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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May 27. 2022

<山녀 -2 > 기어 오르기


말 그대로 기어올라야 하는 산들이 있다. 관악산이나 수락산, 북악산처럼 ‘악’ 자가 들어가는 바위산이다. 집 거실 크기만 한 바위들이 좌우로 턱턱 앉아있고, 가운데에 산행을 위해 비집고 깨뜨려 놓은 곳을 오르려면 두 손 두 발이 다 필요하다. 두꺼운 로프를 붙잡고 암벽에 박아 놓는 발 디딤대를 밟는다. 그게 없으면 손으로 주위 나뭇가지나 땅에 박힌 돌을 부여잡는다.

산에 3번 가면 1번은 꼭 칭찬받고 온다. 주로 아저씨들의 찬사가 이어진다. “아니 젊은 아가씨가 산을 다 오고 기특하네” “아가씨 주말에 카페 안 가고 산에 왔어? 대단하네” “우리 딸은 아직 자고 있는데 여기 아가씨는 돌연변인가벼~”

산이 험할수록 아저씨들이 부여하는 크레딧도 올라간다. ‘악산’ 에 오를 때 칭찬이 특히 후한 것은 그래서다. 살면서 들었던, ‘아가씨’로 시작되는 문장들은 칭찬의 의미건 아니건 간에 대체로 불쾌했다. 그런데 산에서 들은 이 말들은 괜찮았다. 씩씩거리고 흙 묻히며 사족보행을 마다않는 젊은 여자가 신기했을 수도 있을 것 같으니. 그래서 궁금하다, 왜 신기할까?

뒷사람에게 푸짐한 엉덩이 드러내고 오르면서 생각해본다. 대체로 젊은 여자들이 몸 써서 땀 흘리는 일을 좋아하지 않을 거란 모종의 편견을 읽는다. ‘얌전하고 예뻐 보이고자 하는 게 아닌’ 활동이기 때문일 거다. 왜 (예쁘게 정돈된) 카페에 안 가고 (험한) 산에 있냐는 질문 기저엔 이런 생각이 있을 거다. 아마 자신의 딸내미는 산 가는 걸 안 좋아하거나, 나아가 몸 쓰는 걸 안 좋아하니까 한 말일 터.

나 포함 내 또래 딸내미들은 어릴 때 아들만큼 운동을 안 했다. 남동생 태권도, 합기도 학원 갈 때 난 피아노, 미술 학원 갔다. 학교에선 농구나 축구 말고 피구만 했다. 좌우로 공이 오가고 안 맞으려 피하면 된다. 남자애들은 골대에 닿으려고, 헤딩하려고 펄쩍펄쩍 뛰고 부딪히고 넘어졌다. 나는 바닥에 엎어지거나 몸에 흙 묻히거나 땀 뻘뻘 흘릴 일이 적었고, 그래서 그러기 싫었다.

최근 읽은 책의 저자는 축구 하는 여자다. 일부러 가서 몸 부딪혀 태클 걸고, 넘어지고 멍들고 아파하면서 물리적 고통에 익숙해졌다고 했다. 힘을 앞세워 배 들이밀며 다가오는 상대에게 ‘맞을 각오’하고 맞서는, 전에 없던 옵션이 생긴 덕이다. 안간힘 써서 산 정상에 올라 김밥 먹을 때면 내 몸뚱이로 올라왔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좀 더 험한 데도 오를 수 있겠는데 하는 욕심이 생긴다.

내려오기 전 등산용품 화보의 클리셰 포즈로 사진도 남긴다. 경사진 데 서서 몸은 앞으로, 진흙 잔뜩 묻은 발 한쪽을 앞에 꺼내 디딘 채로. 광고에서 볼 때마다 ‘상승 욕구’를 생각해보게 하는 포즈. 하산하면서 생각한다. 좀 더 기어올라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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