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 마을의 중앙광장은 스산했다1

23.09.26_산토도밍고-벨로라도

by 혜리영

전날 열심히 다녔음에도 캄캄한 밤 마을의 중앙광장은 스산했다. 조금 무서웠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가야지. 광장에 있는 ATM기에서 약간의 현금을 뽑아 길을 나섰다.


어둠을 향해 걷다보면 등뒤가 밝아왔다. 그래서 늘 오전 8시가 되기 전까지의 길은 몇 번이고 돌아보는 길이었다. 걷다가 그림자가 조금더 길어지면 한 번 돌아보고, 하늘이 밝아지면 또 돌아보고. 그렇게 걷다보면 하늘이 완전히 밝아지고 또 첫 번째 바르에서 쉴 시간이 된다. 그게 늘 오전 8시 전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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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제부터 하늘에 비행운이 많았다. 그래서 아침마다 붉은 해를 호위하듯 직선으로 그어진 구름들이 제멋대로, 제 길대로 쭉쭉 뻗어 있었다. 마을을 지나고,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 밭을 지났다. 5월에 오면 고개를 쳐든 해바라기로 풍성했을 길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길에서 처음으로 5월쯤 다시 한 번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여길 또 온다고? 내 인생에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번 한 번이면 충분해. 나는 단호하게 마음을 고쳐먹고 걸었다.


그렇게 걷고 걸었다. 이 날부터 무릎 뿐만 아니라 발도 허리도 아팠다. 땡볕이 유난히 견디기 힘들었고 걸음이 늘어졌다.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걸어야지. 꾸역꾸역. 정말 꾸역꾸역 걸었다.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 길을 왜 걸었던가 하는 원망도, 길이 정말 지겹다 또는 너무 힘들다 등의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길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배운대로, 허벅지-엉덩이-허벅지-엉덩이... 힘이 들어가야 할 내 육신만 생각하며 걸었다. 그것만으로 벅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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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라도에 드디어 도착했다. 아 드디어 도착이다. 너무 기뻤다. 그러나 아뿔싸. 마을은 길을 따라 길게 늘어진 모양이었고, 내가 예약한 알베르게는 마을의 초입이 아니라 저 끝에 있었다. 다음날 길을 나설 때 편하려고 일부러 마을 끝에 위치한 알베르게를 찾은 결과이다. 나는 긴 마을 모양에, 생각보다 더 많이 걸어야 함에 실망했다. 아직 더 걸어야 함에 실망하며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그때 나를 스쳐가던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무릎이 안 좋은가봐요?”

“네, 무릎이 안 좋은지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무릎이 아파봐서 걸음걸이만 보면 알아요.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걸으세요.”


정중하고 다정한 인사라고 생각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나는 잠시 쉬어야 겠다 생각해 배낭을 내렸다. 그리고 앞서 갔던 아저씨가 다시 돌아왔다.


“파스 있어요? 내가 좀 줄까?”

“괜찮아요. 저도 파스 있어요.”

“나는 여기 두 번째 오는 건데, 내가 파스를 많이 가져왔어요. 동키로 보낸 배낭에 많으니까, 이거 받아요.”


아저씨는 작은 배낭을 뒤져 자신이 좁은 부위에 쓰려고 미리 잘라놓은 작은 조각만 꺼내고는 새거나 다름없는 파스를 내게 주었다. 자신도 아파봐서 안다고, 파스 많이 챙겨와서 주는 거라고, 있어도 또 받으라고. 그리고는 내가 무안할까봐인지 서둘러 인사를 건네고 가셨다. 내가 목이 메인 것을 알아채신 것이다.


나는 파스를 받아들고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며 고맙습니다 속으로 외쳤다. 목이 메어서 울컥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쳐 올라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간 맺혀있던 무엇인가 터진 듯, 나는 그 길에 서서 엉엉 울었다. 배낭은 발치에 놓여있고 한 쪽에만 무릎보호대를 하고서는 파스를 들고 엉엉 울었다. 어린 아이처럼 금방이라도 ‘엄마-’하고 외칠 듯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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