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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곰의 우당탕탕 마라톤 연습

by 뚜벅초

연두빛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반짝거리는 봄날.

숲속마을은 봄날의 가장 큰 행사인 마을 마라톤 대회 준비에 한창이다.

마을 도서관에서 매달 나오는 소식지에 마라톤 대회 참가자를 모집하는 공지가 실렸고, 순식간에 많은 주민들이 신청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든든한 마을 지킴이 소방관 버미 아빠곰도 있었다.


대회까지 한 달 남짓. 아빠곰은 매일 틈틈이 마라톤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하기 전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주말에도 숲속마을 산 중턱까지 달려 올라갔다 내려오곤 했다. 버미는 가끔 킥보드를 타고 아빠를 따러 나섰지만, 그냥 달리기만 하는 건 역시 재미가 없어 자꾸만 놀이터로 샜다.


크지 않은 숲속마을을 매일같이 달리던 아빠곰은 문득 좀 지루해졌다.

"매일 똑같은 꽃밭, 매일 똑같은 거리, 매일 똑같은 나무, 매일 똑같은 찹쌀떡 가게...음, 오늘은 좀 다른 길로 가 볼까?

그리고 아빠곰은 평소 가 보지 않던 길로 들어섰다.


아빠곰은 숲속마을에서 나고 자랐지만, 마을 밖으로 나간 것은 손에 꼽혔다.

산 옆,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샛길로 들어서니 낯선 꽃들과 들판이 펼쳐졌다.

'흠...여기 풍경이 아주 멋진걸. 달리기를 하기도 아주 좋은 길이야. 조금만 더 달리다가 뒤로 돌아가 볼까.'

아빠곰은 이제 막 가속이 붙은 달리기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정도 달린 아빠곰은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마침 눈앞에 벤치가 보였다.

"이런 곳에 벤치가 있다니, 여기도 동물들이 사는 마을인가? 조금 쉬었다 가자."

아빠곰은 주머니에서 물통을 꺼내 물을 한 잔 마시고, 바나나를 한 입 먹으면서 주변 풍경을 살폈다.

못 보던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포장이 안 된 산책로는 잘 닦여져 있다.

'자...좀 쉬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 볼까. 엇, 그런데 여긴 어디지...'

뒤를 돌아본 아빠곰은 자신이 어떤 길로 온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럴수가...난감한 일이군. 얼른 길을 찾아야겠어.'

당황한 아빠곰은 우선 자신의 감을 믿고 길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모르는 동네만 나올 뿐이었다.

아빠곰의 전화기에도 통신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 문구만 뜰 뿐이었다.


한참을 걷던 아빠곰의 눈에 왠 지붕 하나가 보였다.

'휴, 누군가 사는 마을인가보다. 들어가서 여기가 어딘지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해야겠어.'

아빠곰은 조심스럽게 대문을 노크했다.

"계십니까? 말씀 좀 묻겠습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분명 아빠곰이 살짝 두들겼을 뿐인데 문짝이 우그러져 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문이 약하지?"

심지어 문을 살짝 밀어봤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짝이 그냥 열려 버렸다.


"저...문은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라, 제가 사정이..."

그 순간, 아빠곰의 눈에는 마당에서 모래놀이를 하던, 눈을 크게 뜬 채 얼굴이 파랗게 질린 두 아이가 보였다.

아빠곰도 아이들을 보고 똑같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늘 보던 동물 아이들이 아닌 사람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본 -ChatGPT Image 2025년 9월 30일 오전 09_14_35.png


"으아아악!!!!!!곰이다!!!!!!!!"

"엄마아아!!!!무서워!!!! 곰이야!!! 곰 나타났어!!!!!!!!"


남매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서로 부둥켜안고 겁에 질려 소리를 빽빽 지르고 있었다.


"아니, 얘들아! 잠깐만! 진정해! 나는 무서운 괴물이 아니야! 아저씨도 너희 만한 아들이 있단다! 나는 그냥 길을 잃어서 좀 도움을 청하려고..."


"악!!! 오빠!! 근데 고...곰이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어...너도 들었어...?"


"악!!!!!!!"

아이들은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 얘들아 정말 미안해! 아저씨는 이만 가 볼게!"

아빠곰은 더 당황해서 황급히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빠곰이 숲속마을로 돌아온 건 달이 중천에 뜬 늦은 밤이었다. 한참을 헤매던 중 겨우겨우 경찰관 기린 아저씨와 연락이 닿아서 길을 찾아 올 수 있었다.

