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 있는 동안 종종 파리 역에 도착해서 기차에서 내릴 때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 보고는 했다. 프랑스에서는 기차에서처럼 지낼 것이다. 할 일 없이 맥주 한 잔, 커피 한 잔 하면서 거리를, 강가를 걸어 다니겠지. 그러다 지겨워지면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거릴 수도 있고, 아니면 영화를 보느라 그럴 시간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를 만들어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며 놀 수도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좀비들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 전용 통행증이 생길까? 유럽은 괜찮을까?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뉴스를 틀어 보기로 했다. 최악이든 최선이든 상상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은 객관적으로 접해야만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뉴스를 틀자마자 함성 소리가 크게 나서 깜짝 놀라 볼륨을 확 줄였다. 각종 피켓을 들고 사람들이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왠지 낯이 익다 했더니 국회의사당 앞이다. 기자가 누군가에게 마이크를 내밀었고 아직 볼륨을 키우기 전이라 자막으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대충 파악만 했다.
"아무리 태어나기 전이나 사망한 후라도 우리나라 영토에서는 우리 정부가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서울에서 왔어요."
"숙소는 따로 잡으신 거예요?"
"대전까지도 다 만실이래서 차에서 자면서 (집회에) 참석하려고요."
호기심에 볼륨을 다시 키워 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기자가 두 명인가를 더 인터뷰했는데도 사람들이 흥분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 무엇에 화난 건지에 대한 정보는 찾지 못했다. 나는 화면은 그대로 두고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승무원을 불러 달라고 했다. 승무원 로봇이 노크를 했다. 문도 미처 열리기 전에 내가 말했다.
"맥주 2개, 기본 안주와 함께."
로봇의 스피커로 승무원이 뭐라고 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이상하게도 사람이 오면 존댓말을 하는데 로봇에게는 존댓말이 나오지 않는다. 로봇이 문을 열고 잠시 후 스피커로 승무원이 말이 들렸다.
"Your beer and chips will be served soon, sir."
"Thank you"
"Welcome"
로봇이 방을 나가고 곧 나는 다시 뉴스로 눈을 돌렸다. 계속 이해할 수 없는 인터뷰가 이어졌다. 로봇을 보는 사이에 아나운서가 나오기는 했는데 중요한 정보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략 좀비를 노동력으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가 심하다는 내용 같았지만 내 예상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말들이 이어졌다. 나는 저 정도로 심한 반대라면 좀비들이 특정한 처리를 거친 후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서 일을 해도 안전하다는 그런 정도의 발표가 있었나 했지만 지금 사람들은 좀비의 권리 운운하고 있었다. 안전도, 살아 있는 사람의 권리도 아닌 좀비의 권리 말이다. 좀비의 권리라니, 죽을 권리 말인가?
잠시 후 아나운서가 다시 나오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럴 때는 그냥 인터넷을 보는 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 제대로 된 소식이 올라오는 곳이 거의 없다. 무엇이든 제대로 찾아내려면 두 시간 이상은 쉬지 않고 검색을 해야 한다. 다시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인터넷 뉴스나 게시판들도 다시 믿을 만한 소식이 많아질 것이다. 지금은 온갖 헛소리와 종말론들이 실제 뉴스와 동일한 비율로 섞여 있어서 마치 감염병 사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고립되어 토굴에서 살아가기라도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글들을 읽고 거기에 혹하는 사람들의 비율도 무척 높은 듯했다.
제시간에 맥주가 도착했다. 분명히 승무원이 듣고 있을 거라서
"Thank you"
라고 말하고 쟁반에 5,000원짜리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맥주를 하나 따서 잔에 따르고는 텔레비전을 보았다. 아나운서가 말했다.
"좀비라 불리는 감염병 희생자 시신의 노동력 활용 방안에 대해 정부가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지 며칠 만에 MBC 기자의 잠입 취재로 밝혀진 사실과 관련하여 미국 정부와 제약 회사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 이어서 미국과 유럽연합에서도 추진을 중단하라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에서는 유럽연합의 입장과 별개로 자체적으로 자치구 내에서 모든 관련 시도를 무기한 금지하는 법안이 이탈리아 자치구와 독일 자치구에서 현재 표결에 부쳐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나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그러니까, 그 발표에 뭔가 문제가 있구나. 인터넷을 보고 싶어 손가락이 간질간질했다. 좀비가 되면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천하무적의 신체를 갖게 된다느니 하는 소리를 읽지 않았다면 또다시 유혹에 굴복할 뻔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과자를 먹었다. 짭짜름하면서 단맛이 맥주의 향을 금세 지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