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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Aug 13. 2019

직장 없는 시대에 대비하는 법

<함께 자라기 애자일로 가는 길>과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를 읽고

한 회사에 25년 이상 근속한다는 게 지금 시대에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가능하긴 하다. 우리 아빠의 경우, 스물여덟부터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셨고, 서른 하나 되던 해 다니던 직장을 지금까지 다니고 계신다. 최근 아빠는 회사로부터 근속해줘서 고맙다며 그 받기 어려운 '공로상'도 받으셨다. 상을 들고 집으로 퇴근하던 아빠의 뿌듯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어릴 적부터 안정적으로 근무하던 아빠로 인해 나도 그렇고 우리 가족 역시 직장을 다니는 게 대단히 중요한 삶의 이슈였다. 졸업하기 한참 전부터 내 몫을 해내고 싶었다. 고군분투했다는 표현이 딱 적절하다 싶을 정도로 잠자는 시간을 줄였다. 1년의 휴학으로 졸업이 한참 늦어진 스물네 살, 그때부터 단 세 시간을 자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하던 취업준비생으로 2년을 살았다.


취업 준비생이던 그땐, 금턴이라 불리던 인턴을 세 번이나 해 본 능력자라 불렸다. 회사에 속해있을지라도 나는 외부자일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떠나야 할 사람. 내부자가 아닌 난 그들과 마음을 터 놓을 정도의 친구가 될 수 있었고 그저 회사는 '즐거운 나의 집'같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안정적인 삶을 동경하지만 안정적일 수 없다니


졸업하고 나서는 정작 제 몫을 해낼 수 없었다.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몇 차례의 인턴과 계약직의 경험이 있을지라도 매번 똑같은 문턱에서 꼬꾸라지는 한심한 내 모습에 자책하며 쓰라린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졸업 후, 반 년이 지나고 나서야 정직원이 되었다. 정말 진부한 표현이지만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집에 틀어박혀 자기소개서를 쓰고, 정장을 입고 내가 아닌 나를 보여줘야 하는 그 지루한 시간을 다신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매달 제 시간에 들어오는 돈은 내게 처음 경험하는 쾌감을 느끼게 했다. 안정적인 삶에 대한 쾌감. 5년 후, 10년 후 플랜을 차곡차곡 쌓았다. 30살의 나를 그리고 35살의 나를 그렸다. 그때 되면 차 한 대를 몰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었겠지. 대출을 받으면 결혼하고 살 집도 구할 수 있을 거야. 너무나도 이상주의적이었고 낙관적이었다.

 

매달 정해진 날짜에 들어오는 수입, 그거 하난 참 좋았는데 말이야.

안정적인 삶을 도외시한 적이 없는데 왜 불안했을까. 안정적인 삶은 잡으려고 해도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외쳐봐도 부질없는 메아리로 내게 돌아오는 안정감이라는 녀석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졸업하자마자 한 직장을 다닌 친구도 똑같이 불안하고, 나의 일을 시작한 누군가도 불안한 건 매한가지다.


회사를 나와 외딴섬으로 내던져진 나는 생활하며 새롭게 느끼는 게 부쩍 많다. 조직 생활을 하는 초반에는 오랫동안 조직에 머무른 선배들이 한 없이 대단해 보이고, 도달할 수 없는 장벽 같은 게 있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 지박령*처럼 머물렀다고 해서 대단한 게 아니라 오히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깨지고 산산조각 나면서 온몸이 부서지며 체험한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근속한다고 해서 안정적이다라는 생각은 회사를 다닌 3개월 차에 사라졌다. 나보다 8년을 더 근속한 한 선배는 그저 회사를 '다니고만' 있었다. 그저 똑같은 일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질문하지 않는 삶을 8년을 살았던 것이다. 옛 시간을 되돌리려 하는 그의 노력은 다시 돌아오려고 하는 항상성 때문인지 공부하려는 그는 매번 좌절하고 또 우울해했다.


직장 없는 시대가 정말 오긴 올까


노동의 유연성이 증가한다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어디에 소속되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사회가 부담하던 개인의 복지를 온전히 개인이 떠안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것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노동의 유연성, 그것은 대체 누구에게 이로운 것인가. 한 번 생각해볼 때가 됐다.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새라캐슬러


고정적인 수입이 없고, 4대 보험 없는 프리랜서는 누구에게 복지를 요구해야 할까. 문화예술인으로 살아갈 우리 부부는 도대체 어디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도중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긱 경제'의 이로운 점과 '프리랜서'로 살 방식을 궁리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게 큰 오산이었다.