기린 경찰관은 완전히 지친 곰 아저씨를 부축하면서 말했다.

"곰 아저씨, 잘 모르는 길은 함부로 가지 마세요."

"휴,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본의 아니게 아이들을 놀라게 해서 어쩐담..."

"네? 아이들이요?"



그 동안 인간 세상의 SNS와 TV에서는 아빠곰의 모습이 찍힌 동영상이 전국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두 아이가 놀던 마당에는 CCTV가 설치돼 있고, 아이의 부모님이 곰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CCTV를 확인해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 올린 것이다.


[충격영상] 사람처럼 문으로 걸어들어오는 불곰 ㄷㄷ


"와, 저 곰은 무슨 사람처럼 걸어 들어오냐."

"곰이 살짝 쳤는데 문 찌그러지는 것 봐. 너무 무섭다 ㄷㄷㄷ"

"근데 뭔가 애들이 놀란 것 같으니까 곰도 같이 놀라서 자리 비켜준 것 같지 않아? 곰이 좀 똑똑한듯"

"에이, 곰이 무슨 그런 생각까지 하겠어. 그냥 배가 불렀나보지."


물론, 그날 마당에서 아빠곰을 본 아이들은

'곰이 우리에게 말을 했다'고 호소했지만

어른들은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너무 놀란 상태에서, 곰의 웅얼거리는 소리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대망의 마라톤 대회.

마을 어른들과 아이들은 모두 마라톤 코스 길을 따라 서서 응원을 준비했다.

"아빠! 힘내세요!! 곰의 힘을 보여줘요!"

"엄마! 너구리답게 완전 빨리 달리는거에요~"

"여보~ 토끼 뒷다리 힘으로 1등 해요!"


부엉 선생님의 휘슬 소리가 울려퍼지자 출발선에 있던 모든 어른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아빠곰은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 온 요령을 생각하며 페이스 조절을 했다.

'초반부터 너무 무리하면 안돼...적당히 달리다가 막판에 속력을 내자.'

아빠곰은 무난히 선두 그룹을 지키고 있었다.


후반부에 접어들 무렵, 아빠곰은 서서히 속력을 내며 무리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좋아, 이대로라면 1등은 문제 없다! 기다려라 아들, 부들이 아저씨의 특제 찹쌀떡 세트는 우리 거닷!'

그 순간, 아빠곰 옆으로 누군가가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먼저 갈게요, 아빠곰!"

바로, 로니의 엄마인 엄마 너구리였다. 매일같이 로니가 유치원에 간 사이 열심히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럴 수가!

아빠곰은 서둘러 로니 엄마를 추월하기 위해 속력을 냈지만, 로니 엄마도 만만치 않았다. 작은 체구를 이용해 점점 더 빠르게 속도를 붙였다.

"으...안돼! 로니 엄마가 저렇게 달리기를 잘 할 줄 몰랐네."

결국, 로니 엄마는 모두의 환호를 받으며 결승선을 끊었다. 간발의 차로 아빠곰은 2등.


"으윽..좀 아쉽지만...어쩔 수 없지. 축하해요, 로니 엄마."

"아빠..!!!!"

한쪽에서 버미가 킥보드를 타고 달려왔다. 엄마곰은 소식지에 실을 마라톤 대회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목에 매고 있다.

"으, 버미야 미안해. 꼭 1등해서 부들이 아저씨 특제 찹쌀떡 세트 맛보여주고 싶었는데..."

"괜찮아요 아빠! 로니가 찹쌀떡 같이 나눠먹자고 했어요."



2등상 역시 나쁘지 않았다. 바로 꿀을 바른 싱싱한 연어 두 마리였다.

한 마리는 버미네 온 가족이 맛있게 나눠 먹고,

나머지 한 마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아빠곰은 좋은 생각이 났다.

'그래, 역시...본의 아니게 끼친 피해에 사과하는 게 좋겠지.'



다음날 아침, 대문을 연 남매는 깜짝 놀랐다.

문 앞에는 예쁜 봄 꽃으로 장식이 된 종이 봉투가 노끈에 묶여 놓여있었다.

남매가 봉투를 열어보니 그곳에는 향긋한 꿀이 발라진 커다란 연어 한 마리가 있었다.

"엄마! 누가 연어 놓고 갔어!"


아쉽게도 대문 밖에는 CCTV가 없었기 때문에, 연어를 두고 간 이가 누구인지는 결국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날 저녁으로 맛있는 연어를 먹으면서,

어쩐지 자꾸 그날 본 불곰의 커다란 덩치와 상반되는 순한 눈망울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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