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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영 Oct 03. 2024

여수에 이발비 5000원인 미용실이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요즘 남자머리 이발비가 얼마나 하나요?
대략 20000원 정도일까요?


남편은 제목이 말한 바와 같이 5000원에 이발을 합니다. 무려 8년 넘게 물가상승 없이 고정된 비용으로  한 달에 한 번도 아깝다며 대략 37일쯤 되면 미용실에 가는 편입니다.


남편은 듣기 싫어하는 소리이고 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말이지만 제가 아는 남자 중에 상위 5% 짠돌이입니다. 무엇이든지 아끼고 또 아끼며 짜리 찌리 짠내 나게 사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걸 결혼생활 내내 느낍니다.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4살 6살 남자아이 두 명의 두상이 참 이쁘고 이발이 깔끔하면서 개운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의 엄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애들은 어디서 이발을 요?"  


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한 아파트 상가 안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가격이 5000원에서 8000원이라는 말에 다른 곳 보다도 싼 거 같아서 남편에게 말해주니 그 달에 바로  그 미용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5살인 아들과 함께 말이죠.


그 때 당시 5살 아들은 남편이 화장실에서 휴대용 이발기(일명 바리깡)로 이발을 했습니다.  군대 때 후임 머리를 밀어봤다는 경험으로 시작하더니 아이를 붙잡고 밀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시어머니께서 아들을 100일부터 황금색 보자기를 둘러서 이발을 시키셨는데 아들이 5살쯤 되니


"할머니한테 머리 안 해 아빠한테도 하기 싫어!

나도 친구들처럼 미용실 가고 싶어! "

라고 말하더군요.


사실 주변의 애 엄마들이

[니 아들은 어디서 머리 깎는데 머리가 저런다냐? 시골뜨기 애 같다 야]

라는 소리를 듣던 중이었습니다. 아들도 거울을 보더니 자기 머리가 못생겼다고 말하더군요.


그렇게 아빠와 아들은 그 달부터 새로운 미용실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둘이 합쳐서 이발비  [10000원] 

사장님은 아들에게 [1000원]을 용돈으로 주셨으니 [9000원] 이겠군요.

 그래도 싼 이발비에 아들 용돈까지 주시니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장님은 아들이 미용실 의자에 앉을 때면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꼭 신발을 벗어서 가지런히 놓고 맨발로 의자에 올라와 조심스럽게 앉는 모습이 미용사 인생 처음 보는 착하고 바른 아이라고 이뻐하셨습니다. 용실 의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셨습니다. 


15000원이라도 받으라고 말씀드려 보면 꼭 10000원만 주고 가시라고 며 저희 가족에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인사하시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미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발비를 너무 적게 받으시는 거 아니세요?~"

(혹시 저희 남편이 돈을 아끼는 사람인 것 같아서 그러시나 싶었습니다.)




사장님이 그러시더군요.


사실은 제 여동생의 첫째 아들이 백혈병입니다.  동생이 많이 힘들 거 같아서 같이 기도해 줬지요. 다 큰 대학생 아들이 갑자기 백혈병에 걸리게 돼서  조카도 여동생도 얼마나 힘들까 싶어 눈물이 나더라고요. 멀리 살아서 자주 보지는 못해도 늘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은 같겠구나 싶어 내 자식이 아픈 거 마냥 속상하고 내 일처럼 마음이 미어져서 많이 울었습니다.  어느 날 조심스럽게 동생에게 물어봤습니다.


"너 많이 힘들지 않니? 나한테 티 내진 않지만 

네가 많이 힘들까 봐 언니는 늘 마음이 아파~ "


라고 말하니 동생이 그러더라고요.


"언니 ~ 나 진짜 괜찮아.

처음엔 너무 놀라고 아들이 아프다는 게 힘들고 속상했는데 하나님은 딱 그 사람에게 감당할 만큼의 시련만 주시더라고 난 지금 딱 감당할 만 해 그리고 감사해. 이상하게 고난인데 오히려 기도하면 마음이 알 수 없는 기쁨으로 행복하고 또 잘 치료될 거라고 믿어져!"


동생의 그 말을 들으니 조금 마음이 놓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되는 마음이 남았습니다.



감당할 만큼의 시련이라는 게 무엇일까?


동생이 말한 시련을 감당할 만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족을 보았습니다.  


그 가족의 모습은 남들이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삶에서 감당하면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가족이 함께 웃으며 지내는 모습을 보여습니다.  그리고 자주 볼 수 없는 동생이지만 내 동생도 지금 저렇게 지내고 있겠구나 하며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면 웃을 수 있을까?

나는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일까? 라며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고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잘 견디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그게 정말 가능한 것인지 알고 싶었는데

가능한 거라는 걸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의 행복에 조금이나마  잘 살아줘서 고맙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렵지만 웃어줘서 고맙고, 힘들지만 네 명의 가족이 함께 단단하게 힘을 내줘서 고맙다고

마치 내 동생이 힘을 내며 사는 것과 비슷할 거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 가정의 시련에 마음이 아프기보다는 가족의 웃음을 보며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것에 대한 제 마음입니다. 


(혹시나 아픈 아이를 키우는 우리에게 자신이 갖게된 마음의 표현이 값싼 동정으로 나에게 상처가 될까 봐 조심스럽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진심이 전해져 듣고 있던 내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그러니 지금처럼 웃으며 지내주세요.

그리고 네 명이 늘 함께 와서 미용실에 앉아

서로를 바라봐주고 힘이 되어주는 그 눈빛이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그때의 나의 마음을 위로해 줘서 고맙습니다. 


라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저 한 달에 한 번 가는 미용실에 우리 가족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서로를 바라보고 웃어주고 함께하는 모습이 누군가를 따뜻한 마음으로 미소 짓게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장님은 여전히 이발비 5000원을 받으시고

딸아이의 앞머리까지 예쁘게 다듬어 주시면서

[공주~ 사랑스러운 공주는 소중한 사람이야!]

라고 말해주신다.  


누군가에게 이 사연을 말하지 않고 "우리 집 남편은 5000원에 머리를 이발해요." 라고 말하면 그 사장님 재능기부하시냐고 묻는다. 아니면 요즘 물가에 진짜 실존하는 미용실이냐고 묻기도 한다.  


8년의 시간 동안 작고 연약했던 딸 아이는 느리지만 조금씩 단단해지며 자랐고 매달 그 시간을 바라보며 우리 가족의 모습을 지켜본  미용실 원장님은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 가족의 일에 함께 기뻐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계신다.  



 이 글을 통해 오랜 시간 고난 가운데 지내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미소와 마음 그리고 진심이 담긴 응원을 전해주신  <ㄲ ㄲ ㅁ ㄹ 미용실> 원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 마음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또한 그 동안의 연재북 글을 읽으시며 함께 울어주시고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신 작가님들과 구독자분들께도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목,일,월] 연약하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아  연재가 쭉 이어질 예정입니다.


다음 글에는 좀 더 무거운 이야기지만 그 삶에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고 살아온 일상들을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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