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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Nov 09. 2016

기독교와 유대교

사도행전

기독교와 유대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문제는 AD85년 흑해 연안 시노페에서 태어난 마르키온(Marcion, AD85~160)의 고민거리였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고민하였다. 그가 읽는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잔인하고, 화를 잘 내고, 질투하고, 저주하는 분이었다. 만일 그런 하나님이라면, 믿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반면에 바울 서신을 읽으면서 발견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요, 은혜의 하나님이었다. 그는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른 분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는 유대인이 믿는 구약의 하나님을 거부하고 신약의 하나님 특별히 바울 서신에 나타난 하나님을 믿기로 하였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선별하여 모았는데 유대인의 사상에 오염되었다고 생각하면 모두 삭제하였다. 그가 선별한 성경에 구약은 단 한 권도 포함되지 않았으며 바울 서신 10권과 누가복음만 있었다. 누가복음에서도 예수님의 탄생과 세례받는 것, 광야의 시험, 족보, 베들레헴과 나사렛이 언급된 것은 과감히 삭제하였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구약에 대한 부정, 유대교의 영향에 대한 부정은 곧 반유대주의가 되었다.


당시 기독교는 마르키온의 사상이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를 멀리하였다. 마르키온에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첫째는, 기독교의 역사성을 무시하였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였다. 기독교는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종교다.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통하여 일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언약, 구원 역사를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계시는 신약을 통하여 꽃을 피우긴 하였지만, 그 뿌리 되는 구약을 무시할 수 없다. 역사성을 무시하면 자연히 예수님께서 유대인으로 이 땅에 오신 것도 무시한다. 결국, 기독교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종교 곧 신비주의 종교로 전락하고 만다.


그 후 마르키온의 사상은 반유대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반유대주의는 마르키온처럼 구약에 대한 오해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은 유대인에 대한 증오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기독교와 유대교는 이렇게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기독교는 분명 유대교에 큰 은혜를 입었고 빚을 지고 있지만, 그것을 잊어버리고 유대인을 원수시하였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가끔 이방인을 만나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고 대부분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유대인이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모두 유대인이었고, 70명의 전도대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던 120명 대부분도 유대인이었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은 분명 유대 땅에서 시작하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복음에 헌신하였고 교회의 처음 구성원이 되었다.


물론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겠지만 100%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반드시 반대자들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유대인 중에도 반대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교회의 초석이 된 사도들 모두 유대인이었고,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 대부분도 유대인이었다.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러 다닐 때 언제나 유대인의 회당에 찾아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구브로(행13:5), 비시디아 안디옥(행13:14), 이고니온(행14:1), 데살로니가(행17:1), 베뢰아(행17:10), 고린도(행18:4), 에베소(행19:8), 로마(행28:17)에서 그렇게 하였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예일 대학에서 신학박사를 받고 “The First Urban Christians” 외 여러 권의 책을 쓴 웨인 믹스(Wayne A.Meeks)는 당시 팔레스타인 유대인이 백만 명이었고,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5~6백만 명이었다고 한다.*  바빌론에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유대인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았다. 그들 흩어져 사는 유대인(diaspora)은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잃어버리고 헬라화되어 헬라어 구약성경(70인경)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비록 그들이 유대교의 율법을 통해서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려고 노력하였지만,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는 헬라화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로마의 유대인 카타콤에 발견한 문자 가운데 히브리어나 아람어는 2% 미만이었던 반면, 헬라어는 74%이었고 나머지는 라틴어였다. 그들은 헬라식 이름을 가졌고, 헬라 사상을 받아들였다. 스데반, 빌립 등은 헬라 이름이다.


