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서 화가 났던 순간들에 대하여
회의 시간이었다.
나는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그 질문은 분명 그가 답해야 할 몫이었다.
게다가 이 회의는 그가 먼저 제안한 자리였다.
그런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그는 마치 가장 높은 사람처럼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데요?
한 시간 넘게 회의했는데 아직도 이 상태면 어떻게 해요?”
말은 질문이었지만,
실은 책임을 떠넘기려는 말이었다.
숨이 막혔다. 입이 굳었다.
그는 내내 서 있었다.
마치 시간이 아깝다는 듯.
회의장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졌다.
나는 얼음이 되었다.
말보다 먼저 굳어버린 건,
내 마음이었다.
그 순간이 낯설지 않았다.
오래전, 전 남편이 친구를 만나러 나간 밤들이 떠올랐다.
연락은 닿지 않았고, 새벽 4시에야 돌아왔다.
“왜 연락이 안 됐어?”
“친구랑 안마받으러 갔었어.”
나는 조용히 말했다.
“다음부터는 미리 말해줘. 걱정되니까.”
그러자 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몇 번 그러면 그런가보다 해야지.”
그렇게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던 시간들 끝에 마주한 건
극심한 고통과 배신이었다.
해외 장기 출장에서 돌아온 그의 캐리어엔
가지런히 개어진 옷이 들어있었다.
너무 밝아진 얼굴, 어색한 핑계를 대고 나간 밤.
불안했다.
그가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
비밀번호 없이 열린 그의 맥북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었다.
상간녀와 해외에서 주고받은 대화가 눈앞에 펼쳐졌다.
몸은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며칠을 고민하고, 망설이고, 스스로를 탓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상담을 찾았고,
다르게 살기로 결심했다.
나는 조용히 그의 눈을 보며 물었다.
상간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 사람, 누구야?”
그는 애매한 미소로 얼버무렸다. 일하는 사람이라고 거짓말했다.
결국, 이혼을 결정하기까지 나는 마지막으로 가정을 지키려 최선을 다했다.
편지를 쓰고, 눈물을 흘리며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마음을 정한 듯했다.
이혼 후, 그는 상간녀와 함께 해외로 떠났고,
2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다. 아이에게도.
그 모든 시간은 무력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무력함이 다시 눈앞에서 말을 걸었다.
“어떻게 하실 건데요?”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되레 나를 이상하게 만드는 상황.
나는 다시 얼어붙었다.
그 말 너머에 기다리는 공포가 너무 익숙해서 더 무서웠다.
회의는 끝났다.
마음속에 남은 건 오직 그 한 마디.
이제 나는 다르게 선택하려 한다.
그 자리에 다시 서더라도,
잠시 멈추고, 내 마음부터 알아차리려 한다.
나는 이제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쫄지마.
이 글은 ‘쫄지마’를 수없이 되뇌다
처음으로 꺼내 쓰는 진짜 끝의 이야기다.
나는 이제 안다.
어떤 상처는 잊히지 않아도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순간은 말하지 않아도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여전히 흔들리고,
때로는 다시 얼어붙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에게도,
지금 흔들리는 나에게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쫄지마.
이 말은, 사실 아직 끝이 아니다.
이제 겨우 시작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실천
내 안에 남은 가장 오래된 감정을 조용히 꺼내 바라보기
나에게 남기는 말
그때의 나는 충분히 버텼고,
지금의 나는 끝까지 걸어왔다.
그러니 이젠, 새로운 문을 열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