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아이를 찾아 떠나는 여정
누구나 슬픈 일이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고, 그 부분만 도려내고 싶은 것들. 나에게는 10대 때 겪은 일들이 그랬다. 어릴 때 겪는 일들은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기 딱 좋은 것 같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제약이 큰만큼, 더 아프고, 모진 기억으로 남는다. 문제는 참으며 견뎠던 감정들이 성인이 된 후 무조건적으로 분출되는 것에 있다.
나의 상처는 엄마에 대한 상실감과 어린 내가 해결할 수 없었던 가정불화였다. 그땐 힘든 시기만 견디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10대 때 해결하지 못한, 들끓는 감정들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감정을 푸는데 서툴러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고, 나를 안아주는 방법을 몰라 폭식으로 스스로를 벌하기도 했다. 우울했고, 자존감도 낮았고, 자기혐오도 심했다. 죽고 싶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릴 적 불행했던 사람은 성인이 되고, 치유받고 사는 게 아니라 그 상처들이 트라우마가 되어 제2의 불행을 양산하니 말이다. 뒤를 돌아보느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과거에 집착하고, 남 탓만 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많이 나아졌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고, 안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런 내게 도움이 되었던 방법 두 가지를 정리해본다. 이 글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나처럼 어린 시절의 상처로 힘든 어른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어린 시절이 힘들었던 사람들은 유년시절이 없다. 빨리 철이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 큰 나에게 유년시절을 선물해주는 행위가 필요하다. 이는 그림 그리기, 색종이 접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데, 나의 경우 어릴 때 가지고 싶었던 곰돌이를 선물했다. 이 인형은 땅바닥에 앉을 때 깔고 앉을 만큼 편하고, 꾸질한 인형이 되었는데,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뿌리툰은 내가 엄마를 떠나보내는 과정을 그린 인스타툰이다. 나는 뿌리를 그리면서 매화마다 울었다. 그리고 매우 놀랐다. 그땐 괜찮다며 보냈던 감정들이 하나도 괜찮지 않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 감정을 하나하나 직면하면서 내가 얼마나 아프고, 슬펐는지 알게 됐다. 그냥 막연히 그때 힘들었지가 아닌 조금 더 구체적이고, 세세한 감정들을 알아갔다.
또,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으신 분들로부터 나의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도움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그곳에서 나는 또 한 번 치유됐다. 나의 개인적인, 슬픈 이야기가 타인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게 스스로 너무 값진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떠나보낸 엄마를 이야기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의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흩어지는 기억과 어렴풋함보다 선명했고, 진했다.
치유의 글쓰기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내 고통을 상세히 적다 보면 내가 얼마나 힘들었고, 무엇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상처의 크기를 앎으로써 현재의 내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나는 삶의 고비를 넘기며 현재까지 우당탕탕 살아있는 존재로 남았다. 사실 치유하려고 했던 것보다는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데 도움이 된 사실이라 좀 아이러니하긴 하다. 또, 내가 워낙 감성적이고 예민한 기질이 있어 상처를 이렇게 파봐야만 해결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감정의 상처들을 발견하고, 스스로 신경 쓰는 일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과정들이라 생각한다. 결국 우리의 삶은 계속되는 거고, 나는 계속 나랑 살아야 하니까. 내 삶에 흠집이 났다고 내 삶을 떠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늘 과거만 바라보며 현재를 잃어버리는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얽매이는 것들은 나를 힘들게 하니까. 나는 내 인생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치유를 해주고 싶다. 그렇게 계속 나아가고 싶다. 어디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