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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시안
Sep 06. 2024
저 허옇고 북실거리는 것은 무엇에 쓰이는 생명인고!
(feat.19년 묵은 진돗개를 만난 철없는 어린 노루)
집 뒤 드넓은
초원을
내
집마냥 돌아댕기며
풀을 뜯어 먹던
노루씨는
연한 풀 잎 따먹다가
발길 닿는대로 오다보니
급기야
우리 집 마당까지 들어 오게 되었
다.
마당 귀퉁이 황금 편백 나무
밑에서
세상은
참
넓다.하며
무질서하게
뻗어가는
부드러운 칡 순을 발견하고선
여기가
진정
맛집이구나
.
생각하며
겁도 없이
잘도 따
먹었
다.
마당 데크에 앉아
볕 바라기를 하던
천수 만수 성불 직전인
19년 묵은 진돗개
릴리옹과
저 어린 노루씨 시선이
딱 맞닥드렸을 때,
일 초 이 초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릴리 옹은 별일 아닌듯
노루씨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콧 김을 한번 흥! 내 뱉더니
데크에 코를 박고서
엎드렸
다.
머리 위 칡순을 따먹다가
그런 릴리옹과 시선이 마주친 노루씨는
저 허옇고 북실 북실거리는 것이
무엇에 쓰이는 생명인고 생각하며,
별일 아닌듯 고개를 돌리고
릴리옹 앞에서 여유롭게 다시 풀을
뜯었
다
.
노루씨는 당시 몰랐겠지만서도
허어연 신선같은 릴리옹으로 말하자면
왕년 소싯적에
집 뒤
방대한 초원을
내 집마냥 휩쓸고 다니며
노루를 사냥해
어찌 어찌 질겅 질겅
어찌 어찌 와그작 와그작 해버리던 생명으로서,
혼자 심심하면 초원을 뒤져
뿔 두개 달린 노루 해골을
찾아
물고와
마당에서 노루 해골을 축구공삼아
이리 저리 굴리고 놀던
역사가 있는 존재다
.
노루씨가 그걸 몰랐기에 망정이지
이 내막을 알았더라면
어린 노루씨는 릴리옹과 맞닥드렸을때
그 자리에서 딱. 얼음이 되어서
당장
앞으로 한발짝 가야할지
뒤로 한발짝 가야할지 헷갈릴정도로
엄청난 멘붕이 왔으리라
.
순진한 어린 노루씨가 만난
릴리옹은
천수 만수 누리는 중이라
귀가 잘 안들리고
노안으로 인해 시야가 잘 안보이는고로
노루씨를 제대로 보기어렵거니와,
노루씨를 제대로 봤다하더라도
새파랗게 젊은
노루씨가
목숨을 부지하고저 쏜살같이 내뺀다면
뒷다리 슬개골 퇴화로
쫒아갈 힘도 없는지라
보여도 안 보이는척
들려도 안 들리는 척
세상만사 다 그런거지. 하며 개의치
않았
다
.
세상 만사 알턱없는
철없는 어린 노루씨와
세상 만사 성불 직전
신선같은 릴리옹은
예기치않게
ㅇㅇ리 ㅇㅇ번지 마당에서 조우했으나
이러한 이유들로
어린 노루씨의 비명횡사같은
비극적인 결말없이 무난하게 잘 헤어졌다
.
약 한시간 가량 마당에서 풀을 뜯는동안
실은
사느냐 죽느냐 갈림길에 섰던 노루씨는
이러한 사실도 모른채
먹어야 할 칡순들과
먹어야 할 곰취들과
먹어야 할 머위 잎을
배불리 다 먹은 후에
처언 처어언히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
릴리옹 한번 뒤돌아보고서
대문밖으로 사라졌다
.
저 허옇고 북실북실한 것은
도대체 무
엇에 쓰는 생명일꼬. 재차 생각하면서 말이다
.
릴리옹이 오년만 젊었더라면
저 노루씨는
멀쩡히 네 다리로 걸어
마당을 빠져나가지 못했을꺼고
모르긴해도
우리 집 마당에 뼈를 묻었을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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