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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Dec 05. 2023

사소한 부위가 아프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아무도 위로해 줄 수 없는 아픔이 있다. 나는 이 상처가 너무 큰데 아무도 크게 보지 않을 때. 그럴 때면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물음까지 이어진다. 서른다섯, 그동안 참 많이도 아팠다. 내 상처가 가장 커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바로 나기 때문이다.     

《만지고 싶은 기분》이라는 요조의 산문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소한 게 사소한 게 아니라는 것은 사소한 부위를 아파보면 누구나 깨닫게 된다.”     


우린 여전히 사소하게 아프고 사소한 부위에 상처가 난다. 조울증이 가장 심했던 스무 살 무렵 감정의 널뛰기에 어찌할지 몰라 했다. 우울함, 슬픔을 가장 많이 느껴봤던 시기이리라. 친한 친구 몇 명을 붙잡고 매일 의지하고 하소연할 정도로 내 성격도 그땐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세월을 지나,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람을 멀리했다. 사람과 대화하고 가까이하는 게 뭐랄까? 어색하고 불편하고 끝내 불안했다. 벌써 그렇게 지낸 지 10년 가까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외롭지 않냐고 내게 묻기도 한다. 하지만 외로움보다 더 크게 아픈 건 사람에 대한 상처가 아닐까. 크게 어디 데인 적도 없는 내가 이다지도 사람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는 건 아주 사소한 상처일 것이다.     


결국엔 상처를 혼자 만들어 내기도 했었는데 아무 일도 아닌 일을 부풀려서 생각하면서 크게 와닿았다. 무엇이 맞고 틀리다 할 수 없다. 나는 이렇게 굳어버린 내 성격을 이젠 꽤 괜찮은 성격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니까. 외향적인 사람이 있으면 내향적인 사람도 있고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사람을 멀리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난 사람을 참 좋아한다. 편한 대화는 언제든 오케이다. 단지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의 억지로 하는 대화라든가 꾸역꾸역 참으면서 하는 관계라든가, 그런 것들이 싫어졌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들러붙는 관계 또한 이제 사절이다. 인간관계에 치이면서도 끝내 관계를 놓지 못하는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루다야 난 네가 정말 부러워. 어떻게 그렇게 지낼 수 있어?”     


그 말을 듣고 내 마음은 조금 아렸다. 나도 외롭고 의지하고 싶을 때가 많다. 단지 방어기제의 한 방법으로 이런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게 맞다. 그 지인은 얻는 게 있으니 당연히 잃는 게 있는 것이고 나는 잃기 싫어 얻지 않는 것이다. 사소한 부위가 아프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게 아니듯 상처는 이다지도 아리다.



Image by Luisella Planeta LOVE PEACE ��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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