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나이고 싶었다

잊히지 않으려 나를 다시 꺼내 들었다.

by 유혜빈


“눈 감고 자자. 엄마는 진짜 너무 피곤해…”


아이를 재우며 나도 모르게 하품이 터졌다.

이불속 아이는 잠과 실랑이를 벌이며 몸을 뒤척였다.

“엄마, 나 아직 안 졸려.”

“그냥 눈만 감고 있어도 괜찮아.”


아이는 눈을 비비며 버텼고,

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붙잡은 채 기다렸다.


아이를 재우는 시간.

오늘도 ‘내 시간’을 향해 건너야 하는

하루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하루의 마지막 한 줌 에너지는
‘나’를 위해 쓰고 싶었다.


아이가 깊은 숨결로 잠들고 나면 나는 살금살금,

어둠을 가르고 빠져나왔다.

그제야 비로소… 나의 시간이 시작됐다.


그 짧은 밤을 쪼개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대단한 걸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오늘 하루도 나를 놓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확인받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그 모습만으로도 사랑스러웠지만

나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마음으로 살았다.

몸은 지쳐 있었고, 마음도 점점 따라 지쳐갔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바닥난 체력과 감정으로 작은 일에도 소리를 지른 뒤

후회로 남은 밤을 견뎌야 했다.


“괜찮아, 내일은 잘할 수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다잡았던 마음은 금세 무너졌고,

내 안의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좋아했던 건 뭐였지?’

‘나를 설레게 했던 건 어떤 거였더라?’


쉬고 싶었지만, 정말 원했던 건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는 시간이었다.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그저 ‘나’로 숨 쉴 수 있는 작은 틈.

이름도 역할도 내려놓고

내 마음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잠깐의 여백 같은 시간.


그러다 어느 날,

집 근처 문화센터에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오랜만에 낯선 사람과 마주 앉는 일이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했지만,

그 어색함은 금세 익숙함이 되었다.

그리고 소중한 기다림이 되었다.


그 후로 나는 하나씩, 나를 위한 시간을 찾아 나섰다.

책을 읽고, 전시를 보고, 아이 옷을 만들고,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느끼며

조금씩 다시 나를 회복해 갔다.


누가 보면 사소해 보일지도 모를 그 시간들이

내게는 무너진 마음 위에 다시 얹는

작은 벽돌 한 장 한 장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갔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푹 쉬어.”


단 하루, 텅 빈 집은 나를 위한 백지처럼 느껴졌다.

밤새도록 아이들 옷을 만들었다.

패턴을 그리고, 원단을 재단하고, 재봉틀 앞에 앉아

손끝으로 리듬을 느끼며 밤을 지새웠다.

내 머릿속이 신기하게도 맑아졌고,

날이 샌 줄도 몰랐다.


하지만 다음 날, 몸이 먼저 멈춰 섰다.

일어나려던 나는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졌다.


무리한 건 몸만이 아니었다.

오랜 갈증 끝에 쏟아져버린 마음,

말라붙은 땅이 한꺼번에 비를 들이켠 듯

심장은 잠시, 버거워졌다.


그 후로 나는 다짐했다.

‘나’를 되찾는 일이

‘나’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내가 뭔가를 해내야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스스로를 아끼는 것이 진짜 중요한 일이라는 걸 느꼈다.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다.

작은 불빛 하나라도 내 안의 나를 밝힐 수 있다면,

그건 분명한 시작이니까.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엄마이면서

내 삶의 첫 번째 주인공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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