그러니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완고한 보수주의자들로 배타적이란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열린 마음으로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였고, 초대교회의 주춧돌이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인정받기 까지 기독교 안에 유대인의 비중이나 역할이 상당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물론 반대자도 있었다.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유대인도 있었다. 처음 유대교는 미미하기 짝이 없는 기독교에 대한 경계심을 별로 가지지 않았다. (행5:34-39)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던 기독교가 뜻밖에 유대교보다 더 힘있게 선교하는 것을 보면서 유대교는 기독교를 경계하고 나아가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바울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그의 선교활동을 방해하였다. 바울은 그러한 율법주의자들에게 여러 차례 경고하였다. (행13:46, 행18:6, 행22:21, 행28:17-18)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구별 없이 모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반유대주의 사상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시간이 흘러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받은 후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는 역전되었다. 지금까지 소수로서 핍박받는 처지에 있던 기독교가 이제는 핍박하는 종교가 되었다. 그리스도인과 유대교인의 결혼은 금지되었고 유대교도를 차별하기 시작했다. AD 6세기경 이집트에서 유대 회당을 파괴하는 사건을 계기로 반유대주의는 점점 퍼져나갔다. 기독교는 유대인을 ‘그리스도의 살해자’라는 낙인을 찍어 공격하였다.

베니스의 상인

한 번도 유대인을 본 적이 없는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을 악당으로 묘사하였다. 돈만 아는 속 좁은 인간, 냉혹하고 비열한 인간으로 묘사하였는데 이는 완전한 편견이었다. 특히 러시아 정교는 유대인들을 거세게 핍박하였는데 집단학살을 뜻하는 pogrom이란 단어는 러시아어에서 유래하였다. 러시아 정교회는 유대인들을 집단학살하고, 강제 추방하였다.

러시아의 유대인 집단 학살

반유대주의 정서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독일의 나치즘이다. 히틀러는 독일을 순수 아리안 족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유대인을 집단 학살하였다.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은 기독교 안에서 마르키온을 복권하자는 운동을 일으켰다. 하르낙의 제자들인 독일의 신학자들은 히틀러가 반유대주의 정책을 펼칠 때 적극적으로 동조하였다.

나치의 유대인 집단 학살

구약에 대한 오해를 한 사람은 신학자 하르낙만이 아니라 리차드 도킨스 같은 무신론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만들어진 신”이란 책에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도덕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그는 구약의 하나님은 편협하고 부당하고 용서하지 않는 통제꾼이고,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꾼이고 여성 차별자요 동성애 공포증을 가지고 있으며 인종 차별자요 영아 살해자요 대량 학살자이며 자식 살해자요 악역을 도맡는 존재이며 과대망상자요, 가학성과 피학성을 동시에 가진 자요, 변덕스럽고 남을 못살게 구는 존재라고 하였다. 리차드 도킨스가 인용하는 하나님은 마르키온처럼 철저하게 구약의 하나님이었고, 구약의 하나님을 오해하고 공격하였다.


그래서 일부 사람은 기독교가 유대교와 관계를 완전히 끊는 편이 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정말 유대교는 기독교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일까? 마르키온의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였던 초대교회의 결론은 아직도 유효하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구약과 신약은 하나로 연결된 성경이다.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창조로부터 계시록까지 관통하는 중심 주제이다. 구약을 무시하고 신약이 이루어질 수 없다. 기독교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고, 역사 위에 세워진 종교다.


지난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하여 기독교가 유대교를 핍박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지난 잘못을 확실히 뉘우치고 유대교에 대하여 객관적인 판단하에 바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결코 원수지간은 아니다. 유대인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유산 때문에 복음을 더 쉽게 수용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던 반면 그들의 선입관과 고정관념 때문에 복음에서 멀리 떠나기도 하였다. 유대인의 이러한 실패는 곧 이방인인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 주었고, 하나님 나라를 크게 확장할 수 있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복음이 확산되는 모습을 기록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유대인을 미워하고 핍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품어주고 이해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인종과 민족과 사상과 계급을 초월해서 품어줄 줄 아는 넓은 마음, 열린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주(註)

* 기독교의 발흥 / 로드니 스타크 지음 / 손현선 옮김 / 좋은 씨앗 / 2016년 / 93쪽


사도행전

5. 어떤 공동체인가요?

4. 초대교회 회중은 가난한 민중이었을까?

3. 크레스챤인가? 크리스챤인가?

2.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일까?

1. 초기 기독교의 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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