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이 신문사 편집국장, 논설위원을 지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2010년 세상을 떠난 법정 스님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종교인 중 한 명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종교인인 동시에 작가로도 큰 명성을 떨쳤다.
300만 권이 넘게 팔린 대표작 <무소유>를 비롯해 그의 책들의 판매부수를 모두 합하면 1000만 권이 넘는다. 그야말로 한국 역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 그를 그리워하는 건 그가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마음의 고통에 시달리던 세상 사람들을 따듯하게 감싸 안았기 때문이다.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머물던 그가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원고지에 글을 써 내려갔던 건 그저 종교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떤 종교를 믿든 상관없이 크고, 작은 상처들 때문에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서였다.
책을 팔아 번 막대한 인세는 모두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했다. 그가 글을 쓴 이유는 명성을 얻기 위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모습이 그를 더욱더 큰 스승으로 만들었다.
서울 성북동에 자리 잡은 운치 있는 사찰인 길상사는 1997년 그가 창건한 사찰이다. 한 칸짜리 오두막에서 지내면서 평생 검소한 삶을 살았던 그가 무슨 돈으로 서울 시내에 절을 지을 수 있었을까?
이 절은 원래 서울 3대 요정(고급 술집)으로 꼽히던 대원각이 있던 건물이었다. 평소 그를 존경하던 요정 주인이 사찰로 써달라며 건물과 땅을 기부한 덕분에 고급 술집이 절로 탈바꿈했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얼마나 두터웠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유명한 법정 스님이지만 그가 어떻게 이 같은 명성을 쌓을 수 있었는지 그 시작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명해진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맞는 말이다. 그가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쌓을 수 있는 데는 글의 힘의 절대적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책은 어떻게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 속세를 떠난 한 명의 승려가 쓴 책이 어떻게 천만 권 넘게 팔릴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오늘날처럼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단박에 유명 인사가 되거나 SNS와 유튜브로 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제대로 광고도 하지 않았던 그의 책이 지금과 같은 판매 부수를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1976년 그의 첫 책인 <무소유>가 출간되기 전부터 그가 이미 사람들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첫 책이 나오기 전부터 그는 꾸준한 글쓰기로 많은 팬들을 만들어낸 인기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였다.
<무소유>는 그가 1972년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칼럼을 묶어낸 책이다. 책으로 나오기 이전부터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덕분에 책으로 나오자마자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꾸준한 연재를 통해 작가로서의 브랜드를 쌓지 못했다면 <무소유>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고 출간된 지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그에게 글쓰기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서른한 살이던 1962년부터 1977년까지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에 꾸준히 글을 연재했다. 난해한 불교 설화를 일반 신자와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쓴 글을 쓰면서 읽기 쉽고, 담백한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어나갔다.
어려운 한문과 불교 용어로 가득한 불교 경전은 그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데 그런 내용들을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처럼 다음과 같이 쉽게 풀어썼다.
“어느 강기슭에 울창한 야자나무 숲이 있었다. 그 숲에는 여섯 마리의 토끼가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바람기도 없이 고요한 어느 밤 수풀 아래서 토끼들이 자고 있을 때 익을 대로 익은 야자 열매가 제물에 겨워 강물에 떨어지면서 ‘풍덩!’ 큰 소리를 내었다. 걸핏하면 놀라고 하는 꼬마 토끼들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뛰어 달아났다.” (1963년 7월 1일에 연재한 ‘겁장이들’ 편)
단순히 불교 경전에 담긴 내용만 소개한 게 아니라 주석을 통해 여러 설화들이 갖는 의미와 이를 통해 독자들이 배울 수 있는 지혜에 대해서도 담담하지만 명료하게 소개하고 있다. <무소유>를 통해 널리 알려진 법정 특유의 진솔하고 담백한 문체는 이런 연습을 통해 완성됐다.
“사람인 우리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있지도 않은 일에 겁을 내거나 기뻐하거나 하는 일이 많다. 잘 살펴보면 그와 같은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아도 좋을 것을. 생각해 보면 인생이란 영원히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올바로 판단할 수 있다면 명예라든가 재산이라든가 죽음이나 모든 것은 시기하거나 겁내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바르게 사물을 보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또한 그러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이 불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경전에서는 말하고 있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는 불교신문의 편집국장 겸 주필을 맡아 신문 제작을 지휘했고, 그 이후에는 논설위원으로 활동한다. 이 시기 법정스님과 함께 신문사에서 일했던 송재운 전 동국대 교수는 2020년 7월 27일 자에 실린 불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법정스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법정스님은 성격이 깐깐하셨고 글쓰기도 여간 냉철한 게 아니었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책임을 지려하셨다. 뚝섬 봉은사에서 출, 퇴근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정기적으로 신문사에 와서 글을 쓰기도 했다”
십여 년 넘게 꾸준히 신문에 글을 쓰면서 독자들의 마음에 쉽게 와 닿는 자신만의 문체를 갈고닦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린 덕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나오자마자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글로서 쌓은 브랜드 덕분에 법정 스님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무소유의 철학을 전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법정스님이 애초부터 자신의 브랜드를 쌓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던 건 아니다. 속세를 떠난 그에게 명성은 거추장스럽고 부질없는 방해물일 뿐이니까.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 그가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비록 법정 그 자신은 세상이 자신에게 준 존경과 명성을 거추장스러운 짐으로 여겼지만 우리는 그의 사례를 통해서도 꾸준한 글쓰기야말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브랜딩 도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