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민 Sep 20. 2020

같은 사진, 다른 기억

#20. 근데 나는 이 사진만 보면 마음이 아파.


옛 앨범을 보다가 예쁜 사진을 만났다. 귀여운 삐삐머리에 유난히 볼이 밝은 유년의 나와 청년이었던 아빠가 담긴 사진. 대구 앞산 공원 아래 살 적에, 퇴근한 아빠에게 매달려 놀고 있는 걸 엄마가 찍어 준 사진이었다. 때는 93년도 겨울. 우리 가족은 행복했고, 새로운 가족인 찬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보일러를 피우던 늦은 밤.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오직 행복만 했던, 찬과 나의 유년 시절.


어렴풋이 93년도의 겨울이 떠오른다. 바닥엔 언제나 푹신한 이불이 깔려 있었고, 나는 이불속에 폭 들어가 뒹굴거리는 걸 좋아하는 세 살 배기였다. 작은 것에 집중하던 작은 소녀는 테니스를 치는 토끼와 핑크 생쥐가 쏙쏙 박힌 이불을 좋아했다. 찬이 태어나기 전까진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토끼와 생쥐에게 속으로 말을 걸며 홀로 노는 걸 좋아했다. 따듯했고 포근했던 촉감을 끌어안고,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던 그 해 겨울.


유년을 돌아보면 온통 즐거웠던 기억뿐이다. 아빠는 나를 번쩍 들어 비행기를 잘 태워줬고, 엄마는 매일 나를 꼬옥 안고선 네가 제일 예쁘다고 해줬던 게 문득문득 짧은 조각처럼 떠오른다. 사랑한다는 말을 매 시간 해주는 이들 사이에 태어난 나는 부유했다. 비록 분리수거 장에서 동화책 세트를 주워와 닦아 읽었다지만, 사진 속 나는 언제나 방긋 웃고 있었다. 어떤 사진 속에는 뭐가 그리 좋았는지 헤- 하며 침까지 아빠 손에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두 장의 사진. 아빠의 어깨에 올라가 목마를 타는 사진 속엔 귀여운 포인트가 많았다. 가장 먼저 볼 빨간 유년의 나. 온몸을 핑크로 도배하고도 모자라, 삐삐머리를 한 머리끈까지 핑크라니. 아빠 어깨서 균형을 잡는다고 아빠 머리칼을 한 줌 가득 주먹으로 쥔 모습이 우습다. 아빠 머리가 조금씩 빠지고 있는 게 어쩌면 유년의 나 때문이 아닐까하는 귀여운 생각도 해본다. 어린 딸의 성화에 못 이겨 어깨를 내주는 아빠의 포즈도 자연스럽다. 피곤에 눈은 뻘거면서, 어깨에 올려달라는 딸이 귀찮아하지도 않는 다정한 아빠. 사진 속 행복에 충만한 우리를 보면서 기분이 좋아져, 매일 보고 싶어서 핸드폰 배경화면에 설정해 두었다. 



고향 집에 오랜만에 내려 간 어느 날, 아빠가 내 핸드폰 배경화면을 보더니 말했다.


아빠는 이 사진만 보면 마음이 아파. 난 사랑이 충만한 우리가 예쁘기만 한데, 아빠는 환하게 웃다가 금세 씁쓸한 눈빛으로 핸드폰을 내려 보았다. 네 볼이 빨갛잖아. 저 때 우리가 너무 가난해서 집이 너무 추웠거든. 돈이 없어서 잘 때만 보일러를 틀어 놓고, 낮에는 밤에 때운 난방 불로 버텼어. 밤새 온기가 빠져나갈까 봐 바닥에 이불을 겹겹이 매일 쌓고 살았지. 너 입은 옷도 봐. 내복으로 꽁꽁 싸매고 있잖아. 보통 목에 손수건도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아빠는 이 사진만 보면 마음이 아파. 우리가 너무 가난해서. 추운 집에 살아 네 볼이 너무 빨개서.


그러더니 아빠는 안방의 엄마를 불러 화면을 보여줬다. 엄마도 사진을 보더니 귀엽다며, 앞산 살 때냐며 단박에 맞추더니 내 볼 얘기를 했다. 여보, 야 볼 너무 빨갛다. 그러면서 아빠가 했던 말을 약속이라도 한 듯 반복한다. 이때가 우리 앞산 공원 아래 주택에 살 땐데, 보일라 뗄 돈이 없어서 이불 바닥에 깔아 두고 지냈거든. 아, 네 볼 너무 빨갛다. 자꾸만 꺼지는 내 핸드폰을 톡톡 치며 엄마 아빠는 옛 사진을 오래 쳐다보았다.


같은 사진 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기억을 얘기한다. 충분히 행복했던 유년이었는데, 사랑은 더 주지 못한 것에 슬퍼한다. 앞산 공원 아래 주택을 떠난 지 27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엄마 아빠는 시절 속 어린 딸을 금새 읽는다. 마치 어제 일처럼 어린 자식의 빨간 볼을 발견한다. 밤낮없이 일하던 아빠와 출산 일이 가까웠던 엄마 이야기는 누구도 꺼내지 않는다. 그냥 딸의 볼이 빨간 게 가장 먼저인 사람들.


사랑은 이상하다. 백을 주고도 하나를 주지 못한 기억에 속상함을 안고 산다. 고작 사랑한다는 이유 만으로. 같은 사진에서 다른 기억을 발견하는 우리를 보며 생각한다. 나의 행복은 지켜진 행복이라고. 어쩌면 추웠을 어느 겨울, 딸의 마음이 가난하지 않도록 함께 놀아 준 아빠와 엄마의 사랑으로 나의 삶은 지켜지지 않았을까. 



94년 겨울. 좋아하는 이불을 덮고 자는 어린 나와, 태어난 지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찬.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아빠는 돈이 없었고, 나는 부유했다.



* 100일 매일 쓰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해당 원고는 초고입니다:)

▲ 100일 매일 쓰기 프로젝트가 궁금하시다면, 클릭!



댓글과 좋아요는 힘이 됩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