사죄를 했다고 한다. 전남편은 아들에 대기대와 집착이 대단했다. 아들의 어깃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 밉지가 않다. 그저 내가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상황으로 만든 전남편이 지금도 용서가 안 된다. 전남편은 딸에게는 관대했지만 아들은 엄마라는 말도 마음 놓고 못 꺼내게 했다. 엄마에 대한 미움을 세뇌시키고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무진장 노력을 했다.


전남편은 자기의 과실로 이혼을 했으니 내가 자기의 흉을 볼 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딸은 어차피 엄마 편이 될 것이라 여겼는지 나에 대한 분노를 마음껏 표출했다. 어떨 때는 엄마와 비슷한 말투를 쓴다고 정 떨어진다는 말도 했다고 들었다. 아들만은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었나 보다. 아들마저 자기를 나쁜 사람으로 인식할까 봐 엄마를 못 만나게 했다. 자기가 엄마 흉을 보니 나도 아이에게 자기 흉을 볼 것 같았던 것이다.


배우자가 외도로 이혼을 했다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울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아이들에게 강요할 권리는 없다. 부모를 미워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오히려 이혼보다 더 악영향일 수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도덕성이나 사회적 지위를 보지 않는다. 자기에게 잘해 준 사람을 좋게 기억할 뿐이다. 부모와 즐겁게 놀고 맛있게  밥을 먹었던 시간을 기억한다. 사춘기가 되어선 관심을 조금은 딴 데로 돌리면서 부모로부터 벗어나는 연습을 한다. 이혼 가정이 아니라도 시끄럽게 갈등이 있을 시기이다. 억압과 규제가 강하면 강할수록 사춘기는 심할 수밖에 없다. 내가 딸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처럼 애간장을 태울 것이 아니라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 줄 필요도 있는 듯하다.  


사춘기를 지나 이제 성인이 된 아들 딸을 보면 비 온 후의 산처럼 새뜻하고 묵직하다. 그 안에 아픔도 있고 풀리지 않는 불안도 있을 것이다. 애정결핍이라며 지금도 안겨서 코를 비빈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고 한다. 신기한 건 아빠의, 남편으로의 성적과 아빠 노릇의 점수를 얄짤 없이 분리할 줄 안다. 아빠의 인격이 훌륭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아빠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딸아이는 이제  음악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개학만 하면 모든 ‘준영’이에게 위로를 줄 것이라며 강의 영상을 만들어 올리고 있다. 자기와 같은 아픔을 겪는 ‘준영’이는 다 품어 줄 것이라고 한다. 부모의 이혼을 겪고 안쓰러워하는 눈빛을 평생 진저리 쳤던 아이가, 자기는 그 마음을 불쌍함이 아니라 공감으로 받아 줄 것이라고 한다.


내 집착에 대한 변을 한 바탕 늘어놓고, 대체 그럼 엄마가 그때 어떻게 했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사랑으로 품어 줘야지.’ 했다. 그래, 사랑하니 안 뺏기려 했고 부정적인 영향을 막으려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다시해도 더는 못한다. 덕분에  '준영'이들을 다독거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잖아, 했다. 딸은 "그렇게 생각해서 엄마가 좀 낫겠으면 그렇게 우겨." 해서 한참 웃었다. 나는 두렵고 아프고 변변치 않은 엄마였지만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픔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힘껏 찾아냈다. 아이들이 실수투성이 나 보다 더 잘 자랐다.


삐딱해도 너는 너의 눈으로 세상를 보렴. 그리고 너의 노래를 불러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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