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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랴 Mar 04. 2024

고민하고 선택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남자는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과거를 바꾸는 선택을 할 때마다 일이 꼬이고 미래가 안 좋아졌었다. 그의 여자친구의 인생도 망가지기도 했고 그럼에도 몇 번이고 그녀와 같이 있을 수 있는 형태의 선택을 했었다. 마침내 그가 자신이 좋아하던 여자와 멀어지기로 마음을 먹고 과거를 바꾸자 그도 그가 사랑했던 여자도 인생이 망가지지 않았다. 그가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채 우연히 길을 걷다가 걸어오는 그녀를 알아본다. 꽤 깔끔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 그녀를 지나치는 걸로 남자가 그녀의 인생을 위해서 자신의 사랑을 포기했고 자신의 인생을 구했다고 느꼈다.


‘정말 사랑하지만 같이 있는 게 막을 수 없는 형태로 서로가 불행해지는 일이 될 바에는 같이 있지 않아도 괜찮아. 적어도 이 하늘 아래에 어딘가에 그 사람이 살아있고 같이 있지 않는 편이 그 사람이 행복하다면 내 사랑 같은 건 포기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오래전 TV에서 우연히 봤던 나비효과의 결말은 내게 그런 인상을 주었다.






‘마비노기’라는 게임의 스토리 중에서 진실을 알려주거나 숨겼을 때의 타이틀이 뜬다.


휴라는 인형사의 종적을 감춘 친구를 찾는 퀘스트였는데 어린 시절 친구도 없고 혼자 지내고 괴롭힘을 당하던 그에게 어느 날 친구가 생겼고 언제부턴가 친구가 나타나지 않아서 안부를 궁금해했는데 퀘스트 도중에 친구는 어린 시절의 휴를 구해주다가 죽었고 죽은 친구는 인형으로 변해 있었다. 오래된 꼭두각시 인형 모형이었다. 이제 돌아가서 나는 휴에게 네가 찾던 친구가 오래전에 너를 구하다가 죽었다, 정확히는 부서져서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은 네 친구는 인형이었고 너한테 친구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해줘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거였다.






모든 진실을 말하고 망가진 인형도 건네준다면 ‘진실을 추구하는’이라는 타이틀이 뜨고 설명은 이렇게 적혀 있다. ‘아무리 아픈 진실이라 하더라도 당사자는 알아야 할 권리가 있지.’




친구를 찾기는 했는데 이미 떠나서 제대로 조사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면 ‘경계가 모호한’ 타이틀이 뜨면서 아래에 ‘적어도 그는 희망을 갖고 살게 될 거야. 비록 마음이 아프더라도 말이지.’라고 적혀있다.




못 찾았다고 말하고 그 친구는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쟁이’라는 타이틀이 뜨는데 ‘하얀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듯이 거짓말이 꼭 나쁘란 법은 없잖아?’라고 되묻듯이 밑에 적혀 있다.






비록 게임이었지만 친구를 찾았는데 떠나버렸고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했다고 말하는 걸 선택하면서 내 인벤토리에 오랫동안 건네주지 못한 인형을 놔뒀던 기억이 있다. 더 잘했어야 했다고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거라고 그때는 내가 그걸 몰랐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몰랐다. 지금 알고 있던 게 그때 몰랐다고 자책하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과거의 자신과 선택을 완전히 부정하고 지금 알고 있던 것보다 어리석은 행동으로 치부해 버린다. 어떤 의미로는 지금 알고 있는 게 그때보다 발전한 의미인지도 모른다. 이전보다 조금 더 현명해졌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때의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선택이 최선이 아닌 건 아니다. 그때의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알고 있던 것으로 행했던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건 그때의 내가 할 수 있었던 그나마 좋은 선택이었다. 지금의 자신의 눈으로 봤을 때 부족해 보인다고 해서 그때의 자신과 최선과 선택을 부정하지는 않아야 했다. 사람은 아무리 잘 알게 되어도 갈수록 알게 되는 게 생긴다. 아무리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이어도 그랬다. 그건 과거가 모자라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생각이 변하면 사람은 변한다.






당장 봐도 ‘깊게 생각하고 행동한다.’와 ‘가볍게 생각하고 빨리 행동한다.’ 꼭 어느 한쪽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잃는 것과 이점이 있다. 상대적인 부분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잃게 된다는 게 마음이 아프고 속이 쓰린 일이기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기도 한다. 근데 그게 오롯이 내 선택으로 일어난 일이고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라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든다. 그렇지만 반대급부로 선택하지 않더라도 혹은 다른 사람이 대신 선택을 해줬다고 해도 그래서 잃는 게 있고 얻는 게 있는 것이다.






초인이 된 피터 파커가 능력을 감추는 선택을 한 건 지금 생각해도 무척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능력이 생겼다고 해도 일반인이 그걸 밖으로 드러내 보인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복이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얼마 뒤, 삼촌이 죽었다. 그가 자신의 근처로 도망가던 도둑을 그냥 모른 척 지나쳤고 그때 놓아준 도둑이 벤 삼촌의 차를 훔치려고 살해했다. 자신이 능력을 써서 남을 도왔다면 죽지 않았을 거라고 자책하고 능력을 쓰기 시작하는 발단이 된다. 삼촌이 했던 말이 더 강하게 영향을 줘서 작용하기도 했다. ‘기억하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더 리더’라는 영화에서는 여자가 문맹이었고 재판에서 그걸 알리면 여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서 무기징역을 받지 않고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자가 문맹이라는 사실은 여자가 무기징역을 감수할 만큼 수치스러워하고 감추고자 하는 일이었고 그걸 유일하게 알고 있고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전에 그녀와 연인 사이였던 어린 남자였다. 그는 그 재판장에 있었다. 그리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남자는 그걸 결국 알리지 못했다.






잃게 되는 걸 보면서 이전에 한 선택에는 후회를 하고 자신이 해온 게 멍청했다고 치를 떨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본 누군가는 비판하겠지.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비판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많은 것들이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으며 상대적이고 복잡한 일들과 감정선이 얽히고설켜있다.




어떤 선택을 했든 무얼 지지했든 그 이유는 타당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분명히 내게도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선택들을 인정해 주고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앞으로 나가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옳다고 여겨졌던 선택이 너무도 후회스럽고 멍청하다고 자책하게 되는 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때의 내가 자문하고 최선을 다해 고르고 고른 선택이 그러했다면 내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되어버린다고 해도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고르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고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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