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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Jun 10. 2022

<山녀 -3 > 멋 보다 재능


졸업한 중고등학교는 ‘레전드 등굣길’로 유명하다. 등굣길이 곧 등산로다. 도로명 주소로 바뀌기 전 주소가 뻥 안 치고 ‘산90’ 으로 끝났다. 길을 어찌저찌 타다 보면 아차산과 연결된다. 언덕 시작 지점의 고도가 0m라면 학교 정문 고도는 105m, 경사도는 대략 20도, 총 길이는 300m 정도다. 다리가 말랑말랑한 중학교 1학년 신입생 땐 죽을 맛이다. 오르는 데 20분 잡아야 했다. 몇 개월 지나면 뛰어 오르기 시작한다. 지각할 각이 나오면 펄쩍펄쩍 뛰어 5분 내에도 완파한다. 교실에 도착해 종아리 알을 푸는 게 일상이었다.



등산화 신고 학교 오는 애들이 있었다. 한 학년에 한두 명, 놀림거리였다. 신발이 못 생겼기 때문. 지금이야 어글리슈즈니 뭐니 해서 부러 못 생기게 만든 신발을 사서 신는다 지만, 그땐 알록달록 반스 슬립온이나 아디다스 찍찍이 같은 거 신어야 했다. 투박하고 기능에만 힘쓴 등산화 신고 오면 엄마아빠 거 신고 왔냐는 놀림을 들었다. 발목 잡아주긴커녕 바닥 쿠션도 거의 없는 신발을 신고 하교길 언덕을 우다다다 뛰어내려 다녔다. 언덕 좌우로 빽빽하게 심어진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만 봐도 깔깔 대던 시절, 무릎 연골 발목 관절 같은 건 안중에 없었다.



그렇게 학교 다닌 지 4년, 고1 때 무릎이 너무 아팠다. 걸어 다니는데 시큰했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연골이 얇아지고 관절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17살에 할머니가 들을법한 얘기를 들은 것이다. 샌들이나 슬리퍼 신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당시 유행하던 마사이족 신발을 신으라고 했다. 도저히 신고 학교 갈 수 없다. 신발의 효용은 ‘보기 예쁜 것’에 있으니까. 나이키 쿠션 있는 신발 사는 걸로 합의했다. 내 젊음은 영원하리란 어리석은 착각. 그것은 이십대 중반까지 이어져 얄팍한 굽의 단화, 샌들, 무릎 아작 내는 뮬만 신고 다녔다.



관절이 소모품이 아니라 어떻게든 평생 어르고 달래서 소중하게 데리고 가야 하는 최후의 준비물이란 걸 알게 된 건 서른 살을 앞둔 어느 날이다. 귀여운 러닝화 신고 아차산 다녀온 날, 무릎이 경고했다. n년간 지속적으로 삐어온 왼쪽 발목도. 관악산 연주대 사진을 보고 생애 첫 등산화 마련에 대해 생각했다. 컬럼비아를 방문했다. 그래도 예쁘긴 해야 해.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지퍼 같은 요소 없이 쫙 빠진 신상을 골랐다. 첼시부츠 같은 게 맘에 들었던 것.



다음날 관악산에서 날 살린 건 이 등산화였다. 전날 밤 비가 와서 암석들이 젖어있었다. 러닝화 신었으면 벌써 주르륵 미끄러져 어느 돌 위에 늘어져 있었을 것. 산에 도착해 하산하는 그 순간까지 나는 이 등산화를 예찬했다. ‘기능: 작업을 위한 기술상 재능’. 나보다, 내 맨몸보다 재능있는 것에 믿음을 갖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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