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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30. 2016

카프카처럼 현실세계와 소설세계를 열다.

나는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만큼 해냈는데, 부족한 게 없는 너는 왜 그렇게밖에 못하냐?

- 카프카의 아버지 -



https://brunch.co.kr/@roh222/205

다 자란 나이가 되서야 저 바깥 세상과  직접 싸워야 했던 아이같던 카프카의 하소연이었을까.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쓴 시점인 36세 카프카는 자신의 하찮은 생각들이 더 이상 소용없음을 알았다. 한 때의 아버지의 미소가 자신의 죄책감을 키우고 세상을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아버지와 진정한 화해를 바라기는 했을까?



01. 카프카의 현실세계


카프카(1883-1924)는 1906년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 1907년 프라하의 보험회사에 취업했다. 아침 8시~오후 6시까지의 근무시간 때문에 글쓰는 데 집중할 수 없었다. 그는 종종 보험 담당관으로서의 자신의 일을 밥벌이(Brotberuf, 브로트베루트)라고 불렀다. 죽기 2년 전인 1922년까지 법률고문으로 근무하는 한편, 오후 2시에 퇴근하여 밤늦도록 글을 썼다. 1917년 결핵 진단을 받고 1922년 보험회사에서 퇴직, 1924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결핵요양소 키얼링(Kierling)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일에 무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직장 생활 동안 몇 번의 승진을 하며 열심히 일했다. 유럽의 노동 환경은 무척 열악했다. 카프카는 공무 출장과 노동자들과의 접촉 등 이곳에서의 업무를 통해 관료기구의 무자비성,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와 이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직접 체험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내면을 속속들이 꿰뚫어 보았다.

카프카는 평생 불행하게 지냈다. 프라하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던 독일인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유대인들로부터는 시온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생전에 카프카는 출판업자들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발표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를 꺼렸으며, 발표된 작품들도 대중의 몰이해 속에 거의 팔리지도 않았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보낸 유서에서 자신의 모든 글을 불태워줄 것을 부탁했을 만큼 쓰는 것 외의 다른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세계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타계후 전 세계에 알려졌다.

1912년 장편<실종자>(후에 <아메리카>로 개제), <변신>을 쓰기 시작했고, 1914년<유형지에서>와 장편 <심판> 집필에 들어갔다. 1916년에는 단편집 <시골 의사>를 탈고했다. 1917년에 폐결핵이 발병하여 여러 곳으로 정양을 다니게 되고, 1922년에 장편<성>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카프카의 모든 출판된 작품은, 밀레나 예젠스카에게 체코어로 쓴 몇편의 편지를 제외하고, 대부분 독일어로 쓰였다.

(프란츠 카프카 - 위키백과 발췌)


그가 실제로 글을 쓸 수 있었던 시간을 몇 년이라고 헤아려야 할까.. 그에게 시간은 너무도 짧게만 느껴진다. 죽음에 이르는 17년이란 시간동안 일하느라 자기자신에게 집중할 수 없었다는 말과 같이 느껴졌다. 내 기준에선 그가 필이 늦은 만큼 그가 작품을 쓸 수 있었던 시간이 줄어든것만 같다.


자신의 모든 작품을 없애기로 한 카프카의 결심은 무엇일까... 이유는 카프카의 것은 아니지만 쿤데라는 모든 저자의 마음을 이렇게 해석해 본다. 1) 실패의 슬픈 유물을 세상에 남기고 싶지 않아서인데 (우리들의 생각은 그저 무의미할 뿐) 저자는 자기 집에 있는 사람으로서 당신들이 아니라고 외칠 터라고.. 2) 작품은 사랑하지만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경우다. 미래의 처분을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었을 터라고.... 3) 예술의 운명인 불가피한 몰이해를 깨달았을 터라고...





02. 카프카의 소설세계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

- 프란츠 카프카 -


https://brunch.co.kr/@roh222/244

카프카의 세계에서는 독창성이 없어진 관료체제, 기술, 역사 같은 도구에 불과한 세계를 반시적인 세계로 개조했다. 개인의 자유를 위한 자리이다. 잠깐 열리는 창문, 금방 다시 닫혀 버리는 창문들이 있을 뿐이다. 그 창을 통해 어떤 빛, 바깥의 세계, 하나의 가능성, 한 가닥 은빛을 보내는 시詩가 있다. - 밀란 쿤데라의 <배신당한 유언들> -



시인은 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저 뒤쪽 어디에 있는 것
오래 오래전부터 그것은 거기 있었고
시인은 다만 그걸 찾아내는 것일 뿐

- 밀란 쿤데라 -



카프카는 예언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저 뒤쪽 어디에"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봄(見)이 미리 봄이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에게는 사회 체제의 가면을 벗기고자 하는 의도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실제 사생활을 통해 알 수 있게 된 메커니즘을 조명했던 것이고, 훗날 역사의 흐름에 의해 이 메커니즘이 커다란 무대 위에 올려지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 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


