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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Feb 01. 2021

종자회사 사장이 밤마다 글을 써서 회사를 상장시킨 비결

코스닥상장사 아시아종묘 창업자가 말하는 글쓰기가 최고의 마케팅도구인 이유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한 사무실. 인터뷰를 위해 이곳을 찾았던 건 2018년 3월이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는 책장에서 누렇게 빛바랜 책들을 꺼내 들며 이렇게 말했다.     


“출판사 사장도 아니고 종자 회사 사장이 책 쓴다고 10년 넘게 매일 새벽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으니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죠. 그런데 어쩔 수 없었어요. 외국에서 들여온 허브와 직접 개발한 샐러드용 채소를 일반인에게 알려야 하는데 광고나 홍보에 쓸 돈이 없었거든요.”      


“내가 판매할 상품을 알리기 위해 계속 글을 쓰다 보니 어느덧 책이 14권이 됐더라고요. 나중에는 아예 출판사까지 따로 차렸습니다.”     


인터뷰의 주인공은 종자 회사 아시아종묘의 창업자 류경오 대표다. 1992년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종자 개발 업체를 창업한 그는 인터뷰 한 달 전인 2018년 2월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국내 종자 회사로서는 두 번째 코스닥 상장이었으니 그의 열정과 능력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지었던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원예학을 전공했다. 1987년 대학원을 졸업한 뒤에는 한 대형 종자 회사에 입사했다. 앞으로 국내 종자 업체의 해외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그가 했던 일은 동남아시아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동남아 수출팀장이란 직책을 맡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시골 마을을 누비며 농민들에게 한국 과일과 채소의 씨앗을 팔았다.     


이후 다른 회사 한 곳을 더 거친 뒤 1992년 자기 회사를 차렸다. 동남아 국가들을 누비며 쌓아온 네트워크에 자신의 전문 지식까지 더하면 충분히 ‘내 사업’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직접 개발한 국산 종자를 외국에 수출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시작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사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창업 초기 기업들처럼 돈은 늘 모자랐고, 회사 제품을 알릴 수 있는 홍보·마케팅 채널도 변변치 않았다. 이미 탄탄히 자리 잡은 경쟁업체들의 견제를 뚫고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창업 2년 만에 돈줄이 말라 곧 부도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됐다.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게 허브 종자였다. 일본에서 허브 종자를 수입해 와 팔면 회사를 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친구에게 돈을 빌려 수입을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은 국내에서 허브라는 작물이 막 알려지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사람들에게 허브를 팔려면 먼저 허브에는 어떤 종류가 있고, 종류마다 어떤 효능이 있는지부터 알려야 했다.     


벼랑 끝에 몰린 처지에 광고에 쓸 돈은 없었다.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글쓰기였다. 대학교 시절 학보사 편집장을 했던 터라 글 쓰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사람들이 내 상품의 가치를 몰라준다면 내가 직접 글을 써서 알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밤늦게까지 책을 쓰는 생활이 시작됐다. 《허브 사전》(1996년), 《허브 요리와 재배법》(1997년), 《허브 도감》(1998년)이란 제목으로 1년마다 책을 냈다.      



처음 출간했던 책들은 모두 번역서였다. 원예학으로 석사까지 받았지만 그 역시 낯선 작물인 허브에 대해선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스스로의 전문성도 쌓을 겸 영어와 일본어로 된 허브 관련 책들을 한 줄 한 줄 번역해나갔다. 대학원 시절 원서들을 읽으며 쌓았던 어학 실력 덕분에 번역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일단 사람들이 허브에 대해 알게 되면 찾는 사람도 늘어날 테고 회사에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허브 수입 덕분에 회사는 숨통이 트이게 된다.     


허브 수입으로 망해가던 회사를 일으켜 세운 그는 1990년대 후반 들어 회사의 새로운 먹거리로 쌈 채소와 새싹 채소에 주목한다. 평소 해외 시장을 누비면서 건강에 관심이 높은 선진국일수록 사람들이 샐러드를 즐겨 먹는다는 사실을 눈여겨봤던 그는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샐러드용 채소의 수요가 늘어날 때가 됐다고 판단한다.      


이에 맞춰 샐러드용 채소의 품종을 개발하는 동시에 쌈 채소와 새싹 채소가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제품 개발과 시장을 만드는 일을 동시에 추진한 것이다.      


(지금 읽고 계신 이 글은 책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의 178~182페이지를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내용으로 자신이 원할 때 독자들과 만나기 위해 이때는 아예 회사 안에 ‘허브월드’라는 이름의 출판사도 하나 차린 뒤 채소·허브 종자와 관련된 책만 전문적으로 출판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채소 도감》(1998년), 《기능성 건강식 모듬 쌈채》(1998년), 《쌈, 샐러드 채소》(1999년), 《기적의 식품 새싹채소》(2003년) 같은 책들을 연달아 출간할 수 있었다.     


그는 농업 전문 신문과 잡지 등 자신에게 연재를 부탁하는 매체가 있다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글을 써서 기고했다. 한 명의 독자라도 더 만나 회사의 상품을 알릴 수 있다면 글을 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차곡차곡 모은 원고들을 다시 책으로 출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직접 쓴 글을 통해 자신의 상품을 알리려는 류 대표의 노력은 회사가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코스닥 상장사가 된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주말농장과 텃밭을 가꾸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이들을 대상으로 회사의 종자와 농업 기자재를 판매하면 새로운 사업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 류 대표는 서울 외곽에 도시농업 용품 전문 판매장을 새로 여는 동시에 이에 대한 책도 썼다.     


2019년에 출간된 도시 농부 입문서 《농사짓는 CEO 류경오의 도시 농업 “12달”》이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다.     


류경오 대표가 네이버FARM에 꾸준히 연재한 <텃밭생각> 시리즈 글들


“사실 매일 글을 써서 책을 냈던 건 회사를 알려야 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그래야 우리 제품을 팔 수 있으니까요. 대표가 그냥 연구만 하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어떻게든 내 상품을 팔아야죠. 회사를 알리자는 마음에 매일 밤 글을 썼죠.”      


“사실 그래서 안 좋은 소문이 나기도 했어요. 박사 학위도 없는 놈이 계속 식물도감 같은 책을 내니까 주변에서 안 좋은 소리를 했던 거였죠.”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가 매일 퇴근 후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내 상품을 팔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류 대표를 매일 밤 책상 앞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는 글쓰기야말로 가장 적은 비용으로 회사와 제품을 알릴 수 있는 최고의 마케팅도구라는 사실을 자신이 회사를 키워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증명하고 있다.


홍선표 작가 / 한국경제신문 기자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 <리치 파머, 한국의 젊은 부자농부들> 저자

rickeygo@naver.com


(책 내용 이어 읽기)


(방금 읽으신 이 글은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의 본문 178~182페이지의 글을 그대로 옮긴 글입입니다.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이나모리 가즈오, 레이 달리오 등 최고의 리더 19인이 글을 쓴 이유 5가지와 글을 씀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5가지 성과를 쉽고, 깊이있게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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