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누굴 만나도 "몸이 좀 탔다"는 말을 듣는다. 적절히 타서 건강해 보인다는 것이다. 작년 여름부터 내 피부는 쉴 새 없이 탔다. 제 피부색으로 돌아올만 하면 다시 햇빛 아래로 가길 반복했다. 여름 제주 바다와 한라산에서, 겨울엔 괌 해변에서, 지난달엔 지중해 어딘가에서. 본의 아니게 왠지 스포티 앤 리치한 느낌. 실제 한번은 회사 사람이 내게 "체대생 같다"고 했다. 사실 달리기도 그다지 빠르지 않고, 근육도 있다 말았으며, 허리엔 디스크도 있다. 체대생이었으면 이미 은퇴 당했다. 어쨌거나 내 최대한의 스포티함은 피부에나마 쌓였다.
다음주 서핑 하러 양양에 간다. 수녀와 함께다. 여름 가는 게 아쉽고, 아직 내 몸을 다 쓰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다. 오늘 제일 젊은 내 몸뚱이를 더 격렬하게 활용하고 싶은 것이다. 몸 잘 쓰는 사람은 건강해보인다. 춤을 기깔나게 추거나 보드를 겁 없이 타고, 산을 다람쥐처럼 타고, 서핑, 달리기, 요가 잘하는 사람들 말이다. 장기자랑이나 자연재해는 대체로 갑자기 생긴다. 나가서 뽐을 내든, 도망을 가든 간에 이것저것 해본 경험이 덕지덕지 붙은 몸은 해낼 것 같다. 운동한 뒤 엘리베이터에서 그렇게 팔뚝에 힘을 줬다 뺐다하면서 알량한 근육을 확인하는 건 그래서다. 이 팔이 물에 빠졌을 때 뭐라도 잡고 위에 올라갈 수 있을만한 팔인가 확인하려고.
좋아하는 작가(저번과 동일 인물)는 40대다. 지식 콘텐츠로 이름 날리는 사람인데, 앞으론 지식보단 몸에 남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책으로만 쌓은 지식은 얼마 안 가 까먹는데, 자기 행동이 변화한 것이나 감각으로 익힌 건 까먹질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길바닥 춤판에 못 끼었던 게 한이라고 했다. 뭔 말인지 알 것 같다. 이십대 때 지겹도록 봤던 책이나 멋진 문장은 싹 다 까먹었다. 작년 말 괌에서 스쿠버다이빙 체험할 때 일본 친구와 손 꽉 잡았던 감각은 생생하다.
몸에 남기리라 이젠. 볼따구에 주근깨, 팔다리에 햇볕 그을음, 산모기 물린 자국, 팔뚝·종아리에 근육을. 보드에서 상체 일으키는 법, 스노보드 엉덩이로 넘어지는 법, 숨 쉬면서 수영하는 법, 무릎에 무리 안 가게 하산하는 법을. 몸이 물에 안 뜬다며 총총 걸음하는 아빠에게 귀에 물 들어가는 걸 허하라고 권하고, 악산에 오를 땐 등산화가 필수라고 친구에게 조언하고, 달릴 땐 무릎을 다 펴지 않도록 하면서.
우리 엄마는 8년 째 타악기를 치는 본투비 박치다. 엄마 손바닥 산 부분엔 굳은살이 박였다. 드럼 스틱 잡은 굳은살도 있다. 8년 동안 수업 빠진 건 손에 꼽고, 주말에도 가서 연습한다. 처음보다 장족의 발전을 이뤘지만 여전히 기초 악보를 친다. 처음 듣는 사람은 타악기 배운 지 오래 안 된줄 알 수도 있다. 근데 엄마 손에는 지난 8년이 있다. 집에서 노래 틀면 이제 엄마는 식탁을 자신있게 두드린다. 그저께 내가 말해준 건강 상식은 언제 들었냐는듯 까먹었다. 터키에서 태운 지 얼마 안 된 내 몸은 다음주 또 탈 거다. 물을 무서워하는 내가 자꾸 물에 간다. 가고 싶다. 누워서 둥둥 떠있다가, 서핑도 했다가, 스노클링도 했다가, 스쿠버다이빙도 할 거다. 몸이 물에 스며들어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