읽으면서 노동의 유연성이 주는 이점을 읽어 내려가다가 저자는 스스로 자꾸 의문을 던진다. 질문만 던질 뿐 어떠한 해답도 내려주지 않는 저자로 인해 책을 덮고도 좀처럼 짜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긱 경제*’가 성행하더라도 프리랜서를 위한 답을 찾은 곳은 아무 곳도 없다는 그의 흐릿한 논조와 지리멸렬한 결론에 해답은 내가 찾을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게 제일 불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확실한 건 점점 '인간'의 것이 아닌 '기계'의 것으로 옮겨가고 있고, 무형의 무언가나 불확실한 '창의적'인 영역이 오히려 더 '인간'의 확실한 자산 아닐까. 두리뭉실한 나의 생각을 확고하게 정립해줄 해답지를 찾아다니던 도중 <함께 자라기, 애자일로 가는 길>이라는 책의 첫 페이지를 넘김과 동시에 위안과 나 스스로의 방법을 찾아냈다.


긱 경제의 '청사진'을 보려다 실망하고, 결국 애자일로 가는 길을 읽기 시작했다.


결국엔 또 '함께' 일을 해야 합니다


직장에 다니지 않음을 만천하에 선언했다. 그래야 내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소속되어 있지 않음은 불안함을 주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의 아이디어를 본 타 조직원은 자연스럽게 프로젝트를 권유한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파생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함께' 일하는 게 또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다채로운 직장에 속해있는 난 협력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는다. 프리랜서로 생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연락을 제때 받아야 하고, 그들과의 약속을 더 잘 지켜야 한다. 불확실한 프리랜서에게 약속이란 믿음을 주는 동시에 그들과 제대로 협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애자일의 핵심 구동 원리가 학습과 협력, 즉 함께 자라기임을 강조한다. 그는 불확실한 삶을 살아나갈 때 애자일적 태도가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함께 자라기는 어떻게 실천해 나가야 할까?


책에서는 자라기, 곧 개인적인 성장의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그는 자라는 데 있어 '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앞서 내가 말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경력이 편향을 주는 잘못된 지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경력은 오히려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언급하며, 회고를 통한 자기 계발이 필요함을 논한다. 축척이 되면 엄청난 차이를 만드는 자기 계발은 곧 내가 습득한 지식이므로 능력이 복리로 붙으며 누구와 비할 수 없게 빠르게 성장한다.


결국 또 '함께' 일하고 함께 성장을 고민해야만 한다.
저는 뭔가 일이 끝나면 항상 회고라는 활동을 합니다. 연말에는 한 해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일 년 회고를 합니다. 내가 올해에 어떤 것을 했고, 어떤 것을 느꼈고, 어떤 교훈을 배웠는지 짚어봅니다. 보통 이런 회고는 저 혼자 하기보다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합니다. 서로 자극을 많이 받게 되거든요.


함께라는 키워드 역시 의미있었다. 팀이 함께 일할 때 능률 오르는 방법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한 능력이 역력했다. 팀원 간의 신뢰가 구축된 조직은 커뮤니케이션 효율이나 생산성이 높아 업무 효율이 매우 높았다. 또한, 신뢰를 쌓을 땐, 투명성을 가지고 일을 공유하며 적절한 인터렉션을 향한 길을 저자는 제시했다.


우리 그렇게 조급해하지 말자


프리랜서로 살기 다짐한 한 달째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처음 회사를 구직하는 게 아닌 홀로 서기를 위해 매일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해야 했다. 그런 내게 저자는 괜찮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컴퓨터로 대체되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독창성, 사회적 민감성, 협상, 설득, 타인을 돕고 돌보기 같은 것들이 요구되는 수준이 높을수록 컴퓨터화하기 힘든 직업이다. 고로, 정의된 문제는 연구하기 쉽기 때문에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만, 뭔가 만들어내고 기획(디자인)이 필요한 문제는 우리가 창조하고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각과 조작, 창의적 지능, 사회적 지능 이 세 가지의 능력이 발현될 때, 진정한 인간의 자산이 발현된다.


불확실해 보이는 상황이라 할 지라도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내 능력을 정리해 준 저자 덕분에 힘을 얻은 것도 있겠지만, 경험을 통해 얻은 것도 있었다. 어딜 가나 미래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저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나의 미래를 똑같이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사회적 민감성과 돌보는 능력이 있음을 오늘도 감사히 여긴다.



* 지박령: 자신이 죽은 곳을 떠나지 못하고 죽은 장소를 계속 맴도는 영혼.

* 긱경제(Gigged-Economy): 산업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사람을 구해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형태의 경제 방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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