# 슈티프터 <늦여름>와 카프카 <소송>,<성> / 소설의 그 깊은 의미.....

19세기 오스트리아 작가 아달베르트 슈티프터는 제일 처음 관료주의의 실존적 의미를 발견한 사람(쿤데라의 말에 의하면)이다. 그의 <늦여름, 1857>은 청년 하이리히와 한 저택의 노귀족 리자흐의 우정을 그린다. 리자흐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모습 속에 향유되는 삶을 바란다. 그는 관료주의를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상황 그 자체가 요구하는 것' 지키곤 했던 그가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없었는지를 설명할 뿐이었다. 인간과 현대세계와의 결별, 목가적 분위에 적합한 평화롭고도 근본적인 결별을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관료주의를 피할 길이 없다. 우리는 슈티프터의 세상에서 카프카의 세상으로 결정적으로 옮겨왔다. 카프카는 평화로운 마을과 성의 세계에 사무실과 관리들의 군대와 서류 사태를 침입시킨다. 반관료적 목가의 신성한 상징을 관료화의 전적인 승리로 만들었다. 내 인생의 관리자들 내가 할 일을 도맡아 처리하여준다. 파업이 일어나도 K에게 사과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행정은 예의범절 저 너머에 있다.

자유는 무한하지만 그만큼 무력하다. 사생활을 보호해 주는 비밀 따위는 없고 우리는 더 이상 비밀 요구조차 않는다. 사생활은 더 이상 사적이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사람 대 사람의 대립이 아니라 사람 대 행정으로써 대립된다. 인간의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다.  소송은 길어지고 삶은 갑작스레 끝이 난다. 자신의 의지 없이 무관하게 모험에 이르렀다. 행정의 실수, 기계의 오류, 예측 불가의 결과뿐이다.

초현실주의와 실존주의의 융합, 이 두 미학적 경향은 소설 밤하늘의 별이다. 주목할 점은 서로 연결하고 하나의 관점 안에 묶는 것이다. 실제 묘사와 인과관계에 무심하며, 비개연성 세계를 그려 소설가는 실존적 문제 제기를 한다. 경계 넘어 영원으로 열려있으면서 현실을 주의 깊게,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실제 현실, 모든 사람이 현실에 품은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현실은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개연적인 모습 드러내게 한다.

밀란 쿤데라의 <커튼> 에세이 중에서...



초현실주의와 실존주의의 융합, 이 두 미학적 경향은 소설 밤하늘의 별이다.



카프카 소설은 시적이고 자유로운 모든 상상력에 열려있다. 쿤데라는 그의 한 문장이 환상으로 빛나고 놀랍고 감탄스러워한다. 그는 카프카의 '소설이라는 시'가 서정성과 관계있고, 작가의 고해며, 작가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인다고 느낀다. 그 마술적인 세계는 모든 현실적인 동시에 비개연적이고 작가의 주관적 세계다. 소설의 방향은 장면이 기본 구성요소를 가지며 자유로운 환상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장편 <아메리카> <심판> <성>을 쿤데라가 그동안 들려줬던 이야기들을 참고하면서 놓치지 않고 읽고싶다.   





로베르트 무질(오스트리아) / 헤르만 브로흐(오스트리아) / 비톨트 곰브로비치(폴란드)




쿤데라의 지난 에세이 <소설의 기술>, <배신당한 유언들>, <커튼>, <만남>을 이어 읽으면서 소설에 대한 이해를 조금 할 수 있었다. 그가 말하는 카프카, 무질, 브로흐, 곰브로비치는 유사한 미학적 지향을 지닌다. 그들은 소설의 시인들이다. 형식과 새로움에 매혹되었으며 각 단어와 문장의 밀도에 세심하게 신경을 썼고, '사실주의'의 경계를 뛰어넘으려는 상상력에 매혹되었다. 반면 서정적 유혹에 무감각했고, 소설이 개인적 고백으로 변형되는 것에 적대적이었으며, 산문의 그 어떤 장식도 참아 내지 못 했다. 오로지 현실 세계에 전적으로 몰두해 있었다. 그들 모두는 소설을 위대한 반反 서정적 시로 간주했다.


나도 모르게 현실세계와 소설세계를 오고 가는 듯한 느낌을 말하면서 카프카에 대해 정리하고 싶었다. 쿤데라의 에세이를 이어서 읽었던 이유가 꼭 카프카를 만나기 위해서 였던것 같다. 아직 그의 작품을 다 만나보지 못했지만... 천천히 그 세계에 닿아 그가 반짝하고 열어둔 한 순간을 만나보고 싶다.







<함께 보면 좋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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