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아버지와 함께 하는 첫 해외여행
3일 차 아침,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나섰다. 밴쿠버 로컬 카페인 '49th Parallel'의 매장이 노스 밴쿠버에 새로 생긴 걸 발견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없었는데, 이번에 와보니 반가운 변화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지 고모가 아침을 준비하는 걸 알지만 발길이 절로 향했다. 간단하게 오늘의 커피와 초코 도넛 콤보 그리고 생긴 것도 이름도 맛있어 보이는 세이버리 스콘과 커피 한 잔을 더 샀다. 오늘의 커피는 드립 커피로 맛이 한약 같은 맛도 나는 듯한 오묘한 맛이다. 네모남자는 한 입 마셔보더니 질색을 했지만 나는 은근히 취향에 맞았다. 나는 세이버리 스콘은 풍미가 가득한 스콘인 줄 알았는데 그냥 짠맛이 나는 스콘이었다.
배경도 즐기고 여유롭게 사진을 찍고 싶은 나와, 무조건 사진부터 찍으려는 단체 사진 중독자 아버지, 그리고 사진 자체가 귀찮은 1호 사이에는 세대 차이가 흘러넘쳤다. 하지만 아버지 칠순 여행이니까 다소 귀찮더라도 아들을 어르고 달래 아버지 옆에 세워 사진을 찍었다.
다음으로는 스탠리 파크에서 가장 유명한 "The Hollow Tree"에 갔다. 할로우 트리는 속이 빈 거대한 나무 그루터기로, 코끼리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구멍이 포토 스폿으로 유명하다. 이른 아침에 가서인지 한 커플만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단체 사진 중독자 아버지가 단체 사진 찍자며 채근해서 나는 먼저 온 커플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줄 테니 우리 가족사진도 찍어달라고 부탁해 단체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의 메인 일정, 'Third Beach'로 향했다. 써드 비치는 2호가 처음 바다를 접한 추억의 장소로, 당시 바다에 뛰어들며 놀고 불가사리를 잡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이번에도 물놀이를 기대했지만, 그때와 달리 오늘은 날씨가 조금 쌀쌀했다. 몇몇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길래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았더니 우리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2호를 제외한 모두가 물놀이를 포기하고 바닷가를 산책하거나 모래사장에 앉아 햇빛만 즐기기로 했다. 결국 2호와 나만 써드 비치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사실 나는 이번에 야심차게 캐나다인처럼 바닷가에서 비키니만 입고 놀아보려고 새 비키니까지 준비해 왔다. 그런데 탈의실에서 비키니를 입고 나니, 이것만 입고 나갈 자신이 없어 아까 입었던 잠바를 위에 걸쳤다.
바닷가로 나와 둘러보니 노란 비키니를 입고 햇빛을 즐기는 아줌마와 알록달록한 비키니를 입고 수영하는 다른 아줌마들도 보였다. 고모도 나에게 '너도 그냥 비키니만 입고 놀아봐!'라고 했지만, 선뜻 잠바를 벗기가 어려웠다. 바다가 특히 쌀쌀해서인지, 어디서나 래시가드를 입는 한국인의 자아가 스물스물 올라왔다. 래시가드를 준비해오지 않을 정도로 야망에 불탔던 나는 결국 물놀이를 안 하겠다고 했던 네모남자의 래시가드를 빌려 입고 바닷물에 들어갔다.
2호와 나만 물놀이를 즐기고 있으니 아버지가 와서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현지인이 다가와서 우리 셋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친절한 캐나다인은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고 사진 중독자 아버지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물놀이를 하다 보니 금세 배가 고파져서, 점심으로 써드 비치의 간이음식점에서 점보 핫도그와 얌 프라이를 사 왔다. 노느라 기운을 다 소진한 2호가 그 큰 점보 핫도그를 다 먹어 치웠다. 얌은 고구마와 마 중간쯤의 식감을 가진 구황작물로, 튀기면 바삭하면서도 살짝 촉촉하고 은은한 단맛이 난다. 한국 고구마보다 덜 달아서 다른 식구들은 '이게 뭐야?'라는 반응이었지만, 덕분에 나는 얌 프라이를 혼자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공원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닷가 돌 위에 놓인 동상을 볼 수 있는데, 나는 그동안 그것이 '인어공주 동상'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인어공주가 아니라 '수영복을 입은 소녀상'이라는 것이었다. 바다 위 돌에 앉아 있는 모습 때문에 자연스레 인어공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