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과거 시험의 마지막 관문인 책문
책문이란 '당면한 현안이나 혹은 국가 시책을 어떻게 풀었으면 좋겠는가?' 질문함으로써 단순히 과시생들의 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현실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뿐만 아니라 왕은 자기의 정치적 파트너로서 누구를 택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그러기에 왕들도 책문을 낼 때 함부로 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고민하는 바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물었다.
이를테면 광해군은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중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란 어떤 것인가?"
세종은 "인재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선조는 "정벌이냐 화친이냐?" 물음으로써 왕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고민을 토로하였다.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과시생들은 한마디로 목숨을 내걸고 직언을 하거나, 자신의 인문학적 정신을 어떻게 국정 현안에 적용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답하였다.
오늘날 지식 정도를 점검하는 시험에 비해 우리 선조들의 과거제도가 얼마나 탁월했는지!
물론 후일 과거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타락으로 과거제도의 폐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전까지는 과거가 얼마나 멋지게 시행되고,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가려 뽑았는지를 보게 된다.
이를테면 광해군 3년 별시문과에서 급제한 임숙영의 대답은 정말 대담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척족의 횡포와 왕에게 아첨하려고 왕의 생모인 공빈김씨에게 왕후의 존호를 올리려는 이이첨의 무도함을 격렬히 공박했다.
시험을 주관하는 시관인 우의정 심희수가 장원으로 급제시키려 했으나 다른 시관들의 반대로 병과에 합격했다.
광해군은 급제한 사람들의 대책을 읽어나가다가 임숙영의 무례한 대책에 대로한다.
그리고 합격자 명단에서 그를 삭제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에 삼사에서 간쟁을 하고, 재야에서도 임숙영의 정정당당한 주장을 지지하였다.
삭과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논계가 4개월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영의정 이덕형, 좌의정 이항복 등이 임숙영의 대책은 만고의 정당한 주장이기 때문에 삭과는 부당하다고 간절히 변론하였다.
결국 시험을 총책임진 심회수가 벼슬을 내놓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임숙영은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요즘 집권자가 바뀌기만 하면, 교육제도가 바뀌고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보는 것에 반해, 조선조 한 과시생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벼슬을 내놓는 모습은 정말 귀감이 된다.
뿐만 아니라 대학, 대학원까지 공부했지만, 실전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과 정반대로 조선시대 선비들은 시대의 질문에 묻고 답하면서 그것을 풀어가려고 애썼던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다.
책의 부제가 우리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고 있다.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시대를 파악하고 시대를 선도해가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지도자가 정말 필요하고 그리운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