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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의 백설기 May 17. 2018

투박한 진심, 부산 청사포마을

부산에 가시나


부산에서 ‘가시나’는 욕이 아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고, 잘 지내냐고 말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들이미는 말이기 때문이다. 청사포는 이런 부산 사나이의 진심이다. 해운대와 광안리에 손님들을 빼앗겨도 그저 묵묵하기만 한 청사포는 숨이 트일 빈틈과 함께 ‘비켜나 있음’의 미학을 가르쳐준다.
 

‘해운대 지나서 꽃피는 동백섬/ 달맞이 고개에서 바다로 무너지는 청사포/ 언제부터인가 푸른 모래는 없고/ 발아래 포구에는 파도만 부이어/ 퍼렇게 퍼렇게 멍이 드는데.’ 최백호의 노래를 지도 삼아 달맞이고개를 넘으면 자그마한 청사포마을이 나타난다. 푸른 뱀, 혹은 푸른 모래라는 뜻의 청사(靑沙, 靑蛇)포. 해안에 푸른 모래는 없다. 서로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듯한 희고 붉은 두 개의 등대와 함께 동해와 남해가 만나 그 빛깔을 달리하는 바다만 있을 뿐.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청사포 앞 바다는 예부터 부산에서 질 좋은 횟감이 가장 많이 잡혔다. 여름이면 마을 입구에서 달맞이고개까지 차들이 길게 꼬리를 이을 할 정도. 숯불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조개구이는 걸걸한 바다 사나이처럼 외지인을 맞이한다.

옛 대폿집 풍경을 간직한 이곳 식당들은 사람 냄새를 풍겨 인기를 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객들은 조개만 구워 먹고 떠나지만 사실 청사포는 생선 파는 아낙네의 목덜미처럼 숨겨진 매력을 많이 간직한 곳이다. 젊은이들은 청사포를 부산의 헤이리로 만들고 싶어 한다. 6년 전 마을로 모여든 예술가들은 작업실을 만들어 ‘청사포 작가전’을 열고 달맞이고개에 자리 잡은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철길, 끝에 있다고 ‘끝집’으로 불리는 횟집, 고추 말리는 할머니들이 함께하는 풍경이 이채롭다. 활발한 목공소와 대비되는 조용한 교회, 당제를 지내는 소나무가 있는가 하면 그 옆에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 있는 식이다. 횟집 앞에는 300년 수령의 김씨 골매기 할매 소나무가 있다.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정성에 탄복한 용왕이 푸른 뱀을 보내어 둘을 만나게 했다고도 전해지고, 남편이 탄 배를 기다리던 아내가 소나무 위에서 죽자 망부송으로 모셨다는 설도 있다.

골매기는 '마을을 막는다’는 뜻으로 통상 마을에 처음으로 들어온 사람을 수호신으로 삼은 데서 유래했다. 그런데 청사포에서는 특이하게도 열녀였던 김씨 할머니를 ‘골매기 할매’로 삼았다. 동해안 마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청사포마을 한복판에는 정동진과 강릉까지 가는 동해남부선 전철이 지나간다. 송정과 해운대 구간을 따라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안 절벽을 따라 운행되는 기차다. 75년간 사람들을 실어 나른 이 기차는 2013년에 폐쇄됐다. 작별 인사를 하는 주민들은 아주 오래 가슴앓이를 할 것이다. 조용한 마을에서 슬픔은 더 오래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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